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8.4. 화요일 묵상 | 2.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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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현직 대제사장은 가야바였지만, 그 배후에는 안나스가 있었습니다. 가야바는 안나스 가문의 권력 구조 안에서 실제로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가야바는 예수님을 그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며, 로마인들이 와서 자신들의 땅과 민족을 빼앗을 것이라고 사람들을 선동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유대를 완전히 합병하여 직접 통치하기보다 어느 정도의 자치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야바는 예수님께서 왕이 되려 하신다는 사실을 로마가 빌미로 삼아 유대 민족을 짓밟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야바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요 11:50)라고 말했습니다. 사나운 사자가 달려드니 예수님 한 사람을 던져 주어 민족을 살리자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 한 사람을 희생시켜 자신들의 지위와 민족의 안전을 지키려는 정치적인 계산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야바의 악한 말까지 사용하여 대속의 원리를 드러내셨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부터 21절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지만, 또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발람이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려 했지만 오히려 축복하게 되었듯이, 하나님께서는 극악한 죄인의 입을 통해서도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다는 진리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가야바에게는 대제사장다운 모습이 없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정치적인 이유로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주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시고 진리를 드러내셨음에도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완악함은 사람의 말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설명하고 납득시키려 해도 되지 않습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임하셔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는 말씀을 “아멘, 아멘” 하며 받습니다. 돌같이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살과 같은 마음이 되고, 말씀이 떨어지면 백 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아멘은 단순히 말로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든지 아멘이 됩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수많은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이신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신 것 자체가 표적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요나의 표적, 곧 자신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도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숨어서 말씀하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문을 받으실 때에도 자신이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했는데 어찌하여 자신에게 묻느냐고 하셨습니다. 들은 사람들에게 물으면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그들이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진리를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안나스 앞에 서 있던 아랫사람 하나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뺨을 때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잘못을 말씀하셨다면 그 잘못을 증언하고, 옳게 말씀하셨다면 어찌하여 자신을 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자신을 변호하지 못해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때리는 그들의 불의와 재판의 부당함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세상의 대제사장들은 참된 대제사장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죽이려 했지만, 주님께서는 그 악한 계획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희생을 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하여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하여 죽는 참된 대속을 이루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