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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2 [20190113][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41)] 주 안에서 자라감을 믿음 (엡 4:1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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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19-01-14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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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3][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41)] 주 안에서 자라감을 믿음 (엡 4:11-16) 문병호 목사


*음성파일: 게시물 하단 "관련링크"에서 청취 혹은 내려받기 가능합니다. 


(엡 4:11)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엡 4:12)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엡 4: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녹취록>


1. 에베소서: 택함, 그리스도, 교회

에베소서는 옥에서 에베소에 있는 교인들에게 쓴 서신인데, 그 주요 주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창세 전에 택함 받은 백성들에 대한 은혜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의 자녀를 택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그리스도가 누구신가입니다. 그가 모든 의를 이루시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것을 행하셨기에 이제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선물로 인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교회입니다. 창세 전에 택함 받은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아 이 땅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바로 교회 안에서 교회의 지체로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2. 성도가 그리스도께로 자라감
에베소서는 교회에 관해 가장 잘 알려주는 성경이며 무엇보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자 몸이고 교회의 신랑이시라는 것, 그리고 성도는 교회의 지체라는 것을 잘 알려줍니다. 또한 교회의 직분자들은 누구고 교회의 일을 하는 자들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특히 직분자를 중심으로 해서 11절에 다섯 직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직분이 현재 모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는 임시적으로 주어져 현재에는 있지 않습니다. 현재에는 목사와 교사, 그리고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장로, 집사만이 있습니다.
본문 12절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고 합니다. 즉,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 성도의 자라감이고 교회의 몸을 세우는 것이 교회의 자라감입니다. 또한 15절, 16절 역시 범사에 그리스도에게 자라간다고 하여 성도의 자라감을 말하고, 각 마디가 서로 세운다고 하여 교회의 자라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6절은 각 지체의 분량대로 자라간다고 합니다. 이는 성도가 자라가고 그 자라감의 분량대로 교회도 세워져간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자라지 않는데 교회가 자라는 일이 없고, 성도가 자라는데 교회가 자라지 않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교회의 외향이 자란다고 해서 성도가 자라는 것이 아니요, 성도는 기도와 말씀과 믿음과 찬양으로 올곧게 자라는 가운데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세워져가는 것이요 화려한 외형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라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아이들은 자라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자라간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우리도 모두 자라기 위해 이 땅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기독교는 교육을 강조합니다. 구약은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어라" 하면서 범사에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누룩, 겨자씨의 비유 등으로 자라는 것에 대해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 비유도 모두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라도록 명령받았고 하나님은 필히 그것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자라야 할까요?

1) 교회 안에서 자라감

첫째, 교회 안에서 자란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 이 땅에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몸이시요 우리는 지체입니다. 지체는 팔다리를 의미합니다. 또한 15절은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자라가는데 그가 바로 머리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고, 그 몸 중에 머리가 되신 분이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터와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와 공로 위에 교회가 서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유능한 목회자가 세우는 것도 아니요, 교회의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요, 그 터에서 자라게 하시는 분도 그리스도이십니다. 다른 것으로 우리가 자라지 않습니다. 식물이 물과 빛과 양분으로 자란다면, 성도는 교회를 위해 자기 자신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갑니다. 그러니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자라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모든 자양분이 우리에게 흘러오고, 주님이 성장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영적인 정맥과 동맥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자람의 터일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시므로 생명을 낳는 곳이 되기도 합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히 2:11). 거룩하게 하는 자는 그리스도이고, 거룩함을 입은 자는 성도입니다. 다 한 근원에서 났다고 함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녀를 말합니다. 교회는 생명을 낳는 곳이요 생명을 자라게 하는 곳인데 교회가 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자기 자신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교회에서 역사하므로 교회가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의와 공로와 영생의 생명의 은혜가 역사합니다. 그것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교회는 말씀을 전하여 구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초대교회를 보면 이와 같이 그들이 모이기에 힘쓰고 믿음이 자라가니 그리스도인으로 불리고 땅끝까지 전도자가 되어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 키프리안, 칼빈은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교회는 어머니와 같다고 했습니다. 무교회주의자나 신비주의자들은 교회가 필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자신이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교회에 들어가면서 입교의 세례를 합니다. 교회의 지체로 교회에 들어가는 것으로서 거듭남을 인치는 것이 세례의 의미입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감

둘째, 교회 안에서 자라되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갑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범사에 자라가라고 말씀합니다. 범사는 모든 일인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자라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라는 만큼만 자랍니다. 키가 큰 나무도 있고 작은 관목도 있습니다. 또한 이끼도 있습니다. 범사에 자라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장이 있음을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키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신장과 무게와 연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로 자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 우리가 자라면 됩니다.
아이가 낳을 때 부모를 많이 닮는다고 하지만, 제가 요새 생각하는 것은 나이가 들면 오히려 더 닮는다는 것입니다. 저도 제 모습을 보면 옛날 아버지 모습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 입교하고 세례받고 그리스도께로 자라가는데, 자라면서 우리는 점점 더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태어날 때도 부모를 닮지만 자라면서 더 부모를 닮습니다. 주 안에서 범사에 자란다는 것은 예수께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다 우리에게 주시므로 범사에 그에게로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므로 그에게로 자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딱 올라가면 그의 얼굴을 마주보고 온전한 분량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로 자라간다는 것은 그의 교훈, 양육, 지혜, 계시로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그의 행하심과 어떠하심,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지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 주님을 아는 만큼 닮아갑니다. 막연한 예측과 판단으로는 주님과 닮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행하셨을지 모든 행사 가운데 생각하는 것입니다.
먼저, 이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이므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치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게로 내려오면 우리가 스스로가 아닌 부표처럼 내려온 은혜에 의해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람의 방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인데, 내 자질과 공로로 절대 그렇게 못합니다. 사도들의 고백과 같이 우리는 잘해야 예수를 죽인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 가운데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생명과 생기와 생활을 주셨으므로 우리가 자라가는 것입니다. 범사에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 자라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것을 내 것으로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자라가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닌, 전적으로 여호와를 의뢰하고 만사에 구하며 그의 뜻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이 땅에 오셔서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졌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성도는 자라갈 때 사랑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지금의 높이나 수준이 아닌 자라감, 변화의 양을 기뻐하십니다. 아무리 어떤 사람이 높다고 해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좋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지혜와 키가 자라가면서 그렇게 되신 것입니다(눅 2:52). 이것이 우리에게 큰 은혜가 됩니다. 조금만 변해도 하나님이 사랑스럽게 여기신다니 말입니다. 내가 조금 변해도 큰 위인이나 업적이 아닌데 말입니다. 지금 나의 모습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여전히 볼품이 없으나 하나님은 사랑스럽게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가치는 변화의 가치입니다. 절대치는 하나님께 있으며 우리는 상대적입니다. 그러므로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마음 속에 영적 진보를 이루어 자라감을 하나님이 사랑스럽게 여기십니다. 조금 삐끗하는 것은 하나님이 고쳐 가십니다. 그러나 그러다가 바로 서면 잘했다고 칭찬하십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하고 실족이 없지 않으나 보듬어 주시는 은혜가 더 큰 것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는 말은 무엇인가요? 떼를 쓰고 경우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요, 오히려 자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포기를 안합니다. 포기는 어른들이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할 만한 상황이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사랑스러워하실 기회입니다. 내가 우울하고 답답하고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며 세상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은 그 때가, 나는 무능하고 미련하고 속되고 죄가 많고 허물이 많고 온전치 못한 그 때가 하나님이 사랑스러워하실 기회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가 우리의 변화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잘난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못난 사람이 변합니다. 그러므로 내 잘못, 내 부족함을 가지고 나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니 이 새해에 하나라도 바꿔보자는 것입니다. 기분도 좀더 상쾌하게 가지시고, 한 발자국 높게 서서 조금 더 편안하게 나무를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한편, 본문 14절은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이는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때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지 말라는 말은 곧 평생 자라가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즉, 어린아이에 머물지 말고 계속 자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 14절은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과 온갖 풍조에 밀려 있는 어린아이라고 했습니다. 즉, 세파에 흔들리는 자리에 머물지 말고 범사에 자라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3)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자라감

셋째, 15, 16절을 볼 때, 우리가 자라감은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 가운데 자라는 것입니다. 자란다는 것은 꽉 채우는 것입니다. 달이 차는 것, 해는 해만큼 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 소명만큼 채워 가는 것이 바로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요, 하나님이 이 지상의 나그네 삶에서 요구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엡 4:1). 부르심을 받은 일대로 자라가라고 하십니다. 갈렙과 같이 많이 구하십시오. 그러나 그 가운데 감사하십시오. 끝없이 야베스와 같이 지경을 넓게 먼 곳을 바라보되 감사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부르심에 합당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멀리 신령한 것을 높이 바라보되 감사하십시오.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한다’고 합니다. 소명에 합당하게 행하며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 봉사의 일은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특히 성도의 소명은 교회를 향한 교회의 지체와 직분자로서의 소명을 의미합니다. 온전하게 하여 그 봉사의 일을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주의할 것은 온전하게 되어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의 일을 하면서 온전하게 되는 것이지 온전해져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출애굽기를 가만히 보면 하나님이 맞추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건널 때는 물을 바짝 마르게 했습니다. 이것은 아직 초보적인 믿음입니다. 그마저도 뒤에서 바로가 쳐들어오니 마지못해 간 것입니다. 아무리 바다가 갈라졌다고 해도 언제 물이 들어올지 모르니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요단강을 건널 때는 물이 계속 흐르다가 발을 들여 놓으니 멈춥니다. 하나님의 교육방식입니다. 믿음이 조금 자라면,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리 저리 구르면서 그 정도 믿음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발을 담글 때 물이 멈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에게 맞추시는 교육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수준에 맞추어 부드러운 것과 단단한 것을 가려 먹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막을 일은 모두 막으십니다. 감당할 만한 시험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를 움직이는 가운데 그렇게 하십니다.
본문에서 봉사의 일을 하면서 온전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 의미입니다. 은사보다 직분이 먼저입니다. 일을 맡기면 은사를 주십니다. 일도 없는데 은사가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교회의 직분에서 가장 중요하게 볼 것은 직분이 있는 곳에 은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을 주시면 늙은 갈렙에게도 힘을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성도가 일하는 가운데 성도를 온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우리 주님도 온전하게 되심은 고난 가운데 순종을 배우심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도 통곡 가운데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인의 모습은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상의 한 주간의 삶을 보호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고백을 매 주일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상의 삶은 나그네의 삶입니다. 이 나그네 삶 도중에 모든 것을 제공하시되 교회의 일을 하면서 온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3. 자라가는 지상교회는 천상교회에 연속된다

본문 12절의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봉사의 일을 한다는 것은 교회의 일을 섬겨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감을 의미합니다. 이 교회가 새 하늘과 새 땅에 가면 천상의 교회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지상의 교회가 마지막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천년왕국이 지나 새 하늘과 새 땅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의 교회와 천상의 교회는 단절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교회의 비밀을 알아야 깊은 성도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이 땅에서 속할 뿐 아니라 천상에서 성도가 속해 있는 터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내가 자라고 양분을 섭취하고 예배드리고 찬송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를 섬기는 가운데 교회를 세우는 것이 성도가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를 잘하면 바로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각각 우리 성도님들의 분량대로 하나님이 맡기신 그것대로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자람과 교회의 세움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두 가지 일을 감당합니다. 세상에서는 생업이 있고 교회에서는 교회의 일이 있습니다. 꼭 직분자만 일을 맡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는 전업으로 감당하는 것이요, 다른 직분자들은 특별한 일을 감당하는 것이요, 모든 성도는 다 교회 일을 감당합니다. 선교사뿐 아니라 모두가 땅끝까지 증인이 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달란트가 있는데 그것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것을 아는 것, 그 가운데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직분,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의 공통점은 믿는 것과 아는 것을 돕는 자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아닌 말로 교회가 바위 위에, 수풀 안에 있으면 어떻습니까? 천막 치고 통나무 위에 세워진 교회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엡 4:12). 이것이 믿음과 사랑입니다. 이 가운데 교회도 서고 우리 신앙도 자랍니다. 이것이 성도의 자라감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과 믿는 것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선포하는 교회, 가르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전도는 선포요, 선포는 강단의 설교도 됩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빌 1:9). 지식과 총명으로 사랑을 풍성하게 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믿는 것과 아는 것에 자라가 온전하게 되고, 그 가운데 맡겨진 봉사의 일을 감당하며, 그 가운데 내가 자라고 교회가 서는 것이 자라감의 모습입니다.
교회의 자라감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이 지상의 교회는 연속적으로 천상의 교회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교회는 없어지고 천상의 교회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하는 것은 세대주의 이단입니다. 지상의 교회와 천상의 교회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상의 교회의 인침은 천상의 교회에 가닿습니다. 세례 역시 연속적입니다. 그래서 이 비밀이 큰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우는 자가 복된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 애통하는 자가 믿음이 깊은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내가 자라는 것입니다. 과연 나에게 십자가지기교회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지상에서 교회의 지체로서 살아가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 소명, 그 선택이 우리는 십자가지기교회인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회원이요 지체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이곳에 우리를 두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특정한 어떤 것이 아닙니다. 기도와 고백과 찬송과 헌신에서 자라자고 얼마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의 고백은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말씀에서 자라야 합니다. 말씀에 '아멘' 하고, 기도에서 자라야 합니다. 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찬송에서 자랍니다. 그리고 헌신에서 자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구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총체적으로 예배에서 자라는 것, 그것이 바로 성도의 자람입니다.

4. 결론

우리는 'grown up baby'가 아닌 'growing up adult'가 되어야 합니다. 다 자란 아이가 아닌, 계속 자라고 있는 어른이 되자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되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기를 원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며 범사에 그리스도께로 자라는 하나님의 큰 은혜와 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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