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형성과 은혜의 방편 | 행 2:36-42 | 문병호 목사 | 교회의 본질과 당위 10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1205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녹취록>
1. 성도의 피난처인 교회
구약시대 때 하나님께서 엄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종살이를 하면서 혈통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나 율법을 모르고 오래 노예생활을 하다 보니 하나님 경배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하시되 큰 사랑과 베풂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엄중하게 말씀을 내리시고 빚으시고 끝내 준비시키셔서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율법으로 그들의 삶과 예배를 가르치시고 무엇보다 그 가운데 피난처를 주신 것을 주목하여 볼 만합니다. 성도는 누구나 하나님 보시기에 조금이라도 잘 살아보자고 합니다. 그것은 저에게도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나 좋아하는데 나는 싫어라고 하는 성도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기쁨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이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피처, 피난처를 두셨습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어디를 가도 코로나를 피할 수 없습니다. 비행기보다 먼저 전염병이 상륙해 있습니다. 코로나를 통해 배우는 것은 과연 우리의 도피처가 어디인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과연 우리의 피할 바위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땅 가운데 교회를 주셔서 내 죄와 허물로부터, 그리고 세상의 환란과 수고로부터 피하게 하셨습니다.
2. 성령과 은혜의 방편
말씀을 주시고 한 신앙 가운데 성찬과 세례를 받게 하시고 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주님이 함께 계시겠다고 확실한 약속을 두신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의 형성은 인간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시고 죽기까지 순종케 하시고 그 아들의 의로 이제 그 아들이 부활과 승천하시고 보좌 우편에서 내려주시는 성령이 임하면 그 성령을 받은 자들이 교회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이루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데 그것을 우리는 교회를 통한 은혜의 방편이라고 말합니다. 그중 제일 방편은 말씀, 제이는 성례, 제삼은 기도라고 나눈 바 있습니다. 이 은혜의 방편 가운데 풍성한 은혜를 내리시고 우리의 도피처가 된다는 것이 교회의 본질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간 이 땅에 계시며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시고 감람산에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때 주님은 두 가지를 분부하셨습니다.
첫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4-5)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바로 성령입니다.
둘째, 성령이 임하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되리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은혜로 그렇게 만드신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라는 명령이 일차적인 의미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되라'고 하면 명령이지만 신약시대에는 '은혜로 그렇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신약에서는 '되리라', '될 것이다'라고 하면 은혜로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렇게 함에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 움직이는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절대적인 무조건적 은혜로 하나님이 '되리라'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3. 설교자가 선포하는 말씀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무리가 120명 가량 되는데 예수님의 어머니와 마리아와 제자들이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이 먼저 한 것은 제자를 보충한 것입니다. 제비를 뽑아서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부활을 증언할 사람을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야로 뽑았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니 각국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성령이 임하여서 가본 적도 없는 곳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각자가 이야기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설교하고 그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본문 41절은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듣고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그 말씀을 듣고 믿은 사람들이 38절, 성령의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성령이 임하니 먼저 120명의 무리들이 각국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첫 번째 제자로 나서 설교하니 그 말씀을 받아 성령의 선물을 받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형성과 성장입니다. 본문은 신도의 수가 3천이나 더한다고 하였습니다. 신도는 믿는 자이기도 하지만 교인이라는 의미로 보면 됩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요 성령이 임하니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유다와 땅 끝까지 주의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그 일을 불가항력적이고 무조건적인 은혜로 주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도 하지만 말씀의 역사가 있는 설교행전이기도 합니다.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행 1:20).
사도행전 설교의 첫 번째 외침은 주의 이름을 주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서 우리에게 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그리고 세 번째는 36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우리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주님이 죽으신 것은 곧 우리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죄로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주라는 말은 나를 피값으로 사신 분이라는 의미요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말씀으로 깨우시고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에는 없었던 이런 설교를 베드로가 하니 성령의 역사가 크게 일어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렸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리고 서로 묻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고'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말'이라는 것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말'은 하나님께서 성령이 임하였을 때 제자들이 각국의 언어로 큰 일을 말한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 말을 듣고 확증하고 권하고 이 말을 받으니 즉, 듣고 믿으니 세례를 받고 신도의 수가 크게 늘어난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4. 성령의 은혜와 성례
본문 38절 말씀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할 때 '내가 먼저 회개하고 행실을 바로 하고 그러고 나서 세례를 받으면 죄사함을 받는다'고 보면 절대 안됩니다. 이것은 내 회개가 공로이자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잘 회개했으니 세례를 받았고 그래서 죄사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선물도 회개를 전단계로 해서 도출되는 결과가 아닙니다. 성령의 선물이라고 함은 처음부터 선물로 주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으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에 따르는 은사들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회개가 있어 그 조건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회개와 죄사함과 세례가 그 가운데 주어지는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것을 확증하는 것이 39절 말씀입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행 2:39).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길게 예언하신 것이 바로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는 이 말씀입니다. 성령의 선물은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은 신분과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습니다. 성령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이 멀리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이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기만 하면 말입니다. 택함 받은 백성들의 수가 찰때까지 말입니다. 이것이 비가시적교회, 보이지 않는 교회입니다. 이 수가 차면 주님이 오십니다.
5. 하나님의 부르심과 교회 형성
하나님이 부르시면 우리가 그것에 예라고 응답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부르심을 들으면 예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부르실 때 우리가 응답하는 것은 능동도 아니요 수동도 아닙니다. 내가 분명히 예 했는데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우리가 중간태라고 합니다. 빛이 있으니 눈이 반응하는 볼 수 있는 것처럼 부르심이 있으니 반응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과 성령이 바로 그렇습니다. 성령은 선물로 받으면 말씀이 임하는데 그것이 부르심입니다. 말씀이 들어오면서 예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어찌할꼬'라는 반응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동안 좋아하던 것이 싫어지고 혐오스럽게 됩니다. 그렇게 목에 잘 넘어가던 것이 이제 목에 걸립니다. 그렇게 화려하게 보이던 것이 누더기 같이 보입니다. 십자가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십자가가 보이니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우리가 죽였다는 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부르시니 나아온 것이 바로 같은 원리입니다. 내가 나오지만 끌려오는 것입니다. 중간태입니다. 내가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 분명히 내가 발걸음을 내딛은 것인데 내가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자들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자들을 부르사 나아온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은혜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선물을 받고 각자가 구원을 얻는 것이 교회의 형성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성령은 각각 받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했을 때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했습니다. 각 사람에게라는 단어와 각각이라는 단어가 같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면 내가 구원받습니다. 요엘서 2장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각자에게 임하면 신도가 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회개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교회의 신도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형성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처럼 첫 번째 교회로 세움을 받은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고 할 때 우리 주님이 보혜사 성령을 내려주셔서 교회를 형성하려고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신 후 교회를 흩으십니다. 스데반과 야고보의 순교 사건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를 온 세계로 퍼뜨리신 것입니다. 교회의 형성 뿐 아니라 세계 각국으로 흩으시는 것도 방언을 주셔서 주님이 행하신 것입니다. 빌립은 사마리아로 바울은 안디옥으로, 그래서 선교의 문을 하나님이 열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형성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확산입니다. 또한 말씀과 성례(세례, 성찬), 기도, 이 세가지를 은혜의 방편으로 삼아 성령을 각각 받고 교회 안에서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서로 교제합니다. 올해 한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새해에도 말씀 가운데 은혜가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주 앞에 삼가서 겸손히 행하면 주 너를 언제나 돌보시리. 말씀엔 위로와 기도엔 응답을, 네 갈길 바르게 인도하리"(찬송가 42장 2절). 받은 말씀으로 찬송을 많이 하며 은혜를 풍성히 받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형성과 은혜의 방편 | 행 2:36-42 | 문병호 목사 | 교회의 본질과 당위 10 | 십자가지기교회 | 주일낮예배 | 20211205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녹취록>
1. 성도의 피난처인 교회
구약시대 때 하나님께서 엄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종살이를 하면서 혈통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나 율법을 모르고 오래 노예생활을 하다 보니 하나님 경배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하시되 큰 사랑과 베풂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엄중하게 말씀을 내리시고 빚으시고 끝내 준비시키셔서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율법으로 그들의 삶과 예배를 가르치시고 무엇보다 그 가운데 피난처를 주신 것을 주목하여 볼 만합니다. 성도는 누구나 하나님 보시기에 조금이라도 잘 살아보자고 합니다. 그것은 저에게도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나 좋아하는데 나는 싫어라고 하는 성도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기쁨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이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피처, 피난처를 두셨습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어디를 가도 코로나를 피할 수 없습니다. 비행기보다 먼저 전염병이 상륙해 있습니다. 코로나를 통해 배우는 것은 과연 우리의 도피처가 어디인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과연 우리의 피할 바위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땅 가운데 교회를 주셔서 내 죄와 허물로부터, 그리고 세상의 환란과 수고로부터 피하게 하셨습니다.
2. 성령과 은혜의 방편
말씀을 주시고 한 신앙 가운데 성찬과 세례를 받게 하시고 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주님이 함께 계시겠다고 확실한 약속을 두신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의 형성은 인간의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시고 죽기까지 순종케 하시고 그 아들의 의로 이제 그 아들이 부활과 승천하시고 보좌 우편에서 내려주시는 성령이 임하면 그 성령을 받은 자들이 교회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이루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데 그것을 우리는 교회를 통한 은혜의 방편이라고 말합니다. 그중 제일 방편은 말씀, 제이는 성례, 제삼은 기도라고 나눈 바 있습니다. 이 은혜의 방편 가운데 풍성한 은혜를 내리시고 우리의 도피처가 된다는 것이 교회의 본질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간 이 땅에 계시며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시고 감람산에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때 주님은 두 가지를 분부하셨습니다.
첫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4-5)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바로 성령입니다.
둘째, 성령이 임하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되리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은혜로 그렇게 만드신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라는 명령이 일차적인 의미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되라'고 하면 명령이지만 신약시대에는 '은혜로 그렇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신약에서는 '되리라', '될 것이다'라고 하면 은혜로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렇게 함에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 움직이는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절대적인 무조건적 은혜로 하나님이 '되리라'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3. 설교자가 선포하는 말씀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무리가 120명 가량 되는데 예수님의 어머니와 마리아와 제자들이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이 먼저 한 것은 제자를 보충한 것입니다. 제비를 뽑아서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부활을 증언할 사람을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야로 뽑았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니 각국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성령이 임하여서 가본 적도 없는 곳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각자가 이야기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설교하고 그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본문 41절은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듣고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즉 그 말씀을 듣고 믿은 사람들이 38절, 성령의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성령이 임하니 먼저 120명의 무리들이 각국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첫 번째 제자로 나서 설교하니 그 말씀을 받아 성령의 선물을 받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형성과 성장입니다. 본문은 신도의 수가 3천이나 더한다고 하였습니다. 신도는 믿는 자이기도 하지만 교인이라는 의미로 보면 됩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요 성령이 임하니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유다와 땅 끝까지 주의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그 일을 불가항력적이고 무조건적인 은혜로 주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도 하지만 말씀의 역사가 있는 설교행전이기도 합니다.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행 1:20).
사도행전 설교의 첫 번째 외침은 주의 이름을 주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서 우리에게 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그리고 세 번째는 36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 2:36). 우리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주님이 죽으신 것은 곧 우리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죄로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주라는 말은 나를 피값으로 사신 분이라는 의미요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말씀으로 깨우시고 인도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에는 없었던 이런 설교를 베드로가 하니 성령의 역사가 크게 일어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렸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리고 서로 묻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고'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말'이라는 것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말'은 하나님께서 성령이 임하였을 때 제자들이 각국의 언어로 큰 일을 말한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 말을 듣고 확증하고 권하고 이 말을 받으니 즉, 듣고 믿으니 세례를 받고 신도의 수가 크게 늘어난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4. 성령의 은혜와 성례
본문 38절 말씀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할 때 '내가 먼저 회개하고 행실을 바로 하고 그러고 나서 세례를 받으면 죄사함을 받는다'고 보면 절대 안됩니다. 이것은 내 회개가 공로이자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잘 회개했으니 세례를 받았고 그래서 죄사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선물도 회개를 전단계로 해서 도출되는 결과가 아닙니다. 성령의 선물이라고 함은 처음부터 선물로 주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으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에 따르는 은사들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회개가 있어 그 조건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회개와 죄사함과 세례가 그 가운데 주어지는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것을 확증하는 것이 39절 말씀입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행 2:39).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길게 예언하신 것이 바로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는 이 말씀입니다. 성령의 선물은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은 신분과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습니다. 성령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이 멀리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이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기만 하면 말입니다. 택함 받은 백성들의 수가 찰때까지 말입니다. 이것이 비가시적교회, 보이지 않는 교회입니다. 이 수가 차면 주님이 오십니다.
5. 하나님의 부르심과 교회 형성
하나님이 부르시면 우리가 그것에 예라고 응답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부르심을 들으면 예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부르실 때 우리가 응답하는 것은 능동도 아니요 수동도 아닙니다. 내가 분명히 예 했는데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우리가 중간태라고 합니다. 빛이 있으니 눈이 반응하는 볼 수 있는 것처럼 부르심이 있으니 반응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과 성령이 바로 그렇습니다. 성령은 선물로 받으면 말씀이 임하는데 그것이 부르심입니다. 말씀이 들어오면서 예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어찌할꼬'라는 반응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동안 좋아하던 것이 싫어지고 혐오스럽게 됩니다. 그렇게 목에 잘 넘어가던 것이 이제 목에 걸립니다. 그렇게 화려하게 보이던 것이 누더기 같이 보입니다. 십자가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십자가가 보이니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우리가 죽였다는 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부르시니 나아온 것이 바로 같은 원리입니다. 내가 나오지만 끌려오는 것입니다. 중간태입니다. 내가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 분명히 내가 발걸음을 내딛은 것인데 내가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자들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자들을 부르사 나아온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은혜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선물을 받고 각자가 구원을 얻는 것이 교회의 형성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성령은 각각 받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했을 때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했습니다. 각 사람에게라는 단어와 각각이라는 단어가 같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면 내가 구원받습니다. 요엘서 2장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각자에게 임하면 신도가 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회개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교회의 신도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형성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처럼 첫 번째 교회로 세움을 받은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고 할 때 우리 주님이 보혜사 성령을 내려주셔서 교회를 형성하려고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신 후 교회를 흩으십니다. 스데반과 야고보의 순교 사건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를 온 세계로 퍼뜨리신 것입니다. 교회의 형성 뿐 아니라 세계 각국으로 흩으시는 것도 방언을 주셔서 주님이 행하신 것입니다. 빌립은 사마리아로 바울은 안디옥으로, 그래서 선교의 문을 하나님이 열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형성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확산입니다. 또한 말씀과 성례(세례, 성찬), 기도, 이 세가지를 은혜의 방편으로 삼아 성령을 각각 받고 교회 안에서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서로 교제합니다. 올해 한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새해에도 말씀 가운데 은혜가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주 앞에 삼가서 겸손히 행하면 주 너를 언제나 돌보시리. 말씀엔 위로와 기도엔 응답을, 네 갈길 바르게 인도하리"(찬송가 42장 2절). 받은 말씀으로 찬송을 많이 하며 은혜를 풍성히 받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