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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본질과 당위


           

교회의 은사, 직분, 사역 | 고전 12:4-7 | 문병호 목사 | 교회의 본질과 당위 22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20227


교회의 은사, 직분, 사역 | 고전 12:4-7 | 문병호 목사 | 교회의 본질과 당위 22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20227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녹취록>



1. 교회의 은사, 직분, 사역


교회가 12년차가 되면서 하나님이 때가 찬 경륜을 이루심을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란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성도의 구원을 생각할 때, 우리를 이 땅에 교회의 지체로 두시고 성도의 삶을 살게 하시는 교회의 비밀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이들은 ‘긍휼의 그릇’이라고 했는데, 교회가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제는 제가 수유리에 있는 평강교회에 다녀 왔습니다. 제 제자가 거기에 위임을 받아서 격려사를 하고 왔습니다. 많은 분들의 위로와 권면과 말씀을 듣고 성도님들이 기뻐하며 주의 종을 맞이하는 것을 보며 많이 뭉클했습니다. 

과연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는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이끌어 가시며 이 땅에서 자기를 드러내시는 가장 큰 모습이라고 여겨집니다. 매주 교회에서 모여 찬양하며 예배드리는 모습이 하나님이 그 영광의 임재에 함께 하시므로, 이 땅에 교회가 없다면, 우리는 자기 안에 머물고 자기가 옳다 하며 그러한 연약함이 더할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를 돕기도 하고, 우리가 그 안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그런 모습을 통하여 또한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시는 은혜를 기억하게 됩니다.

이제 교회에 대한 말씀을 22차례 전하게 됩니다. 이후에 봄쯤 되면 사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설교 주제는 좀 큽니다. 은사, 직분, 사역을 다룹니다. 오늘 본문 4-6절을 보면,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합니다. 교회에는 은사, 직분, 사역이 있습니다. 은사, 직분, 사역은 교회의 단위고 교회 안에 있습니다. 교회를 떠난 은사, 직분, 사역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2-14장은 은사의 장이라고 하고, 13장은 사랑의 장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12장도 은사의 장이라고 합니다. 은사, 직분, 사역은 다양하지만 같습니다. 



2. 하나님의 자녀의 세 이름: 신자, 성도, 교인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창세 전에 택정하신 자를 때가 차매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또 하나의 신분은 교회의 지체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의 지체가 아닌 자는 없습니다. 교회의 지체인데 하나님의 자녀인 자가 없습니다. 이러한 신분은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교회의 지체는 “그리스도의 것”(갈 3:29)이고,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교회의 모든 일은 그리스도께서 부여하신 것이고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자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몸으로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몸은 우리 자신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12:1 “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적 예배는 신비주의적 뜨거운 예배가 아니라 말씀에 따른 예배, 말씀에 순종함입니다. 삶이 예배입니다. 우리에게는 ‘신자’, ‘성도’, ‘교인’이라는 세 이름을 가지고 삽니다. ‘신자’의 삶은 마지막 때 믿음으로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움직이기는 겁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로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이 이루시되, 우리를 통하여,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거룩함입니다. 그래서 성도로서 거룩에 힘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눕고 자자 놀자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가 힘쓰는 것이 거룩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하나님이 우리 속에 친히 일하시고 내 속에서 수고하시는 이의 수고로써 내가 수고를 다합니다. 이런 개념이 사실상 구원에 있어서는 성도의 삶의 완성입니다. 성도로서 거룩한 삶을 이루어 영화로 나아갑니다. ‘교인’의 삶은 교회의 지체로서 은사를 받고 직분을 얻고 사역을 합니다. 이처럼 신자, 성도, 교인으로서 살아 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 세 가지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결핍될 수 없습니다. 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되어야 합니다. 간혹 오해가 있어 신자로서 열심을 내면서도 성도로서의 삶은 등한시하고, 신자와 성도로서는 힘쓰면서 교인으로서는 냉랭한 것은 옳지 않습니다. 



3.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우리는 그 지체이다


교회의 지체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교회를 떠나거나 지체가 몸을 떠날 수 없습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엡 5:32). 교회와 그리스도가 한 몸입니다. 

첫째, 우리는 교회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접붙임받은 것은 교회의 지체로 접붙임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과 입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있습니다. 이것을 세례 때 인칩니다.

둘째, 우리는 교회의 지체로서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붙어서 각각 주의 뜻을 이룹니다. 고린도전서 7: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부르신 그대로, 나눠주신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라고 하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부르심은 소명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하나님이 쓰시면서 권능을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7에서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이라고 합니다. 구약은 하나님을 만났다는 개념이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셔서 아들의 의를 누리며 살게 됩니다. 구약은 표하는 것이라면 신약은 그 실체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가 그와 함께 아들이 되어, 동시에 교회의 지체가 됩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 우리는 지체가 됩니다. 에베소서 4:12,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4:15,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교회를 세우는 것과 각 성도가 자라가는 것이 함께 있습니다. 성도 각자가 그리스도와 하나됨이 있어야, 성도 서로 간의 하나됨이 뒤따릅니다. 이것이 질서입니다. 성도가 하나되면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각자 하나하나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각자가 자라갑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자라가는 것은 교회 안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 비밀이 큽니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종기는 몸에 붙어 있지만 생명은 없습니다. 몸에 붙은 지체는 생명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15-17,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몸 전체에는 피가 돌고 생명이 됩니다. 이것이 한 성령이요 같은 성령입니다. 오늘 본문에 “같은 성령”, “한 성령”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지체에 있는 생명은 하나이고 같습니다. 각 지체에 그리스도의 피가 흘러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13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그가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성령은 한 성령이요 같은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은사는 더 귀하거나 천하지 않고 하나입니다.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이 가운데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4. 교회의 은사


고린도전서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은사는 선물입니다. 은사는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여서 주어지는 능력, 작용, 열매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여 감동이 생깁니다. 감동이 생기면 찬송하고 전하고 돕습니다. 은사는 내 자질같이, 내 권능, 내 특권 같은 것이 아니고 항구적이지 않고 하나님이 쓰시려고 주시는 것입니다. 은사는 신분증이 아니고 직분과 연결되고 하나님이 용도대로 뜻대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사는 누리는 것입니다. 은사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만, 우리 편에서는 누리는 것입니다. 나는 즐겁게 누리지만 다른 이는 그것에서 유익을 얻습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 감동, 능력, 열매를 누리는 것입니다. 내가 누리지 않고 전도가 되겠으며, 기쁨이 전해지겠습니까? 은사는 철저히 교회 안에 부여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떠난 은사는 없습니다. 교회에 지체로서 하나님이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홉 가지 은사가 나오지만, 이것에 한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혜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이신 그 말씀입니다. 모든 은사는 같은 성령에서 나옵니다. 은사는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간증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매개로 교만해져서는 안 되고 특권이 아닙니다. 은사는 겸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은사는 누리는 것이기에 감사하고 오히려 섬겨야 합니다. 은사로 인해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지식의 말씀”은 우리의 고백의 말씀, 가르칠 만하게 풀어서 알리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구원의 믿음이 아니라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입니다. “병 고치는 은사”는 질병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회복시키고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능력 행함”은 각종 능력을 가리킵니다. 너무 구체적으로 보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언함”은 구약으로 말하면 선지자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들 분별함”은 악한 영과 거룩한 영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각종 방언 말함”은 사도행전적 방언인데 이러한 것은 지금은 그쳤습니다. “방언들 통역함”이 있습니다. 은사는 이것들로 한정될 수 없습니다. 최고의 은사는 사랑입니다. 아무리 좋은 칼도 악한 데 쓰면 헛됩니다.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5. 교회의 직분


고린도전서 12: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직분은 고린도전서 12:28, 에베소서 4:11에서 나옵니다. 제가 지금 각각을 다 설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직분은 계급이 아닙니다. 직분은 주가 같습니다. 직분은 ‘디아코니아’, 즉 섬김입니다. ‘minister’는 사역자, 종이라는 의미로서 섬기는 것입니다. 서로 돕는 것도 직분입니다. 즉 섬기는 것입니다. 섬기고 구제하고 긍휼을 베푸는 것은 집사의 일입니다. 위로하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중요합니다. 위로는 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장로의 직무입니다. 위로는 말씀으로 권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잘 듣고 권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섬기는 것은 여러 가지이지만 주는 하나입니다. 주가 하나라는 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다스리며 그 가운데 직분이 있다는 의미도 되지만, 또 다른 의미는, 그리스도의 의에 의지해서 우리는 직분을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즉 내 의로는 직분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의지해서 긍휼을 베풀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직분입니다. 

그래서 직분이 있는 곳에 은사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일은 없는데 은사가 있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은사는 신분이나 자격이 아니라 섬기라고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없이 있는 일컬어지는 은사는 다 헛됩니다. 직분이 있는 곳에 은사가 따라갑니다. 긍휼을 베푸는 일을 맡기시면 긍휼히 여기는 은사를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긍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주어지거든 ‘아멘’ 하시면 하나님이 은사를 주십니다. 은사는 그런 것입니다.



6. 교회의 사역


고린도전서 12:6,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교회의 모든 사역은 한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각각의 사역은 교회의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고린도전서 12: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하나님의 몸을 고르게 하는 것이 은사, 직분, 사역입니다. 그래서 누가 잘났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유익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고 서로를 고르게 합니다. 이 비밀이 큽니다. 교회의 은사와 직분과 사역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