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대한 긴 설명을 마무리하시면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끝’이 단순한 소멸이나 멸망이 아니라 ‘완성’임을 강조하십니다. 칼빈이 “레노바티오(Renovatio, 새롭게 하심)”라고 표현한 것처럼, 성도에게 종말은 무너짐이 아니라 새롭게 하시는 때이며, 완전하게 누리는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끝이 심판이지만, 성도에게는 오히려 높여지고 누리게 되는 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악한 말을 할 때 복이 있다”는 팔복의 말씀을 다시 일깨우시며, 마지막 때의 고난이 곧 성도에게 복이 되는 자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고 말씀하셨던 그 약속을 그대로 붙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핍박 가운데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는 약속이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에서는 “능히 대적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주겠다”고 하십니다. 즉, 성령께서 성도의 입을 여시고 말씀하게 하시는 것이 마지막 때의 큰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중요한 결론으로 나아가십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면 그제야 끝이 오리라.” 여기서 ‘끝’은 복음의 완성입니다.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일은 단지 지리적 확장만이 아니라, 성도들이 말씀으로 깊이 여물어 가는 과정과도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열매로 알리라”고 하셨고, “말씀 자체가 여물어 가는 것”이 마지막 때의 진짜 모습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 오시기 전 진리의 부흥, 말씀의 부어짐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 있게 선포하십니다.
이어 예수님은 마지막 때 성도가 붙들어야 할 말씀을 주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너희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여기서 ‘견디다’라는 말이 히포메노라는 단어로, ‘그 자리에 머문다’는 뜻이라고 풀어주십니다. 무슨 큰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받은 자리—이미 인침받은 자리, 그리스도의 의와 공로 안에 놓여 있는 자리—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는 이미 종말 안에 살고 있다. 이미 의와 공로와 값과 순종과 은혜를 인침받았다”고 하시며, 새로운 의를 찾거나 흔들리는 것이 오히려 미혹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의로 만족하고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바로 ‘끝까지 견디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인내’를 또 다른 의미로도 풀어주십니다. 인내는 ‘참을 인(忍)’이기도 하지만 ‘끌 견·끌 인’, 즉 견인(牽引)이라는 뜻도 함께 담고 있다고 설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끌고 가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자리에서 참으며 머물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끝까지 견디는 것도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견인하시는 은혜라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는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분별하며, 말씀 안에서 감사하며, 진리 가운데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고 정리하십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의 삶 자체가 종말의 삶이며, 그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감사하는 것이 마지막 때 성도의 자리라는 말씀으로 감람산 강화가 마무리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대한 긴 설명을 마무리하시면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끝’이 단순한 소멸이나 멸망이 아니라 ‘완성’임을 강조하십니다. 칼빈이 “레노바티오(Renovatio, 새롭게 하심)”라고 표현한 것처럼, 성도에게 종말은 무너짐이 아니라 새롭게 하시는 때이며, 완전하게 누리는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끝이 심판이지만, 성도에게는 오히려 높여지고 누리게 되는 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악한 말을 할 때 복이 있다”는 팔복의 말씀을 다시 일깨우시며, 마지막 때의 고난이 곧 성도에게 복이 되는 자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고 말씀하셨던 그 약속을 그대로 붙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핍박 가운데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는 약속이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에서는 “능히 대적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주겠다”고 하십니다. 즉, 성령께서 성도의 입을 여시고 말씀하게 하시는 것이 마지막 때의 큰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중요한 결론으로 나아가십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면 그제야 끝이 오리라.” 여기서 ‘끝’은 복음의 완성입니다.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일은 단지 지리적 확장만이 아니라, 성도들이 말씀으로 깊이 여물어 가는 과정과도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열매로 알리라”고 하셨고, “말씀 자체가 여물어 가는 것”이 마지막 때의 진짜 모습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 오시기 전 진리의 부흥, 말씀의 부어짐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 있게 선포하십니다.
이어 예수님은 마지막 때 성도가 붙들어야 할 말씀을 주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너희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여기서 ‘견디다’라는 말이 히포메노라는 단어로, ‘그 자리에 머문다’는 뜻이라고 풀어주십니다. 무슨 큰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받은 자리—이미 인침받은 자리, 그리스도의 의와 공로 안에 놓여 있는 자리—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는 이미 종말 안에 살고 있다. 이미 의와 공로와 값과 순종과 은혜를 인침받았다”고 하시며, 새로운 의를 찾거나 흔들리는 것이 오히려 미혹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의로 만족하고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바로 ‘끝까지 견디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인내’를 또 다른 의미로도 풀어주십니다. 인내는 ‘참을 인(忍)’이기도 하지만 ‘끌 견·끌 인’, 즉 견인(牽引)이라는 뜻도 함께 담고 있다고 설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끌고 가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자리에서 참으며 머물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끝까지 견디는 것도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견인하시는 은혜라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는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분별하며, 말씀 안에서 감사하며, 진리 가운데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고 정리하십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의 삶 자체가 종말의 삶이며, 그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감사하는 것이 마지막 때 성도의 자리라는 말씀으로 감람산 강화가 마무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