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30. 수요일 묵상 | 3. 자기 잃은 양을 찾으시는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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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백성에게 양이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압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이를 덧붙여 말하는데 바로 ‘회개’입니다. 탕자가 왔을 때 잔치하듯 잃어버린 악한 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주님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길을 잃어버린 양은 아마도 위험에 처해 죽게 될 것입니다. 절벽에 걸려 있을 수도 있고 혼자 떨어져 짐승의 습격을 받아 바위에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목자는 그 양을 찾아 나섭니다. 오늘 찬송처럼 ‘피를 흘렸는데 그 피는 양을 구하러 간 목자의 피’입니다. 본문은 아니지만 이에 대해 요한복음 10장의 선한 목자의 비유를 볼 수 있습니다. 삯꾼 목자는 양을 잃어버렸다고 찾아 나서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5장은 강도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훔쳐 가서 팔거나 잡아먹는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선한 목자입니다. 양과 목자는 서로의 음성을 압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5). 이 말씀을 아직 보지 않았으나, 이 말씀에 대한 답이 본문입니다. 성부와 성자 하나님이 서로 목소리를 알고 듣습니다. 양의 비유가 갑자기 아버지와 아들의 비유로 바뀌는 것입니다. 양이 목자의, 그리고 목자가 양의 음성을 아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주시듯, 하나님이 양인 우리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주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즉 선한 목자는 아버지 되심에 관한 비유입니다. 
     특히 본문 6절, ‘나의’ 잃은 양이라고 하여 이것을 부각합니다. 나에게 속한 양이라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돌보는 것은 아이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 음성을 안다고 할 때 그것은 부부지간, 한 몸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자와 양은 결국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에 다름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변화산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내’는 ‘나의’라는 표현입니다. 내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합니다. ‘내 기뻐하는 자’는 낳았을 때의 기쁨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신령하게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깊은 원천이 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