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큰 자’란 누구입니까? 은혜의 자리에 서는 자입니다. 자신의 자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말씀을 듣는 자리에 서는 자입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9)라고 고백하는 자입니다. 자신을 감추는 자리에 서는 자입니다. 빌립보서 2장 말씀처럼, 겸손히 자기를 낮추어 섬기는 자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심지어 자신의 죽음까지도 주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자입니다. 주님은 나사로의 병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요 11:4). 우리의 생명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현존 앞에 사는 자입니다. 말씀은 곧 여호와의 현존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는 여호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전체가 그것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큰 자란, 자신을 높이는 자가 아니라 은혜의 자리에 서고, 말씀을 듣고, 자신을 감추고, 죽음까지도 영광 돌리며, 여호와 앞에 서는 자입니다.
결국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저지른 잘못을 통해 우리에게 참된 제자의 길을 가르치십니다. 그들의 길은 외식과 교만의 길이었고, 주님이 가르치시는 길은 낮아짐과 겸손, 은혜의 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큰 자’란 누구입니까? 은혜의 자리에 서는 자입니다. 자신의 자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말씀을 듣는 자리에 서는 자입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9)라고 고백하는 자입니다. 자신을 감추는 자리에 서는 자입니다. 빌립보서 2장 말씀처럼, 겸손히 자기를 낮추어 섬기는 자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심지어 자신의 죽음까지도 주의 영광을 위해 드리는 자입니다. 주님은 나사로의 병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요 11:4). 우리의 생명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현존 앞에 사는 자입니다. 말씀은 곧 여호와의 현존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는 여호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전체가 그것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큰 자란, 자신을 높이는 자가 아니라 은혜의 자리에 서고, 말씀을 듣고, 자신을 감추고, 죽음까지도 영광 돌리며, 여호와 앞에 서는 자입니다.
결국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저지른 잘못을 통해 우리에게 참된 제자의 길을 가르치십니다. 그들의 길은 외식과 교만의 길이었고, 주님이 가르치시는 길은 낮아짐과 겸손, 은혜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