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비밀이신 그리스도 | 딤전 3:15-16 | 문병호 목사 | 교회의 본질과 당위 4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1017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녹취록>
1. 하나님의 집: 하나님 아버지와 그 자녀인 우리
갑자기 날이 추워지니 걱정이 됩니다. 특히 교회 성도님들의 건강이 염려됩니다.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 오늘 네 번째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아들이라고 칭한 디모데에게 목회를 위한 교훈을 남긴, 감옥에서 생애 마지막으로 쓴 편지, 그런 책입니다. 본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항상 고백하는 3가지 본문 중 한 가지, 그리스도에 대한 찬송시가 디모데전서에 담겨 있습니다. 지난 주 시편 27편을 통하여 평생에 여호와를 사모하고 부르짖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특히 구약에서 일컫는 집을 의미하는 '벧'이 있고, 하나님의 집, 즉 창세기 28장의 '벧엘', '벧엘로힘'이 있습니다. 야곱이 사닥다리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집으로 칭한 그 내용과 일맥상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고 할 때 신약으로는 '오이코스'라고 합니다. 사실상 하나님의 집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것은 초대교회에서는 획기적인 이야기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집이 신약의 교회라는 것이 본분 말씀인데 이것은 참으로 획기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이 성경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데, 본문에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와 기둥의 터라고 일컫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자녀가 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계대를 따르는 자손이 거하는 것이 바로 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농부는 아버지시요,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라고 한 것도 집이라는 개념과 같습니다. 물과 양분을 주시고 자라게 하시는 것이 바로 여호와의 집입니다.
2. 하나님의 집의 자녀로서 누림
여호와의 집은 하나님이 아버지시요 택함 받은 자녀들이 그 집의 상속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모든 아버지의 것을 자녀들이 누립니다. 이 자녀들이 아버지의 것을 누리는 질서, 헌장이 바로 산상복음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입니다. '육신의 부모도 이와 같거늘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일까보냐'라는 말로 함축되는 바로 그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자녀들에게 마땅한 그 질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는 것이 산상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자녀이고 하나님은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상복음에서 주기도문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구약은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신약이 되니 아버지라 칭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집의 개념은 아직까지 바라보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교회 개념은 성취입니다. 그러므로 아빠 아버지라 부릅니다. 그리고 상속자의 영, 양자의 영을 받습니다. 이 하나님의 교회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집에도 보면 우리 부모들이 집 구석구석마다 가꿉니다. 그러니 야곱의 '여호와 하나님이 과연 여기 계시구나'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 2:12). 그러나 이제 우리는 외인이 아니요, 하나님의 집에 들인 자들입니다. 구약의 표는 할례요, 신약의 표가 세례인 것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외인이 아닌 자녀라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한끼 밥만 먹을 뿐 다음 끼니는 또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때 되면 부모가 밥과 모든 것을 공급합니다. 외인과 나그네 같던 우리를 자녀로 들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소망이 없던 자들인데 이제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나의 소망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 가운데 있어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나의 나된 것, 그 자체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소유가 아닌 존재의 영역이 있는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의 영역입니다. 소유를 따지면 우리가 항상 감사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감사해도 우리에게 감사의 시간이 그렇게 길 수 없습니다. 소유로만 하면 말입니다. 그러나 신분으로 하면, 집안에 들인 것으로 하면 무조건적 소망이 넘칩니다. 아무일 없어도 소망이 넘칩니다. 많은 일이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 소망입니다. 절대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날이 갑자기 추워져도 조금 변화가 생기기만 해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생깁니다. 기대가 생깁니다. 여름이 온다고 하면 구름기둥을, 겨울이 온다고 하면 불기둥을 기대하게 됩니다. 약속들에 외인이요, 소망이 없고 하나님이 없는 자들인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니, 그 집에 거하니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육신의 거푸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싸는 눈에 보이는 집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집, 영원한 집은 아버지의 집입니다. 이 집은 기도하는 집입니다(사 56:7). 그런데 이 집이 이제 교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살아 계시며 활동하십니다. 그러나 그 활동의 최고의 터는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서 여호와의 임재와 이끄심이 특별합니다. 살아 계시고 움직이십니다. 살아 계시고 기동하시는 하나님의 집, 그곳이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3. 하나님의 집의 질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경륜, 섭리
집은 '오이코스'라고 했는데 그것은 경륜 곧 질서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경륜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시므로 우리는 그것을 섭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섭리와 경륜이라는 말이 같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그 비밀스러운 섭리, 우리를 세우기도 하고 간혹 낮추기도 하시고, 밀기도 하시고 멈추게도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비가 오게도 하고 그치게도 하고, 얼음을 얼게도 녹게도 하시고, 춥게도 덥게도 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는 새 한 마리가 떨어지고 나는 것도 모두 관장하십니다. 경륜은 여호와의 집의 질서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향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질서가 경륜입니다. 자전거 바퀴와 같이 움직이는데 질서가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멈추어 넘어집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것은 하늘에 날리는 겨와 같고 부초와 같아 질서가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은 뚜렷한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예배 가운데서 움직이십니다.
구약에 보면 법궤에 두 돌판에 말씀이 있고 만나 항아리가 있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그 법궤 위에 시은좌 곧 속죄소가 있고 그 위에 그룹 천사들의 찬송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궤 안에 두 돌판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살아 계신 임재는 곧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말씀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안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아멘' 하면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지난주 시편 27편에 생명 있는 날 동안 나의 소망이 성전에 거하며 여호와를 사모하며라고 말한 다윗의 고백이 바로 이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사모하는 것은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은 어디 구름이나 바다나 산이 아닙니다. 내 말씀이 네 입에 있고 마음에 있다고 한 신명기의 말씀과 같습니다. 이것이 로마서에 그대로 인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 계신 하나님은 첫째로 바로 말씀입니다.
둘째, 만나 항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먹이시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산 활동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먹기만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조금 움직인다고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먹여 주시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 하루에 한 번씩 꼭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날마다 일용할 양식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구약에 이렇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셋째, 권능이 있습니다. 아론의 죽은 나무 지팡이에 싹이 난 것입니다. 오늘날로 하면 우리 교회에 말씀을 주시고 양식 주시고 생명의 권능을 주시는 것입니다.
4. 교회: 진리의 기둥과 터
교회는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권능이 있습니다. 세우는 것은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교회의 생명 활동이고 양육 활동입니다. 구약의 성전 앞에 가보면 두 기둥이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야긴, 왼쪽에는 보아스입니다. 야긴은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보아스는 능력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세움과 권능은 곧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2).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영을 받으니 그를 닮아가는데 예수님이 하신 일은 갈릴리 방방곡곡에서 병자를 낫게 하시고 말씀을 전하신 것입니다. 병자를 낫게 하신 것은 곧 만나를 먹이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권능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 입니다. 또한 야긴과 보아스 곧 세우는 것과 권능이 있습니다. 교회의 비밀은 생명의 비밀입니다. 돈으로 생명과 건강을 살 수 없으나 교회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터는 반석이고 기둥은 세우는 것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베드로가 고백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진리의 말씀에 권능이 있습니다.
5. "경건의 비밀": 생명의 계시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렇다면 교회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비밀은 첫째로 (어떤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려주신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이 비밀이 있어야 합니다. 이 비밀을 교회에서 잘 가르치고 우리에게 비밀의 아멘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지식, 그리고 거룩하게 하시는 비밀입니다. 16절에 "그는"이라고 할 때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경건의 비밀이 크다고 하는데 이것을 "그"로 받은 것입니다. 뒤이어 나오는 것이 찬송시입니다. 빌립보서(2:5-11), 골로새서(1:27)와 함께 신약의 대표적인 찬송시 중 하나입니다. 교회의 비밀은 그러므로 곧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내려받고 찬송으로 올리고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하나되어 함께 사는 것, 이것이 곧 교회의 비밀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가 우리의 경건의 비밀입니다. 예수 때문에 살아나고 예수 때문에 살이 붙고 예수님 때문에 근육이 생기고 예수님 때문에 군대를 이룹니다. 에스겔서의 이 말씀이 다 예수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도 그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경건의 비밀은 내 눈물이나 땀이 아닙니다. 내 도덕성도 아닙니다. 경건의 비밀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 붙어 있을 때 그제서야 내 땀이 내 노력이 값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하루 닷새 기도하고 일주일에 세 번 금식하는 바리새인이 아무 필요 없습니다. 경건의 비밀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는 것이 바로 이 의미입니다. 구약의 할례는 표일 뿐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옛것은 베어내고 새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의 말씀입니다.
6. 결론
교회는 이 비밀의 터입니다.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 전파되시고 세상의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 올려지시고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살아나고 그와 함께 보좌 우편에 앉는 것입니다(엡 2:5-6). 구약의 하나님의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이고 경건의 비밀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의 비밀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십니다. 우리 교회에 주님이 역사를 베푸시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 십 년 동안 이렇게 지냈습니다. 이에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예배에 대한 소망을 굳게 붙들고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모두 말씀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397장 2절 찬송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주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 없으며 주 인도하는 대로 늘 따라 가리라. 그 지혜 나를 깨쳐 내 앞길 밝히니, 나 주의 길을 따라 주 함께 살리라."
교회의 비밀이신 그리스도 | 딤전 3:15-16 | 문병호 목사 | 교회의 본질과 당위 4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1017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녹취록>
1. 하나님의 집: 하나님 아버지와 그 자녀인 우리
갑자기 날이 추워지니 걱정이 됩니다. 특히 교회 성도님들의 건강이 염려됩니다.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 오늘 네 번째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아들이라고 칭한 디모데에게 목회를 위한 교훈을 남긴, 감옥에서 생애 마지막으로 쓴 편지, 그런 책입니다. 본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항상 고백하는 3가지 본문 중 한 가지, 그리스도에 대한 찬송시가 디모데전서에 담겨 있습니다. 지난 주 시편 27편을 통하여 평생에 여호와를 사모하고 부르짖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특히 구약에서 일컫는 집을 의미하는 '벧'이 있고, 하나님의 집, 즉 창세기 28장의 '벧엘', '벧엘로힘'이 있습니다. 야곱이 사닥다리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집으로 칭한 그 내용과 일맥상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고 할 때 신약으로는 '오이코스'라고 합니다. 사실상 하나님의 집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것은 초대교회에서는 획기적인 이야기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집이 신약의 교회라는 것이 본분 말씀인데 이것은 참으로 획기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이 성경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데, 본문에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와 기둥의 터라고 일컫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자녀가 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계대를 따르는 자손이 거하는 것이 바로 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농부는 아버지시요,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라고 한 것도 집이라는 개념과 같습니다. 물과 양분을 주시고 자라게 하시는 것이 바로 여호와의 집입니다.
2. 하나님의 집의 자녀로서 누림
여호와의 집은 하나님이 아버지시요 택함 받은 자녀들이 그 집의 상속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고 간구합니다. 그리고 모든 아버지의 것을 자녀들이 누립니다. 이 자녀들이 아버지의 것을 누리는 질서, 헌장이 바로 산상복음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입니다. '육신의 부모도 이와 같거늘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일까보냐'라는 말로 함축되는 바로 그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자녀들에게 마땅한 그 질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는 것이 산상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자녀이고 하나님은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상복음에서 주기도문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구약은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신약이 되니 아버지라 칭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집의 개념은 아직까지 바라보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교회 개념은 성취입니다. 그러므로 아빠 아버지라 부릅니다. 그리고 상속자의 영, 양자의 영을 받습니다. 이 하나님의 교회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집에도 보면 우리 부모들이 집 구석구석마다 가꿉니다. 그러니 야곱의 '여호와 하나님이 과연 여기 계시구나'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 2:12). 그러나 이제 우리는 외인이 아니요, 하나님의 집에 들인 자들입니다. 구약의 표는 할례요, 신약의 표가 세례인 것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외인이 아닌 자녀라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한끼 밥만 먹을 뿐 다음 끼니는 또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때 되면 부모가 밥과 모든 것을 공급합니다. 외인과 나그네 같던 우리를 자녀로 들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소망이 없던 자들인데 이제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나의 소망이 여호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 가운데 있어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나의 나된 것, 그 자체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소유가 아닌 존재의 영역이 있는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의 영역입니다. 소유를 따지면 우리가 항상 감사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감사해도 우리에게 감사의 시간이 그렇게 길 수 없습니다. 소유로만 하면 말입니다. 그러나 신분으로 하면, 집안에 들인 것으로 하면 무조건적 소망이 넘칩니다. 아무일 없어도 소망이 넘칩니다. 많은 일이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 소망입니다. 절대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날이 갑자기 추워져도 조금 변화가 생기기만 해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 생깁니다. 기대가 생깁니다. 여름이 온다고 하면 구름기둥을, 겨울이 온다고 하면 불기둥을 기대하게 됩니다. 약속들에 외인이요, 소망이 없고 하나님이 없는 자들인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니, 그 집에 거하니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육신의 거푸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싸는 눈에 보이는 집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집, 영원한 집은 아버지의 집입니다. 이 집은 기도하는 집입니다(사 56:7). 그런데 이 집이 이제 교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살아 계시며 활동하십니다. 그러나 그 활동의 최고의 터는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서 여호와의 임재와 이끄심이 특별합니다. 살아 계시고 움직이십니다. 살아 계시고 기동하시는 하나님의 집, 그곳이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3. 하나님의 집의 질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경륜, 섭리
집은 '오이코스'라고 했는데 그것은 경륜 곧 질서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경륜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시므로 우리는 그것을 섭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섭리와 경륜이라는 말이 같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그 비밀스러운 섭리, 우리를 세우기도 하고 간혹 낮추기도 하시고, 밀기도 하시고 멈추게도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비가 오게도 하고 그치게도 하고, 얼음을 얼게도 녹게도 하시고, 춥게도 덥게도 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는 새 한 마리가 떨어지고 나는 것도 모두 관장하십니다. 경륜은 여호와의 집의 질서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향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질서가 경륜입니다. 자전거 바퀴와 같이 움직이는데 질서가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멈추어 넘어집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것은 하늘에 날리는 겨와 같고 부초와 같아 질서가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은 뚜렷한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예배 가운데서 움직이십니다.
구약에 보면 법궤에 두 돌판에 말씀이 있고 만나 항아리가 있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그 법궤 위에 시은좌 곧 속죄소가 있고 그 위에 그룹 천사들의 찬송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궤 안에 두 돌판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살아 계신 임재는 곧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말씀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안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아멘' 하면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지난주 시편 27편에 생명 있는 날 동안 나의 소망이 성전에 거하며 여호와를 사모하며라고 말한 다윗의 고백이 바로 이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사모하는 것은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은 어디 구름이나 바다나 산이 아닙니다. 내 말씀이 네 입에 있고 마음에 있다고 한 신명기의 말씀과 같습니다. 이것이 로마서에 그대로 인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 계신 하나님은 첫째로 바로 말씀입니다.
둘째, 만나 항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먹이시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산 활동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먹기만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조금 움직인다고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먹여 주시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 하루에 한 번씩 꼭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날마다 일용할 양식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구약에 이렇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셋째, 권능이 있습니다. 아론의 죽은 나무 지팡이에 싹이 난 것입니다. 오늘날로 하면 우리 교회에 말씀을 주시고 양식 주시고 생명의 권능을 주시는 것입니다.
4. 교회: 진리의 기둥과 터
교회는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권능이 있습니다. 세우는 것은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교회의 생명 활동이고 양육 활동입니다. 구약의 성전 앞에 가보면 두 기둥이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야긴, 왼쪽에는 보아스입니다. 야긴은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보아스는 능력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세움과 권능은 곧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 5:42).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영을 받으니 그를 닮아가는데 예수님이 하신 일은 갈릴리 방방곡곡에서 병자를 낫게 하시고 말씀을 전하신 것입니다. 병자를 낫게 하신 것은 곧 만나를 먹이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권능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 입니다. 또한 야긴과 보아스 곧 세우는 것과 권능이 있습니다. 교회의 비밀은 생명의 비밀입니다. 돈으로 생명과 건강을 살 수 없으나 교회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터는 반석이고 기둥은 세우는 것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베드로가 고백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진리의 말씀에 권능이 있습니다.
5. "경건의 비밀": 생명의 계시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렇다면 교회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비밀은 첫째로 (어떤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려주신 지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이 비밀이 있어야 합니다. 이 비밀을 교회에서 잘 가르치고 우리에게 비밀의 아멘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지식, 그리고 거룩하게 하시는 비밀입니다. 16절에 "그는"이라고 할 때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경건의 비밀이 크다고 하는데 이것을 "그"로 받은 것입니다. 뒤이어 나오는 것이 찬송시입니다. 빌립보서(2:5-11), 골로새서(1:27)와 함께 신약의 대표적인 찬송시 중 하나입니다. 교회의 비밀은 그러므로 곧 그리스도의 비밀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내려받고 찬송으로 올리고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하나되어 함께 사는 것, 이것이 곧 교회의 비밀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가 우리의 경건의 비밀입니다. 예수 때문에 살아나고 예수 때문에 살이 붙고 예수님 때문에 근육이 생기고 예수님 때문에 군대를 이룹니다. 에스겔서의 이 말씀이 다 예수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도 그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경건의 비밀은 내 눈물이나 땀이 아닙니다. 내 도덕성도 아닙니다. 경건의 비밀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 붙어 있을 때 그제서야 내 땀이 내 노력이 값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하루 닷새 기도하고 일주일에 세 번 금식하는 바리새인이 아무 필요 없습니다. 경건의 비밀은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는 것이 바로 이 의미입니다. 구약의 할례는 표일 뿐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옛것은 베어내고 새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의 말씀입니다.
6. 결론
교회는 이 비밀의 터입니다.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 전파되시고 세상의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 올려지시고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살아나고 그와 함께 보좌 우편에 앉는 것입니다(엡 2:5-6). 구약의 하나님의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이고 경건의 비밀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의 비밀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목자되신 예수 그리스도,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십니다. 우리 교회에 주님이 역사를 베푸시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 십 년 동안 이렇게 지냈습니다. 이에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예배에 대한 소망을 굳게 붙들고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모두 말씀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397장 2절 찬송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주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 없으며 주 인도하는 대로 늘 따라 가리라. 그 지혜 나를 깨쳐 내 앞길 밝히니, 나 주의 길을 따라 주 함께 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