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8.3. 월요일 묵상 | 1. 혼돈의 재판정에 서신 참된 대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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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에어컨을 틀어 놓았는데도 덥고, 브레이크를 잡을 때마다 몸이 앞으로 쏠렸습니다. 그런데 내릴 때가 되자 기사 어르신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깍듯하게 인사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국은 참 신기하고 오묘한 나라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 마음에는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의 모습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날 밤의 재판은 모든 것이 애매하고 어긋난 혼돈, 곧 카오스였습니다. 대제사장과 빌라도와 헤롯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카오스의 카오스였습니다. 질서도 없고 정직함도 없으며 올바름도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직을 아부로 얻고, 사람을 속이며, 자기 배를 불렸습니다. 모든 것이 어긋나고 뒤틀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으신데 붙잡히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은 주님께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징계는 곧 심판입니다. 사람이 재판을 받을 때 얼마나 힘들고 두렵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바로 그 심판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역사책을 읽다 보면 당시의 제사장과 왕과 통치자들이 얼마나 악했는지를 보게 됩니다. 제사장은 제사장답지 않았고 왕은 왕답지 않았습니다. 빌라도에게도 괜찮은 면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음흉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친히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의 제사장들에게 신문당하시는 모습을 만납니다.
주님께서 체포되실 때 평소에는 서로 앙숙처럼 지내던 유대인들과 로마의 통치자들이 예수님을 대적하는 일에는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헤롯과 빌라도도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처음부터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죄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습니다. 아담이 처음 죄를 지은 것이 배가 고팠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의 모든 나무 열매를 먹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아담은 사물의 이름을 지을 만큼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우리는 죄를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어둠은 이유 없이 빛을 대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로 그런 세상 가운데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뜻의 패가 붙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몰아갔습니다. 당시 헤롯은 참된 유대인이 아니라 에돔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49장 10절은 통치자의 지팡이가 유다를 떠나지 않을 것을 말씀하고, 사무엘하 7장 13절 이하는 다윗의 후손에게서 왕이 나올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유다 지파에 속하시고 이새와 다윗의 후손으로서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언약 가운데 약속된 참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이 되려 한다고 몰아갔고, 로마인들에게는 가이사를 대적하여 스스로 왕이라 칭한다고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의 권력을 빼앗으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언약에 약속된 하나님 나라의 유일한 왕으로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사장이시자 왕이시며, 왕이시자 제사장이십니다.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유일한 제사장이십니다. 구약에서는 이삭이 이를 예표합니다. 이삭은 실제로 칼에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제물이 되는 일을 받아들였고, 아버지 아브라함도 그 일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실제로 자신을 온전히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친히 제사장이 되시고 동시에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체포되신 후 먼저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잡혀가셨습니다. 성경에는 ‘대제사장들’이라는 복수 표현이 나오지만, 본래 대제사장은 한 사람입니다. 당시 현직 대제사장은 안나스의 사위인 가야바였습니다. 그런데도 안나스를 대제사장이라고 부른 것은 그가 사실상의 실권자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는 한 사람이 오랫동안 대제사장직을 맡아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결집하지 못하도록 대제사장을 수시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혼란 속에서도 안나스는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대제사장직을 수행했을 뿐 아니라 다섯 아들과 한 명의 사위까지 모두 대제사장이 되게 했습니다. 안나스 가문이 당시 종교 권력의 중심을 장악한 것입니다.
안나스는 로마 권력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많은 돈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세를 과도하게 거두고 성전의 매매와 환전을 장악했습니다. 자기 가문의 목장에서 기른 제물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처럼 만들고, 제대로 먹이지도 않은 야윈 짐승을 비싸게 팔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제사를 이용하여 자기 가문의 부와 권력을 쌓았습니다.
당시 현직 대제사장은 가야바였지만 그 배후에는 안나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체포한 뒤 먼저 안나스에게 데려갔고, 안나스는 주님을 다시 가야바에게 보냈습니다. 혼돈과 불의가 가득한 세상의 제사장들 앞에 아무 죄도 없으신 참된 대제사장께서 서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모든 불법과 악의 한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길을 걸어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