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의 교회 | 롬 9:19-29 | 문병호 목사 | 교회의 본질과 당위 18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20130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녹취록>
1. 교회: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입니다. 제가 공부했던 스코틀랜드에 가보면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지만 교회를 '키르크'(kirk)라고 부릅니다. 성경 헬라어 원어로 교회가 부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의 '에클레시아'인데, 그것을 영어로 '키르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교회의 전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요구조건, 자격조건도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즉 하나님이 부르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교회의 자녀가 되고 그 자녀로서 교회의 지체로서 하나님의 은혜 받은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은 일부이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남은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아닌 일부를 택하시고 남은 자로 두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신자요 성도요 교인으로 우리가 살아갑니다. '믿는다'라는 의미에서, '거룩함을 입었다'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교회의 지체로서 각각의 이름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이 열리면 이 시민권을 보여 주고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2. 남은 자
구약의 남은 자는 하나님이 혈통상 남은 자로 이스라엘 백성을 삼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율법과 언약을 맡기고 가나안 땅을 허락하십니다. 그들을 통해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구약도 가만히 보면 단순히 혈통만으로 자녀삼으신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고 이스라엘의 모든 자가 아닌 아브라함의 씨, 그 중에서도 이삭에서 난 자라야 하나님의 씨라 부르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첫 아들은 이스마엘인데 그는 하나님의 교회에 들지 못합니다. 육신의 자녀가 아닌 약속의 자녀가 씨로 인침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자주 씨라는 말로 선택을 표현합니다. 무조건적인 은혜로 선택을 받아 생명을 받은 자를 씨라고 하는 것입니다. 언약의 자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특히 남은 자를 뜻합니다. 이제 신약시대 때는 이스라엘의 영토적 혈통적 의미가 아닌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를 온전히 이루십니다. 더 이상 혈통의 한계가 없고 지역의 한계가 없습니다. 성령을 받기만 하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그 성령을 받은 열두 제자와 120 제자, 그리고 지난주까지 본 말씀처럼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온 이방 땅까지 하나님의 부름 받은 자가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아멘 하고 말씀을 받으면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의 약속이 하나님의 언약의 비밀이 풀리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는데 다른 것이 아닌 바로 말씀을 받고 아멘 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 때는 바로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교회의 남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갈라디아교회는 일찍이 말씀을 잘 받고 신앙생활을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율법이 들어옵니다. 할례도 받고 하면 더 좋지 않겠냐, 금상첨화라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예와 아니오가 뚜렷합니다. 금상첨화의 신앙이 아닙니다. 구원의 의는 그리스도의 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들을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성경은 칭합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의 씨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약시대 때의 구원은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태어남도 자라남도 아니요, 우리가 스스로 취함도 아니요, 오직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때가 찬 경륜을 쫓아 믿음도 구원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엡 2:8). 그저 받았으니 그리스도와 십자가만 자랑하고 내가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속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사는 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문을 여는 데부터 닫는 데까지 모두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내 공로가 없습니다. 은혜가 넘칠 때 상급이 넘칩니다. 은혜가, 우리 안에 향이 들어왔으니 향기를 발합니다. 향을 발하는 게 향수병이 아닌 향수가 하는 일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향수병이 향을 발하는 그것마저도 상급으로 주십니다. 생활도 상급도 은혜입니다. 전적 은혜입니다. 내가 뭘 한다고 하면 악해집니다. 그래서 이제 교회는 은혜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내 것 삼아 주신 그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약간 어려운 말일 수 있으나 그리스도의 것을 내 것 삼아 주시는 것을 전가라고 합니다. 의의 전가, 의를 받은 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3. 무조건적인 사랑으로써 택하심
로마서 8장까지는 성화가 나오고 9장과 11장은 살아남과 살아감의 은혜가 오직 택하심에 있는데 그 택함의 모임이 바로 교회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9장부터는 택하심의 장, 교회의 장이 시작된다고 하기도 합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교회의 자녀들이 어찌하여 지체가 되었는지, 그것은 바로 무조건적 선택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교회의 백성이 된 것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멋대로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봐야 합니다. 야곱은 이름 자체가 속이는 자입니다.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좋은 이름이 아닙니다. 혈육으로 보면 야곱은 에서보다 또한 동생입니다. 흠모할 것이 없습니다. 당대에 남자로서 한 가정과 지역을 운영하고 지배하는 능력은 에서가 있었지 야곱은 재목이 아닙니다. 그런데 야곱에게 뭔가 한 가지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어쨌든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영적으로 맏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벧엘에서 하나님이 하늘 사닥다리로 만나주시고 밧단아람에서 함께 하셔서 큰 가정과 재산을 이루게 하시고, 얍복강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이스라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시점에 하나님이 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주십니다. 간사하고 속이는 자라는 욕심쟁이 야곱이라는 이름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주십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이긴 것이 아닙니다. 환도뼈가 꺾여서 절뚝거리게 됩니다. 사실상 하나님이 져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져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기도해서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져주신 것입니다. 그 져주신 것이 브니엘, 얼굴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에서를 미워한 것이라기보다 야곱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처럼 사랑한 것이 바로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이처럼"이라는 말은 택함 받은 사람이 아니면 모릅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이처럼 사랑했다는 것은 독생자를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무조건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출발은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는 조건이 없습니다. 제가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교회 다닌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왜 우리는 안 택합니까?'라고 할 때 본문 19절은 말하는 것입니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롬 9:19). 예레미야서에도 보면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아무 말도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음을 받은 자요 하나님은 지으시는 분인데 어찌 하나님께 우리가 이렇게 지었냐고 따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질그릇이나 귀한 그릇이나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쓰시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11).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기쁘신 뜻대로 기뻐하심에 따라 쓰시는 것입니다. 무조건적 은혜입니다. 어미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데 조건이 없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한 것같이 하나님이 무조건적 은혜로 우리를 자녀 삼으신 것입니다. 무조건적입니다. 기도할 때도 무조건성에 의존해야 합니다. 나로부터 어떤 조건을 끌어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성을 찾아내기 위해 조건을 주신것으로 봐야 합니다. 잘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떨 때는 몸이 건강한 것이, 어떨 때는 몸이 안좋은 것이 하나님의 무조건성을 이룹니다. 천히 쓸 것과 귀히 쓸 것을 하나님이 자기의 뜻 가운데 원하시는 것을 이루신 것입니다. 바로 은혜의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도 선물로 주시고 구원도 선물로 주시고,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것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9). 믿음도 구원도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랑할 수 없고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 예레미야서로 말하면 토기장이가 토기를 지은 것입니다. 지으심을 받은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그 뜻을 묻고 대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이 택하심
둘째는 바로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무조건적 은혜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두면 전부 진노의 그릇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롬 9:22). 하나님의 진노는 바로 사망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므로 결코 잘못된 것을 옳다 하지 않으십니다. 용서는 하실지언정 잘못된 것을 옳다고는 안 합니다. 그래서 진노의 그릇은 하나님의 공의의 그릇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의 공의라면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심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모든 세상을 다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심판의 능력도 능력입니다. 구원의 능력만 능력이 아닙니다. 세상에 악한 영, 깡패 이런 것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마귀 사탄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나요. 하나님에게 심판하는 권능이 있습니다. 모든 인류가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되었습니다. 심판의 능력을 보이시는데, 그중 일부가 선택이 되어서 무조건적 은혜를 받아 남겨진 것입니다.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신 것입니다. 이제 그 그릇에 진노의 불을 담을 수밖에 없는 멸망과 저주의 자녀인데,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교회를 이룹니까? 한 가지, 하나님이 품에 안으신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품은 완전하십니다. 그 품에 안기는 것 외에 우리에게 다른 것이 없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이 말씀을 하십니다. 품에 안으시는 것을 우리가 영광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영광이라는 말은 참 어렵습니다. 이 말은 성경을 다 보았을 때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입니다. 그 완전하심에 우리를 받아 들이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하나님의 품에 안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망하게 된 나이므로, 진노와 죽음과 저주만 남은 나이므로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밖에 담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내 공로 내 땀 내 피, 아무것도 담을 게 없습니다. 그러나 긍휼만 가지고 하나님의 완전하심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배 가운데 영광을 올립니다. 이것은 '영광을 올린다', '송영'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우리가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더 이상 받으시거나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없으면 불쌍히 여기는 것밖에 담을 것이 없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오직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납작 엎드려 부피도 면적도 점도 없이 주 앞에 아무것도 없이 긍휼밖에 채울 것이 없는 그릇에 하나님이 영광의 풍성함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풍성함은 많은 경우 하나님을 뜻합니다. 부요하심과 풍성함입니다. 하나님이 풍성하신 자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가난하게 되신 것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당대의 의인과 선인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윤리 점수를 잘 받은 자의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온갖 저는 자, 못 보는 자, 세리, 창기,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고 여겨지는 자들이 의인의 회중이 되는 것이요, 그것이 선택입니다. 본래 사람들은 아무도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이제 하나님이 택하셔서 영광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전 3:18). 주의 영, 보혜사 성령, 그리스도의 영을 받으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 긍휼의 그릇
우리는 다 긍휼의 그릇입니다. 불쌍히 여김을 받은 그러한 그릇입니다. 다 우리는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유대인 중에서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정한 자를 택하신 때가 되어 부르신 것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내 것입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값을 주고 우리를 사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 예언의 말씀이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호세아서 말씀이 이것입니다. 너무 이스라엘 백성이 패역하니 그들을 내치셨다가 이제 그 내쳐진 자들을 다시 그의 백성으로 불러주신 것입니다. 이전에는 내 백성이 아닌 자를 이제는 내 백성으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호 2:23). 이 호세아서 말씀이 그대로 본문에 반복된 것입니다.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롬 9:25). 구약의 긍휼이 신약의 사랑입니다. 긍휼이 없고 사랑을 안 베푸는 백성을 이제는 긍휼을 베풀고 사랑을 베푸는 대상으로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을 보면 호세아 선지자에 이어 이사야 선지자를 인용합니다.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롬 9:27). 예수 그리스도를 단수로 유일한 하나님의 씨라고 부르시고 우리는 그와 함께 자녀된 것입니다. 씨가 바로 택함 받은 자, 남은 자들입니다. 그냥 두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될 사람들을, 그 저주의 백성들을 이제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셔서 하나님의 씨로 삼으십니다. 그것이 바로 이사야서의 남은 자입니다. 또한 그루터기입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사 6:13). 그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6. 결론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교회에 대해 작년부터 20주 가까이 살펴보고 있습니다. 교회에 관한 말씀을 나누기 마치면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복음서를 위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교회에 대한 말씀을 보면서 항상 찬송을 같이 보고 있습니다. 이번주는 254장 3절과 4절입니다. "[3] 날 오라 하심은 온전한 믿음과 또 사랑함과 평안함 다 주려 함이라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4] 큰 죄인 복 받아 살 길을 얻었네 한 없이 넓고 큰 은혜 베풀어 주소서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남은 자의 교회 | 롬 9:19-29 | 문병호 목사 | 교회의 본질과 당위 18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20130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25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26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녹취록>
1. 교회: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입니다. 제가 공부했던 스코틀랜드에 가보면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지만 교회를 '키르크'(kirk)라고 부릅니다. 성경 헬라어 원어로 교회가 부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의 '에클레시아'인데, 그것을 영어로 '키르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교회의 전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요구조건, 자격조건도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즉 하나님이 부르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교회의 자녀가 되고 그 자녀로서 교회의 지체로서 하나님의 은혜 받은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은 일부이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남은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아닌 일부를 택하시고 남은 자로 두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지상에서 신자요 성도요 교인으로 우리가 살아갑니다. '믿는다'라는 의미에서, '거룩함을 입었다'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교회의 지체로서 각각의 이름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이 열리면 이 시민권을 보여 주고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2. 남은 자
구약의 남은 자는 하나님이 혈통상 남은 자로 이스라엘 백성을 삼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율법과 언약을 맡기고 가나안 땅을 허락하십니다. 그들을 통해 예배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구약도 가만히 보면 단순히 혈통만으로 자녀삼으신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고 이스라엘의 모든 자가 아닌 아브라함의 씨, 그 중에서도 이삭에서 난 자라야 하나님의 씨라 부르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첫 아들은 이스마엘인데 그는 하나님의 교회에 들지 못합니다. 육신의 자녀가 아닌 약속의 자녀가 씨로 인침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자주 씨라는 말로 선택을 표현합니다. 무조건적인 은혜로 선택을 받아 생명을 받은 자를 씨라고 하는 것입니다. 언약의 자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특히 남은 자를 뜻합니다. 이제 신약시대 때는 이스라엘의 영토적 혈통적 의미가 아닌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를 온전히 이루십니다. 더 이상 혈통의 한계가 없고 지역의 한계가 없습니다. 성령을 받기만 하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그 성령을 받은 열두 제자와 120 제자, 그리고 지난주까지 본 말씀처럼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온 이방 땅까지 하나님의 부름 받은 자가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아멘 하고 말씀을 받으면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의 약속이 하나님의 언약의 비밀이 풀리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는데 다른 것이 아닌 바로 말씀을 받고 아멘 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시대 때는 바로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교회의 남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갈라디아교회는 일찍이 말씀을 잘 받고 신앙생활을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율법이 들어옵니다. 할례도 받고 하면 더 좋지 않겠냐, 금상첨화라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예와 아니오가 뚜렷합니다. 금상첨화의 신앙이 아닙니다. 구원의 의는 그리스도의 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들을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성경은 칭합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의 씨라는 것입니다. 우리 신약시대 때의 구원은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태어남도 자라남도 아니요, 우리가 스스로 취함도 아니요, 오직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때가 찬 경륜을 쫓아 믿음도 구원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엡 2:8). 그저 받았으니 그리스도와 십자가만 자랑하고 내가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속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사는 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문을 여는 데부터 닫는 데까지 모두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내 공로가 없습니다. 은혜가 넘칠 때 상급이 넘칩니다. 은혜가, 우리 안에 향이 들어왔으니 향기를 발합니다. 향을 발하는 게 향수병이 아닌 향수가 하는 일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향수병이 향을 발하는 그것마저도 상급으로 주십니다. 생활도 상급도 은혜입니다. 전적 은혜입니다. 내가 뭘 한다고 하면 악해집니다. 그래서 이제 교회는 은혜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내 것 삼아 주신 그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약간 어려운 말일 수 있으나 그리스도의 것을 내 것 삼아 주시는 것을 전가라고 합니다. 의의 전가, 의를 받은 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3. 무조건적인 사랑으로써 택하심
로마서 8장까지는 성화가 나오고 9장과 11장은 살아남과 살아감의 은혜가 오직 택하심에 있는데 그 택함의 모임이 바로 교회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9장부터는 택하심의 장, 교회의 장이 시작된다고 하기도 합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교회의 자녀들이 어찌하여 지체가 되었는지, 그것은 바로 무조건적 선택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교회의 백성이 된 것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멋대로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봐야 합니다. 야곱은 이름 자체가 속이는 자입니다.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좋은 이름이 아닙니다. 혈육으로 보면 야곱은 에서보다 또한 동생입니다. 흠모할 것이 없습니다. 당대에 남자로서 한 가정과 지역을 운영하고 지배하는 능력은 에서가 있었지 야곱은 재목이 아닙니다. 그런데 야곱에게 뭔가 한 가지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어쨌든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영적으로 맏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벧엘에서 하나님이 하늘 사닥다리로 만나주시고 밧단아람에서 함께 하셔서 큰 가정과 재산을 이루게 하시고, 얍복강에서 이제 본격적으로 이스라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시점에 하나님이 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주십니다. 간사하고 속이는 자라는 욕심쟁이 야곱이라는 이름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주십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이긴 것이 아닙니다. 환도뼈가 꺾여서 절뚝거리게 됩니다. 사실상 하나님이 져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져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기도해서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져주신 것입니다. 그 져주신 것이 브니엘, 얼굴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에서를 미워한 것이라기보다 야곱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처럼 사랑한 것이 바로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이처럼"이라는 말은 택함 받은 사람이 아니면 모릅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이처럼 사랑했다는 것은 독생자를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입니다. 아들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무조건적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출발은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는 조건이 없습니다. 제가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교회 다닌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왜 우리는 안 택합니까?'라고 할 때 본문 19절은 말하는 것입니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롬 9:19). 예레미야서에도 보면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아무 말도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음을 받은 자요 하나님은 지으시는 분인데 어찌 하나님께 우리가 이렇게 지었냐고 따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질그릇이나 귀한 그릇이나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쓰시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11).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기쁘신 뜻대로 기뻐하심에 따라 쓰시는 것입니다. 무조건적 은혜입니다. 어미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데 조건이 없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한 것같이 하나님이 무조건적 은혜로 우리를 자녀 삼으신 것입니다. 무조건적입니다. 기도할 때도 무조건성에 의존해야 합니다. 나로부터 어떤 조건을 끌어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성을 찾아내기 위해 조건을 주신것으로 봐야 합니다. 잘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떨 때는 몸이 건강한 것이, 어떨 때는 몸이 안좋은 것이 하나님의 무조건성을 이룹니다. 천히 쓸 것과 귀히 쓸 것을 하나님이 자기의 뜻 가운데 원하시는 것을 이루신 것입니다. 바로 은혜의 선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도 선물로 주시고 구원도 선물로 주시고,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것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9). 믿음도 구원도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랑할 수 없고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입니다. 예레미야서로 말하면 토기장이가 토기를 지은 것입니다. 지으심을 받은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그 뜻을 묻고 대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이 택하심
둘째는 바로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무조건적 은혜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두면 전부 진노의 그릇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롬 9:22). 하나님의 진노는 바로 사망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므로 결코 잘못된 것을 옳다 하지 않으십니다. 용서는 하실지언정 잘못된 것을 옳다고는 안 합니다. 그래서 진노의 그릇은 하나님의 공의의 그릇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의 공의라면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심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모든 세상을 다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심판의 능력도 능력입니다. 구원의 능력만 능력이 아닙니다. 세상에 악한 영, 깡패 이런 것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마귀 사탄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나요. 하나님에게 심판하는 권능이 있습니다. 모든 인류가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되었습니다. 심판의 능력을 보이시는데, 그중 일부가 선택이 되어서 무조건적 은혜를 받아 남겨진 것입니다.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신 것입니다. 이제 그 그릇에 진노의 불을 담을 수밖에 없는 멸망과 저주의 자녀인데,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교회를 이룹니까? 한 가지, 하나님이 품에 안으신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품은 완전하십니다. 그 품에 안기는 것 외에 우리에게 다른 것이 없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이 말씀을 하십니다. 품에 안으시는 것을 우리가 영광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영광이라는 말은 참 어렵습니다. 이 말은 성경을 다 보았을 때 영광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입니다. 그 완전하심에 우리를 받아 들이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하나님의 품에 안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망하게 된 나이므로, 진노와 죽음과 저주만 남은 나이므로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밖에 담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내 공로 내 땀 내 피, 아무것도 담을 게 없습니다. 그러나 긍휼만 가지고 하나님의 완전하심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배 가운데 영광을 올립니다. 이것은 '영광을 올린다', '송영'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우리가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더 이상 받으시거나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없으면 불쌍히 여기는 것밖에 담을 것이 없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오직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납작 엎드려 부피도 면적도 점도 없이 주 앞에 아무것도 없이 긍휼밖에 채울 것이 없는 그릇에 하나님이 영광의 풍성함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풍성함은 많은 경우 하나님을 뜻합니다. 부요하심과 풍성함입니다. 하나님이 풍성하신 자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가난하게 되신 것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당대의 의인과 선인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윤리 점수를 잘 받은 자의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온갖 저는 자, 못 보는 자, 세리, 창기,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고 여겨지는 자들이 의인의 회중이 되는 것이요, 그것이 선택입니다. 본래 사람들은 아무도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이제 하나님이 택하셔서 영광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전 3:18). 주의 영, 보혜사 성령, 그리스도의 영을 받으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 긍휼의 그릇
우리는 다 긍휼의 그릇입니다. 불쌍히 여김을 받은 그러한 그릇입니다. 다 우리는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유대인 중에서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정한 자를 택하신 때가 되어 부르신 것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내 것입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값을 주고 우리를 사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 예언의 말씀이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호세아서 말씀이 이것입니다. 너무 이스라엘 백성이 패역하니 그들을 내치셨다가 이제 그 내쳐진 자들을 다시 그의 백성으로 불러주신 것입니다. 이전에는 내 백성이 아닌 자를 이제는 내 백성으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호 2:23). 이 호세아서 말씀이 그대로 본문에 반복된 것입니다.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롬 9:25). 구약의 긍휼이 신약의 사랑입니다. 긍휼이 없고 사랑을 안 베푸는 백성을 이제는 긍휼을 베풀고 사랑을 베푸는 대상으로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을 보면 호세아 선지자에 이어 이사야 선지자를 인용합니다.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롬 9:27). 예수 그리스도를 단수로 유일한 하나님의 씨라고 부르시고 우리는 그와 함께 자녀된 것입니다. 씨가 바로 택함 받은 자, 남은 자들입니다. 그냥 두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될 사람들을, 그 저주의 백성들을 이제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셔서 하나님의 씨로 삼으십니다. 그것이 바로 이사야서의 남은 자입니다. 또한 그루터기입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사 6:13). 그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6. 결론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교회에 대해 작년부터 20주 가까이 살펴보고 있습니다. 교회에 관한 말씀을 나누기 마치면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복음서를 위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교회에 대한 말씀을 보면서 항상 찬송을 같이 보고 있습니다. 이번주는 254장 3절과 4절입니다. "[3] 날 오라 하심은 온전한 믿음과 또 사랑함과 평안함 다 주려 함이라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4] 큰 죄인 복 받아 살 길을 얻었네 한 없이 넓고 큰 은혜 베풀어 주소서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