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말씀이 3주차 계속됩니다. 가이샤 빌립보에서 사도 베드로의 고백이 있었고 이를 칭찬하시며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시고 우리 주님이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리 마옵소서'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직전에 한 고백은 전능자, 메시아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죽고 고난당하심을 말하니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말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 등를 초청해서 기도하고 고별 설교 할 때 장로들이 보인 반응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예상치 못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탄아 뒤로 물러가라.' 하나님 나라의 일이 얼마나 엄정하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약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정밀하게 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아멘'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점을 지나가면 확 열립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런데 이 말씀 바로 이어서 '다 이루었다'는 선포를 하십니다. 전적인 무를 지나가야 절대 유, 만유가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고난에 대한 예언입니다. 사람들의 예언은 은사이지만, 주님은 본성으로, 속성으로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반응을 보고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한 질문은 왜 주님이 고난을 당하고 죽으셔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입니다. 장로와 서기관, 대제사장에게 버림받는 죽음은 구약으로 말하면 성 밖으로 내서 돌로 쳐서 죽이는 그런 죽음입니다. 예수님께 상을 주어도 시원치 않은데,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또 굳이 죽고 부활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남녀노소, 배운 자, 무식자를 가리지 않고 오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칭찬한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님이 고백하게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나온 베드로의 발언에 대해서는 마귀들이 시험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베드로와 대조적으로 한 인물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인본주의로 고민하고 갈등하는 가룟 유다입니다. 베드로는 사실 속마음을 내어놓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꿍해서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향유 옥합을 부은 것을 보면서 예수님을 넘기기로 결심합니다. 인본주의입니다. 향유 옥합을 나쁜 데 쓰고자 한 것도 아니고 자기가 가지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1년치 양식이 될 수 있는 것을 허비한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만물을 만들고 보존하시며 운영하시는 주님이심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 가운데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이 일련의 일들은 제자들에 대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말씀이 3주차 계속됩니다. 가이샤 빌립보에서 사도 베드로의 고백이 있었고 이를 칭찬하시며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시고 우리 주님이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리 마옵소서'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직전에 한 고백은 전능자, 메시아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죽고 고난당하심을 말하니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말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 등를 초청해서 기도하고 고별 설교 할 때 장로들이 보인 반응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예상치 못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사탄아 뒤로 물러가라.' 하나님 나라의 일이 얼마나 엄정하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약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정밀하게 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아멘'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점을 지나가면 확 열립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런데 이 말씀 바로 이어서 '다 이루었다'는 선포를 하십니다. 전적인 무를 지나가야 절대 유, 만유가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고난에 대한 예언입니다. 사람들의 예언은 은사이지만, 주님은 본성으로, 속성으로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반응을 보고 혼란에 빠졌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한 질문은 왜 주님이 고난을 당하고 죽으셔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입니다. 장로와 서기관, 대제사장에게 버림받는 죽음은 구약으로 말하면 성 밖으로 내서 돌로 쳐서 죽이는 그런 죽음입니다. 예수님께 상을 주어도 시원치 않은데,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또 굳이 죽고 부활하시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 남녀노소, 배운 자, 무식자를 가리지 않고 오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칭찬한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님이 고백하게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나온 베드로의 발언에 대해서는 마귀들이 시험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베드로와 대조적으로 한 인물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인본주의로 고민하고 갈등하는 가룟 유다입니다. 베드로는 사실 속마음을 내어놓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꿍해서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향유 옥합을 부은 것을 보면서 예수님을 넘기기로 결심합니다. 인본주의입니다. 향유 옥합을 나쁜 데 쓰고자 한 것도 아니고 자기가 가지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1년치 양식이 될 수 있는 것을 허비한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만물을 만들고 보존하시며 운영하시는 주님이심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 가운데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이 일련의 일들은 제자들에 대한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