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0. 수요일 묵상 | 3.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인 하나님의 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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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서 기쁨, 즐거움은 열매를 뜻합니다. 나무가 언제 즐거울까요. 열매를 맺을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쁨, 즐거움도 열매 맺을 때 있습니다. 사용하는 것과 즐기는 것은 다릅니다. 열매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즐겁게 사는 것이 열매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베들레헴 목자들에게 하늘의 찬송이 들렸습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사 66:10). 예수님이 나셨을 때 부른 이 노래에 우리가 동참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가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내려옵니다. 그런데 1절에 보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다고 합니다. 없어지는데 그냥 없어지지 않고 새로 창조합니다. 아무도 이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창조는 완성입니다. 옛 하늘과 땅과 바다가 없어지고 새 하늘과 땅에 거룩한 성이 내려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치 그 성은 신부같고 우리는 신랑 같다고 합니다. 신랑을 위해 단장한 신부같이 그 성이 내려온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이 신부처럼 사용됩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그 자체로 도시나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임재의 터요, 성전의 터요, 오늘날로 하면 교회요 우리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성전이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기쁨을 누린다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 되어 열매 맺고 온전히 열매 맺는 것은 새 것을 먹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고 요단강을 건너가서 새해 첫 열매를 먹었던 것, 그 기쁨입니다. 
     본문 66장의 잔치는 천국 잔치요, 이 잔치는 마지막 때 새 하늘과 새 땅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지상의 교회가 바로 본문의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에서 우리가 하늘에서는 영광이요,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감사의 조건입니다. 우리가 조건을 따져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매이니 그것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주님이 스스로를 첫 열매요 우리를 후속 열매로 칭하신 것을 증언합니다. 아무리 장미가 예쁜들 시들 때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팔꽃이라도 필 때는 생기가 넘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것은 내 자신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감사의 조건인데 나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 입니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는 스바냐서의 말씀이 이것입니다. 주님이 첫 열매가 되시고 우리도 후속 열매가 되니 그것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말도 좋지만 기뻐한다는 말도 동일하게 좋을 것입니다. 그 기뻐하는 것은 본문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할 때의 감정이자 표정입니다. 이 땅에서 기쁨을 우리가 맛봅니다. 나는 내 생각이나 조건이 아닌 그 자체로 기쁨의 대상이자 조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