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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220529 주일낮예배] 새 예루살렘 교회(계 21:1-7) - 문병호 목사


2022년 5월 29일 

십자가지기교회 주일낮예배


새 예루살렘 교회


문병호 목사



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계 21:1-7)




1. 지상교회와 천상교회의 연속성

     오늘 말씀은 요한계시록 21장은 마지막 때의 모습입니다. 영원한 교회에 관한 환상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성, 새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교회는 성도의 신랑 되시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래서 지상의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예배드리고 섬깁니다. 지상의 교회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보이는 교회 같아도 천상의 교회가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불문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교회가 있습니다. 지상의 교회는 끝남이 없고, 천상의 교회와 단절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상교회와 천상교회에 베푸시는 은혜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는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도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그리스도가 머리 되십니다. 지상에서도 천상교회를 맛보고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일하신 주가 우리의 머리 되시고 남편 되시기 때문입니다. 


2. 새 하늘과 새 땅

     1절에서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롭다는 말은 평범한 말일 수 있지만 가장 신비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새롭다는 것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새로 만들어 주시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아주 복잡하고 심오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의 교회를 어떻게 표현하실 수 있을까요? 아름답다? 화려하다? 값지다? 뭔가 지상과 비교해서 생각하기 쉽지만, 하늘의 것을 지상의 최고의 것으로 표현해도 못 미칩니다. 지상의 질서와 하늘의 질서는 다릅니다. 지상의 최고의 것은 지상의 것일 뿐 하늘의 것은 아닙니다. 하늘의 것은 전혀 새롭고, 우리가 완전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는 것은 사도 요한이 본 마지막 환상입니다. 앞으로 있을 교회의 환상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주님이 재림하신 후에 성도들이 의인의 부활, 영생의 부활을 하고 의인의 심판을 받을 때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 의미는 첫 창조 또는 타락한 인류로 말미암아 함께 신음하는, 허무한 데 굴복한 하늘과 땅입니다. 바다도 처음의 것이기에 사라집니다. 2절 “내가 보매”는 하나님이 특별히 보여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사람이 만든 것은 밑에서 위로 쌓습니다. 사실상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휘장도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야곱의 사닥다리로 위에서 내려왔습니다. 


3.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책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는 초대교회인 5세기 경에 살았는데, 로마 제국의 말기를 보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로마가 영원하고 로마의 평화가 계속될 줄 알았습니다. 교부요 신학자인 어거스틴은 그러한 상황 가운데 사도 요한처럼 환상을 본 것은 아니지만, 임박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그 책을 쓴 것입니다. 지상의 나라는 결국 소멸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 책에서도 “도시”를 말하는데, 오늘 본문에서 “성(城)”을 말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에만 생각하면 됩니다. 거룩한 것은 구별되고 하나님께 안길 수 있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상급을 받지 못하면 괴로워하곤 합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상급은 있으나 괴로움은 없습니다. 이것이 지상과 천국의 차이입니다. 지상의 질서로 천국에서 최고의 상을 받는 것은 아니고, 천국에서 상급을 덜 받았다고 부족하지 않습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거룩합니다. 알 수 있는 것은 새롭다는 사실뿐입니다.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새로운 것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지상의 것을 끌어올려서 천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새로운 것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신부는 교회, 남편은 그리스도입니다. 남편에게 걸맞은 신부의 모습, 예수 그리스도에게 걸맞은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1차적으로는 공간이지만, 택한 백성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신부가 준비해서 남편을 맞아야 하는데, 위로부터 완전한 신부됨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온전히 하나되는 그 교회의 모습은 우리가 소망할 바입니다. 이것이 주어지는 것이고 우리의 것이며, 우리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때 누릴 것입니다.


4. 우리가 기쁨 자체가 될 것이다

     함께 읽을 말씀은 이사야 60-65장, 에스겔 40-48장입니다. 이 말씀들은 오늘 본문의 새 예루살렘의 모습이 더 잘 그려질 것입니다. 이사야 65:17을 보면,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합니다. 왜 이전 것은 기억되지 않는다고 할까요? 지상의 것은 지나가고, 오직 은혜만 남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하늘에 가져갈 것은 은혜밖에 없습니다.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것은 새롭게 창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사 65:18-19). 여기서 즐거움, 기쁨이 세 번 연거푸 나옵니다. 이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는 새롭다는 것과 지어서 주신다는 것과 즐겁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즐거우냐면,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여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그 백성입니다. 새 예루살렘의 본질은 기쁨입니다. 우리 자신이 기쁨입니다. 우리를 기쁨으로 삼으십니다. 저는 이 말씀이 천국을 가장 잘 알려 준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자신이 기쁨입니다. 기쁨의 근원은 예수님이신데, 우리는 기쁨 자체가 됩니다. 그래서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5. 하나님이 친히 함께 계시다

     에스겔 40:20 “나를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그 성의 이름은 “여호와삼마”(겔 48:35)입니다.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이사야는 즐거운 성이라고 불렀고, 에스겔은 여호와삼마라고 불렀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이라고 했습니다. 벧엘은 여호와의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벧엘이 여호와삼마입니다. 하나님이 그 성전에 계시고 우리는 기쁨 자체가 되는 것이 새 예루살렘입니다. 에스겔 44:4을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찼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성전에서 생수가 흘러 나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에스겔이 본 성전 환상입니다. 

     우리는 새롭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새롭게 지어주십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합니다. 우리가 기쁨이 됩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습 3:17),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하늘 천사들이 노래했던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새 예루살렘입니다.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계 21:3). 함께 계신다는 것이 강조됩니다. 이것이 여호와삼마입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함께 있습니다. 스가랴 14장에 보면, 마지막 때 이스라엘을 치러왔던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킨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초막절을 지키지 않으면 비를 내리시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초막절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초막절이 영원을 뜻합니다. 알곡을 들이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예루살렘을 치러왔다가 초막절을 지키게 됩니다. 이것이 그 장막입니다. 요한계시록 21:3의 하나님의 장막은 스가랴 예언의 성취입니다. 마지막 때 우리는 알곡으로 들인다는 것의 성취입니다. 그것이 초막절은 수장절입니다. 열매를 들이는 절기입니다. 이 수장절이 마지막 새 예루살렘을 알려 주는 종말론적 절기입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꼐 계시다고 합니다. “함께”가 세 번 나오는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로마서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에베소서 2:5-6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이 모든 함께가 완전히 성취되는 것이 요한계시록 21:3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함께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임재요, 그분이 우리와 완전히 하나됨을 의미합니다. 그분 자신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것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6. 죄가 다 지나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계 21:4). 이 땅에 눈물이 얼마나 많습니다. 꼭 눈물을 흘려야 눈물입니까? 마음으로 얼마나 슬퍼합니까? 겉으론 다 웃지만 내면의 슬픔이 얼마나 많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십니다.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닦아 주십니다. 우리 자신이 기쁨입니다. 기쁨의 근원이신 분과 하나되기 때문에 우리가 기쁨입니다. 다시는 사망이 없게 됩니다. 육체적 사망도 있지만, 하나님을 떠나는 영적 사망도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죄를 짓고 나무 뒤로 숨는 것, 형벌의 사망도 있습니다. 이런 사망이 모두 사라집니다. 이러한 가능성 조차도 없어집니다.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 됩니다.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게 됩니다. 다시 있지 않다는 것은 강조적 표현입니다. 애통, 곡, 아픈 것은 모두 죄의 현상입니다. 이러한 죄의 현상이 더 이상 없게 됩니다. 상급은 있으나 애통은 없습니다. 이 땅에서는 상급은 없는데 애통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생각해도 그것은 이 땅에 속할 뿐입니다. 새롭고 거룩하고 기쁨이 되고 영광인 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다고 합니다. 처음 것들이 지나갔다는 것은 그저 허무한 것인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것이 지나갔다는 것은 만물이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7. 우리의 변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겔 21:5). 바로 우리 자신이 새롭게 되고, 그러한 우리 자신에 걸맞은 만물이 조성됩니다. 인간에게 걸맞게 만물이 지어졌는데, 인간이 타락해서 만물이 인간과 어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허무함입니다. 악한 인간은 아름다운 꽃과 어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만물이 새롭게 되었다는 것에서 중심은 사람입니다. 만물 창조의 중심은 사람이고, 새창조의 중심도 사람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새롭게 되고 그것에 걸맞은 것을 주십니다. 그것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고린도후서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런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더 이상 가리지 않고 주의 영광을 봅니다. 우리가 얼마나 변화되면 이렇게 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받아서 우리가 그 영의 완전한 역사로 하나님을 마주보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히 변화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마주보는 것이 그 영광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이 얼굴은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나 그때는 선명하게 본다고 말합니다. 그때는 부분적으로 보나 그때는 전체적으로 봅니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변화되었으면 하나님을 뚜렷이 보고 전체적으로 보겠습니까? 천국은 사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변화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8. 영생

     이것이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계 21:6). 하나님이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9:30 “다 이루었도다”는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6은 능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표현해 보았습니다. “다 이루어진 대로 다 되었도다.” 주님은 내가 이루었다고 능동태를 쓰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이 나를 통해 다 이루게 하셨도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 이루어진 대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합니다. ‘become’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이것은 하나님 또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사야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요한계시록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여기 만큼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우리의 아들 됨을 정확하게 나와 있는 곳이 없습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 됨입니다. 3절에 “하나님의 백성” 됨도 영생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9. 결론

     23절을 보면,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물질이나 사물이나 해와 달 같은 것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빛이 다 지나갈 것이고 영광의 빛이 있습니다. 이사야 60:19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놀라운 말씀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영원히 될 일이 이미 예언이 되었고 요한계시록에도 기록되었습니다. 여호와가 함께 계시는 영원한 성전은 우리 십자가지기교회와 지상의 교회와 연결선상에 있습니다. 단절되지 않습니다. 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김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