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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2 [20181216][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37)] 말씀을 가감없이 믿음 (마 5:17-20) 문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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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18-12-1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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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6][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37)] 말씀을 가감없이 믿음 (마 5:17-20) 문병호 목사


*음성파일: 게시물 하단 "관련링크"에서 청취 혹은 내려받기 가능합니다. 


(마 5: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5: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 5: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녹취록>

1. 산상복음의 원리: 하나님의 말씀을 일점일획이라도 경히 여기지 말라


본문 말씀은 천국 백성의 헌장 혹은 천국 시민의 헌장, 산상복음, 산상수훈, 산상보훈 등으로 칭해지는 마태복음 5장의 말씀 중 일부입니다. 산상복음은 주님이 산 위에서 가르쳤다는 의미입니다. 평지복음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평지에서 무리에게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시는 모습이 다를 뿐 내용은 같다고 봐도 됩니다.

산상복음에는 여러가지 말씀이 있는데 팔복이 우선 생각납니다. 주기도문도 있습니다. 또한 '너희들은 이렇게 들었거니와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하노니' 하여 원수를 사랑하고 양 뺨을 내어주는 것과 길을 같이 가는 것과 저주하지 말 것 등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한 주목할 만한 것으로 공중의 새를 들어 하나님이 그 자녀를 입히시는 은혜를 가르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자녀이며,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자녀됨이라 가르치시는, 그 대헌장이 산상복음입니다.

본문은 한 가지 구체적인 내용이라기보다 그 각각의 가르침을 이루어가는 원리, 즉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는 내용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일점일획이라도 경히 여기거나 업신여기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2. 말씀이시며 말씀을 다 이루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두 이름, 예수는 그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자이시라는 것과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이시고 그를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사 7:14; 마 1:23).  이 예언은 창세기의 예언에서 시작됩니다.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이 예언이 예수님의 오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은 예수 혹은 임마누엘이라는 이름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라는 것을 더 많이 가르칩니다. 우리가 '성육신'이라고 하는 것을 '도성인신' 혹은 '도성육신'이라고 합니다. '도'(道)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즉 말씀이 사람의 몸이 되었다는 것으로 성육신을 표현합니다. 그것은 조금 더 요한복음에 가까운 것입니다.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말씀이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셨다고 하는데 그것을 보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또한 그 말씀은 참 빛이요(요 1:9), 그 안에 생명이 있으며(요 1:4), 그 말씀으로 천지가 지어졌고(요 1:3), 태초부터 그 말씀이 계신 것(요 1:1)을 제시합니다. 예수님을 태초에 계신 말씀, 창조주, 생명, 참 빛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무엇을 하러 오셨습니까? 말씀을 폐하러 오셨나요? 본문 17절은 말씀이 이 땅에 오셔서 말씀을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8절은 다 이루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말씀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하다'라는이 표현의 원어는 '프레로사이'라는 헬라어인데, 완전하게 혹은 충만하게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성탄절을 앞두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말씀을 다 이루신 것을 생각해 보는데, 그 말씀은 구약에 280번 이상 나오는 언약입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와 절기를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성육신이요, 그것이 바로 본문 말씀과 연관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백성


유대인들은 참으로 뛰어난 민족입니다. 그들은 머리도 뛰어나고 시간도 낭비 없이 부지런히 잘 쓰며 주도면밀합니다. 또한 단합을 잘합니다. 물론 성경에 유대인들이 보면 흩어지고 갈라져 싸우지만, 어찌됐든 유대인이 그 정도면 다른 민족은 더하다고 보면 될 정도입니다. 그렇게 볼 때 인간이 본래 저런데 유대인들을 욕할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은 더하다고 보면 되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유대인들에게 이런 뛰어남이 있습니다. 과학, 예술, 문화, 경제를 막론하고 뛰어납니다. 특히 금융에서 뛰어납니다. 유대인들이 마음을 먹으면 전 세계 지형이 달라집니다. 유대인들은 정말 뛰어납니다. 히브리대학교를 가 보았는데 동문들 이름을 걸어놓았습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서른 명이 넘습니다. 우리나라는 평화상을 제외하고 노벨상 수상자가 한 명도 없는데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왜 이렇게 뛰어날까요? 그 혈통은 갈대아-우르 지방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유래했습니다. 즉, 혈통에서 별난 것이 없습니다. 히브리라는 말은 건너왔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렇게 뛰어납니까? 출애굽기 강해를 하면서도 말씀했지만, 유대인들은 일자무식이고 아무것도 몰랐는데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십니다. 완전 백지상태에서 하나님의 법을 주십니다. 어떻게 보면 철저히 무식하게 만들어서 세상 지식에는 무지하게 한 후 하나님의 법을 심어 주십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말입니다. 그것을 시내산에서 주십니다. 세상에서는 이들처럼 무식한 자가 없습니다. 애굽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백만 명이 되도록 놔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뛰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들을 무력하고 무지하게 여겼기에 수가 불어나게 내버려 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습니다. —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롬 3:1-2) 이스라엘에 가서 제가 본 것은 벽에 부자가 더불어 몸을 흔들면서 말씀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중요히 여긴 것입니다. 성경만 읽어도 잘 살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봅니다. 최소한 성경을 많이 읽고 다른 것을 배우면 훨씬 더 잘 살지 않겠느냐 생각을 해 봅니다.

4. 이스라엘의 세 가지 특권


이스라엘의 뛰어난 것이 무엇이냐 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특권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특권은 여호와 한 분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섬긴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첫 번째 특권입니다. —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쉐마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십계명을 읽은 것처럼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 특권은 그 하나님을 섬기니 그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입니다. 즉, 그 말씀을 맡은 것이 두 번째 특권입니다. —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신 30:14).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주장하셔서 주야로 묵상하게 하신 것입니다. —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신 29:4). 또한,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맡았다는 것은 창고에 보관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이 내 마음에 있고 깨닫는 마음과 듣는 귀와 보는 눈을 주신 것입니다. 돌판에 기록된 말씀, 그리고 선지자와 사도를 통해 기록된 성경 말씀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6-9). 여기 말씀에 보면 집에 들락날락 거릴 때는 문설주에 말씀이, 행하려면 손 끝에, 생각하려면 머리에 말씀이 붙어 있습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말씀으로 하라는 의미입니다. 서거나 앉거나 들어가거나 나오거나 말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복입니다. 첫 번째 특권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 두 번째 특권은 그의 말씀을 맡은 것, 즉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세 번째 특권은 이러한 말씀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말씀을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들을 복되게 하십니다. —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신 6:24).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을 맡아서 그것을 행하면 바로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말이고 연초인데 축복하는 의미에서 신명기 28장을 보기를 원합니다. 두 산에 오르는데 그리심산과 에발산 입니다. 각각 축복과 저주의 말씀이 떨어집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그리심산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1-6).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말씀을 맡아서 그대로 살면 큰 복을 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 않습니다. 우리가 떡으로만 산다고 하면 그것에 걸려 넘어집니다.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떡이 없이 살라는 말은 아닙니다. 떡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떡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말씀의 찔림을 받자.” 말씀에 찔림을 받는 것은 우리를 재촉하고 자극하고 다시금 깨닫게 해서 복을 누리게 합니다. 방금 신명기에서 본 말씀처럼 말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누리는 복을 얻어야 합니다. 그것은 지상의 복일 뿐 아니라 천국의 상급이 됩니다. 다른 모든 세상적인 복은 없어집니다. 지상에서 복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상급받게 하십니다. 그 복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게 하는 복입니다.

5. 율법을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부요함이다


그 말씀에 순종하고 그것을 붙들면, 본문 17절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완전하게 한다는 말은 구약시대 백성들에게는 아직까지 율법의 몽학선생 밑에 있었음을, 즉 율법이 회초리의 역할을 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모두 이루니 그것을 믿는 자들에게 율법이 꿀송이가 되고 심령이 소생되고 눈이 밝게 하고 정교하고 세밀한 음성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회초리가 아니라 말입니다. 그것이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율법을 주님이 다 이루시고 순종하시고 이제는 그 의를 우리의 것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종할 수 없으나, 원수를 사랑할 수 없으나, 십리를 동행할 수 없으나, 주 안에서 내게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그가 부요하신 자라도 가난하게 되신 것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에게 부요함은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야 떡반죽 그릇이 차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먼 곳에 가서 선교하고 전도하고 핍박받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내 심령에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유일한 진리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유일한 주로 여호와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가 돌판에 새기시고 선지자와 사도를 통해 주신 말씀, 오직 기록된 말씀을 먼저 마음에 새길 때, 그것이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모든 것을 더한다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 율법을 폐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은 폐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야 좋은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음성이 내 안에서도 메아리쳐야 합니다. 모든 율법을 다 이루신 음성이 내 안에서 메아리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초라하고 약하고 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내 안에서 다 이루었다고 해 주십니다. 왜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점일획이라도 폐하지 않고 이루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18절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 말씀 중에 하나라도 경하게 여기면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 여김을 받는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다 이루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지 못할 것을 말씀하고 지옥에 보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의에 힘입어 우리가 말씀을 지킬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을 경하게 여기면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 일컫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내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요 은혜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 능치 못함이 없다고 고백했다면 우리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율법이 거룩하고 신령하고 선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 안에서 그런 역할을 합니다. 더이상 초등교사나 회초리가 아니라 꿀송이보다 단 것이 되는 것입니다. 떡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말씀에 찔림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하므로, 말씀의 찔림을 받는 것이 바로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하므로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찔림을 우선 받고 이후 하나님이 하시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를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7절, 18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무능하고 내 품성이 보잘 것 없으나 예수 공로 의지해서 좌절하지 않고 또 다시 일어나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시편의 말씀을 봅니다. 율법이 삶의 길, 통치의 길, 복의 길이라고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는 것이 삶의 길, 통치의 길, 복의 길입니다. 우리가 살 때도, 나라를 다스릴 때도 율법을 묵상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맡은 자입니다. 그런 자가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입니다. 모든 일이 형통합니다. 

6. 말씀대로 사는 방법: 예수를 믿으면 말씀은 달면서 찔림이 되어 은혜로 순종하며 살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말씀대로 어떻게 사나요? 예수 믿으면 됩니다. 내 생명을 살려주신 분이 내 생활도 거룩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살리시고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법을 다 이루셨습니다. —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딤전 1:8). 우리는 주야로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율법은 신약시대인 지금 우리에게는 전체 성경입니다. 이제 이 시대 우리에게 언약은 전체 말씀, 성경 신약과 구약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어서 너무나 즐겁고 꿀송이 같이 단 것입니다.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올 한 해 못한 것이 많아도 너무 자조하지 마십시오. 이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더 찔러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말씀에 찔림이 있어야 삽니다. 그것이 없으면, 그저 편안하고 기분좋기만 하면 큰일납니다. 그것이 자는 것입니다. 지금 말씀이 즐겁고 달면 안됩니다. 쓰고 찔려야 합니다. 큰 찔림이 있어야 큰 은혜가 있습니다. 말씀을 다 이루시고 그것을 주셨으므로(요 19:30) 그 공로를 의지하여 우리가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은혜 주십니다. 혹 일시적으로 시험하신다 해도 은혜 주시기 위함입니다. 은혜의 말씀, 은혜의 율법입니다. —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인애(사랑)과 여호와를 아는 것이 동시에 있습니다.


7.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가꾸자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일점일획이라도 그 말씀이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룹니다. 우리에게 소망은 내가 오늘 어제보다 나아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화초가 냉기가 오니 한 번에 다 죽었습니다. 그래도 깨닫는 것은 우리의 최고 소망은 내가 혹시 저 나무처럼 시들어 있지 않은가 내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나를 가꾸는 것은 내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새해에도 역시 최고의 소망거리는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뜻은 거룩함입니다. 그 뜻에 따라 내가 얼마나 변할까 소망하고 내 자신을 소망거리로 삼으십시오. 내년에 이 때 쯤에는 나는 좀더 사랑스러워지고 믿음이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이 최고의 소망입니다. 좀더 높고 넓으면 뭐합니까? 하늘에 못 가져갑니다. 나 자신을 가꿔야 합니다. 내 자신을 가꾸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 앞에서입니다. 한 분 여호와를 섬기고 그의 말씀에 내 마음과 입에 있어 복을 누리는데, 그것이 모두 은혜입니다. 


​8. 말씀은 변개치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나 자신을 말씀에 복종시켜야 한다


본문 마지막에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말씀이 찔림이 있으면 가슴을 치기보다 말씀을 부인하고 말씀 탓을 합니다. 지킬 만한 말씀은 마구 만들어내서 형식주의를 만듭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너무 무섭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금식, 기도 시간 더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내 의가 없으니,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으니 이미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공로만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은 그냥 두고 내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여기에 은혜와 달콤함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이 달콤함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명령하시고 그 은혜로 친히 이루실 때입니다. 홍해를 건너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 성품과 성격과 능력이 안된다고 인정하고 '주님이 말씀을 주시니 주님이 이루어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지상의 삶을 살 동안 내 성격, 품성 다 묶어 놓고 떡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나를 가꾸어야 합니다. '나는 안됩니다' 하면서도 나를 가꾸려고 할 때 하늘의 은혜가 열립니다. 그 때, 찔러주심과 은혜 주심에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그것을 깎아내는 것은 은혜를 깎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힘들게 느껴지면 그만큼 은혜가 큰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우리가 '아멘'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말씀을 보겠습니다. —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나는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 그리고 나를 쳐서 복종시킨다.'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아무리 해도 안된다고 하고 해서 말씀을 바꾸거나 포기하면 끝입니다.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그대로 복종하면 복이 있습니다. —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 22:21). 복도 받고 상급도 누리는 것입니다. 지상의 복과 천국의 상급은 은혜 외에는 없습니다. 은혜로 누리는 것만 천국에 가져갑니다. 나머지는 절대 아닙니다.


​9. 결론

어떻게 은혜를 누립니까? 나는 할 수 없으되 예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더럽고 모자라고 허물이 있는 것이 마땅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래도 예수님 앞으로 나가서 붙들면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없는 것을 들어 있는 것을 폐한다고 하신 만유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찾으십시오. 말씀을 바꾸면 절대 안됩니다. 탐심을 안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꾸미거나 말씀을 바꾸는 것이 아닌, 그런 모습 그대로 놓고 그런 나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나아가 기도할 때 은혜 위에 복이 역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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