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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본질과 당위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2 | 골 1:15-20 | 문병호 목사 | 교회의 본질과 당위 2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1003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2 | 골 1:15-20 | 문병호 목사 | 교회의 본질과 당위 2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1003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녹취록>



1. 교회 설립 10주념을 즈음하여


오늘은 우리 교회가 설립 10주년을 감사하고 기념하고 기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로 드리고자 합니다. 주일예배임에는 다름 없지만 그렇게 새겨보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는 오후나 다른 일정으로 행사를 하지는 않지만 10년에 한 번 있는 일이고 교회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므로 그것을 새겨 지난 시간에 감사하고 회고하기보다는 오히려 앞으로 전망하고 소망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하여 10년만에 교회의 특별한 예배로서 드리고자 합니다.



2. 교회의 비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지난주에 골로새서 말씀, 초대교회 찬송의 가장 대표적인 시 두 개(빌 6:5-12; 골 1:15-20)를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본문은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이심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몸에 지체는 많으나 머리는 하나입니다. 머리로부터 모든 것이 지시되고 다시 머리로 흘러 올라갑니다. 성경에서 머리라고 함은 언약의 머리, 그분이 행한 것이 다 우리 것이 되므로 교회의 주시여,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로 칭하는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는 아주 큰 규모나 유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흩어지거나 여러 처소에서 모인 가정교회에 가깝습니다. 교회는 규모나 양이나 높낮이가 아닌 은혜와 약속, 하나님의 인도하심, 섭리,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로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본문의 찬송시가 골로새 교회에 보내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 되심은 몸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몸이 교회이니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엡 4:12)이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하는데, 성경에 많은 비밀 중 교회의 비밀을 말하면서 이 비밀이 크다(엡 5:31-12)고 말합니다. 부부는 한 몸입니다. 한 몸이니 자녀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한 몸이니 부모가 자식을 아는 것보다 부부가 더 잘 압니다. 부부는 한 몸을 이룸으로 하나님이 그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이 한 몸 됨을 교회의 비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신랑이신 교회, 그리고 교회는 신부가 됩니다. 이 한 몸 됨, 그리고 신부 됨은 완전한 완성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집니다. 거룩한 도성 하늘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땅에서 우리는 이미 그것을 맛봅니다. 바로 교회에서 말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 됨을, 신부로서 돌봄과 사랑을 받는 것을 맛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3. 진리가 있어야만 교회의 사랑도 있다


교회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성도는 믿음이 큰 성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내 자신을 많이 돌아보고 내 자신에 대한 주장도 많고 반듯한 논리가 있어도 교회의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마당을 쓸면서 기뻐하고 교회를 향하여 기뻐하고 교회의 어떠함을 두고 내 몸과 같이 감사기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없이 기쁨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듭남과 교회에 들어가는 입교를 같이 표하는 것입니다. 바로 세례입니다. 교회가 없는 세례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공동체라고도 부르고 모임이나 단체라고도 부르지만 몸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라고 하면 너무 수평적인, 나눔만 있는 점과 같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몸이라고 하면 자라감이 있습니다. 수평적 측면과 수직적 측면이 모두 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가로대와 세로대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로대는 주님이 팔을 펼쳐 인류를 끌어안은 사랑이요, 세로대는 계시, 지시, 약속입니다. 그러니 십자가는 사랑과 진리가 교차하는 곳이고, 주님이 바로 그곳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은 사랑과 진리와 은혜가 충만(요 1:14-17)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항상 수직적인 측면이 충실하고 수평적인 측면이 가득해야 합니다. 진리 없이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명분은 좋으나 죽음으로 모두 다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위로는 진리, 옆으로는 사랑인데, 몸 되신 그리스도 가운데 자라가는 것입니다. 몸이라는 것은 또한 생명이니 자라감이 있습니다. 교회에는 그러므로 가르침, 선포, 권면이 있습니다.



4. 만물의 으뜸 되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그 몸의 머리가 그리스도이십니다. 몸의 머리이시므로 그가 세상에 나신 것부터  당하고 이루신 모든 것이 다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본문 18절은 부활의 첫 열매가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교회가 아닙니다. 천하 만물에서 으뜸으로 세워진 것이 교회입니다. 유럽을 가보면 안타까운 것이 많습니다. 아주 큰 교회에서 네 명, 여섯 명이 앉아 에배를 드립니다. 숫자를 헤아리는 것이 부질없으나 한때 그곳이 가득차 있었음을 생각하면 하나님 앞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구에 가보면 어느 곳이든 교회가 중심이 되어 뻗어 있습니다. 교회와 병원과 도서관과 학교가 있습니다. 이것이 청교도, 미국의 정신이었습니다. 만물의 으뜸이 그리스도시요 그리스도가 몸된 교회의 머리라고 하면, 우리가 세상의 머리가 되어야 합니다. 잘 살고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어떠하심, 그의 향기를 전하는 편지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전부 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하고 입만 열면 그리스도를 말하니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 것이 그런 맥락입니다. 

본문 같은 장 13절을 보면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겼다고 합니다. 세속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합니다. 구약에서는 이것이 출애굽에 쓰인 것과 같은 말입니다. 비참한 노예 상태에서 성전이 있는 가나안으로 옮긴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의 나라로 옮긴 것입니다. 이 세속의 터에서 거룩한 터,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집으로 우리가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놓고도 기도합니다. 십자가를 우리 교회가 있는 건물 위에 얹으려고 하는데 주민들의 반대로 설치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태원에서는 간판을 붙이지 못해 간판을 붙이지 못해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이곳에서는 간판을 붙일 수 있으나 여러군데 붙인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첨탑은 달지 못했으나 말입니다. 하지만 만물의 으뜸이 되는 것은 이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는 다 으뜸입니다. 십만 명이 있어도 순교자가 한 명이 안 나올 수 있고 열 명이 있어도 순교자가 열 명 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2011년 9월 4일 이태원에서 첫 예배를 드리고 2018년 1월 18일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이후 이곳에 왔습니다. 



5.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충만함


모든 교회에는 충만함이 있습니다. 충만한 은사, 충만한 은혜, 충만한 영광이 있습니다. 그 충만함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하나님의 부요하심은 만유 위의 만유입니다. 그가 부요하게 되신 자로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진리 충만, 은혜 충만의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이 교회를 굴리고 돌보실 것입니다. 사람은 그저 비 오면 쓸려가지만 하나님의 바위는 직선으로 시온의 대로가 열립니다. 그런 우리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그렇게 사용하신다고 믿습니다. 우리 교회는 순교의 교회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올바른 것을 올바르다 하고 하나님 앞에 어김없이 예배를 드리고 부족하지만 두 달란트 받은 자로 울며 눈물로 씨를 뿌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신 것을 목도하는, 친히 행하신 여호와의 일을 목도하는 그 역사가 우리교회에 있을 것입니다.



6.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기에 더 내려 놓고 의지하라


그리스도가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화평은 곧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나를 부인해야 누릴 수 있습니다. 자유하게 된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 하나님을 부르고 찾고 의지하고, 곧 누리는 것은 가장 심오한 일입니다.  그런데 내 공로가 있으면 누릴 수 없습니다. 내 것이 있을 때 시기가 있고 질투가 있습니다. 누리지 못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외국에 여러 번 다녀오고 나서야 한국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잘 누리는 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의지하는 것이 성화입니다. 성도들은 하늘 보좌를 움직여야 합니다. 어제보다 더 잘 의지하는 것이 거룩한 것이지 기도를 얼마 더 하고 하는 등의 일은 감사의 척도일 뿐 공로나 거룩이 아닙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잘 의지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우리 교회도 지난 10년보다 앞으로 더 잘 의지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기도를 해야 은혜의 틈이 생깁니다. 기도 안하면 내 의로 틈이 다 메워져 하나님의 은혜가 스며들지 않고 튕겨져 나갑니다. 기도를 하면 틈이 생깁니다. 기도는 틈을 만드는 것이요, 은혜가 틈으로 들어와 역사하는 것입니다. 담장에도 조그만 틈이 있을 때 씨가 들어와 꽃을 피는 것처럼 기도는 바로 그런 작은 틈을 만드는 것입니다. 기도로 우리가 무슨 역사를 이루고 큰 일을 하지 않습니다. 빛은, 은혜는 틈이 있으면 들어옵니다. 하나님은 항상 자녀들에게 준비하고 계십니다. 기도 응답하시는 것으로 가장 바쁜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그러듯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화평입니다. 화목입니다. 기도하고, 가정에서 그러하듯 때가 되면 하나님과 같이 먹고 마시는 것이 화평, 화목입니다.



7. 결론


주보에 써있는 것처럼 첫 번째로 우리 교회는 참 예배를 드리는 교회입니다. 모든 교회가 그렇지만 참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의 예배가 없었으면 지금까지 제가 한 학문적인 일도 모두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가르치고 선포하는 교회입니다. 또 세 번째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한 즉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에 맡기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응답하실 뿐 응답 없는 기도는 없습니다. 육신의 부모도 자녀가 꿈틀만 해도 계획을 세우고 응답합니다. 말씀 읽기에 힘쓰고 말씀 붙들고 기도하고, 기도한즉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고 돌보는 교회입니다. 또한 누구나 맞이하고 초대교회와 같이 파송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홈페이지도 만들고 힘 닿는 대로 설교하고 첫 번째부터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그동안 주일설교때 로마서, 갈라디아서, 사도신경, 웨스트민스터, 요한복음, 그리스도의 중보, 새것 거듭난 것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것 등에 대해 강해 혹은 시리즈 설교를 했습니다. 이제 무슨 설교를 할지 생각해 봅니다. 인물에 대해 설교해 볼까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두꺼운 기독론이라는 책도 썼는데 아직도 예수님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예수님에 대해서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다 알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새벽에도 계속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520주간의 모든 설교가 한두 번 정도를 빼고는 유튜브에 모두 올라가 있습니다. 금요일에는 모세오경, 현재 민수기 절반까지 봤습니다. 특히 시편 전부를 총 172주간 다 강해했습니다. 그리고 성경교리정해라고 하는 아카데미를 3차에 걸쳐 했습니다. 교회 전도지는 십자가지기라고 해서 4호까지 만들었습니다. 인근에 모두 우편함에 하나씩 꽂아 놨습니다. 제가 이렇게 회고해 보는 것은 감사의 마음입니다. 다음 10년 후에 이제 이렇게 한 번 또 보거나 할 것입니다. 교회의 사정이 골로새서와 각종 서신서에 다 나오니 저희도 한 번 살펴본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동일한 소망을 가질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살전 1:3);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제가 창립 첫 설교로 삼은 본문이 이것입니다. 설교를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니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사랑의 수고가 따르고 소망의 인내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데살로니가교회이고 저희도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찬송 209장을 하고 마치기 원합니다. "그 향기로운 기름을 내게 부어 주셔서 내 기쁨 더해주는 곳, 주 피로 사신 주의 전."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