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8.21. 금요일 묵상 | 5.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이루는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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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는 생명의 비밀이며 이전보다 이후를 낫게 하시는 비밀입니다. 회개에는 문을 여는 열쇠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가진 열쇠에는 처음부터 문을 열 수 있는 홈이 파여 있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그 열쇠를 가지고 이 문에도 넣어 보고 저 문에도 넣어 보지만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열쇠에 홈을 파 주십니다. 그러면 그 열쇠를 넣는 순간 문이 열립니다. 이것이 회개의 비밀입니다. 회개가 없이는 구원도 없습니다. 회개는 생명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러나 그 열쇠가 실제로 문을 열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단지 과거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돌이켜 주님께 맡기고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화살을 잘못 쏘아 과녁이 아니라 항아리를 깨뜨렸다면 단순히 “다시 한번 쏘아 보자”고 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화살을 잘못 쏘아 항아리를 깨뜨린 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다시 잘해 보겠다”고 자기 힘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능력과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활시위를 당기면 다윗이 물맷돌을 던져 골리앗을 맞힌 것처럼 정확하게 맞힐 줄 믿습니다.
특별히 청년들과 30대 성도들을 지도하다 보면 매우 예민한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을 깊이 생각하고, 작은 실수도 크게 느끼며, “내가 왜 그랬을까”라고 자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예민함 속에서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가룟 유다와 다윗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다윗도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가 그 죄를 지적했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 붙들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에도 다윗은 그 모든 일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기 죄를 깨닫고도 사람을 찾아갔으며, 사람에게서 해결을 얻지 못하자 자기 자신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죄를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로 향했습니다. 죄를 깨닫는 것만으로 두 사람의 길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죄를 깨달은 뒤 누구를 바라보았느냐에 따라 그들의 길이 달라졌습니다.
지난주에는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통곡한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베드로의 통곡은 주님을 바라보는 통곡이었습니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눅 22:61–62)
주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아마 베드로는 주님과 눈이 마주쳤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주님을 부인했다는 사실만 생각하며 자기 안으로 침잠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돌아보시는 주님을 보았고, 그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통곡했습니다. 그의 통곡은 주님을 바라보는 통곡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살아가면서 항아리를 깨뜨릴 수도 있고, 화살을 잘못 쏘아 더 큰일을 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붙들면 우리가 돌이켜 변화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에게 회개하게 하십니다.
결국 회개는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사건과 가룟 유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범사에 주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주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언제든지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버릇처럼, 습관처럼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존재의 신앙입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잠시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전체가 항상 주님께 밀착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산 사람들이 아닙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 6:19–20)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이라는 값으로 산 자들이므로 더 이상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도, 연약함도, 실패도 우리 스스로 짊어지고 해결하려 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값 주고 사신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회개는 뉘우침과 다르고 후회와도 다릅니다. 후회할 일이 있으면 후회하십시오. 그러나 그 후회로 주님께 향하십시오. 과거의 늪 속에 매여 더욱 침잠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과거는 감사의 영역이고, 현재는 은혜의 영역이며, 미래는 상급의 영역입니다. 십 분 전이나 일 분 전에 일어난 일이라도 그것이 감사의 능력으로 주님을 찾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회개의 비밀입니다.
“내가 왜 이럴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아보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내가 왜 이럴까”라고 말하면서 자기 자신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그 생각이 들 때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가룟 유다의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바로 이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은 세상 근심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구별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가룟 유다는 세상 근심을 했습니다. 그는 자기 죄를 깨달았고 깊이 뉘우쳤지만, 그 근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찾아가고, 자기 방법으로 원상 복구하려 하고, 끝내 자기 자신을 바라보다가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룹니다. 근심할 때에도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음에 사무치는 일이 있어도 너무 깊이 자기 자신에게만 들어가지 마십시오. 두 번, 세 번 계속 자신을 파고들지 말고 주님께 맡기십시오.
챙기기 전에 맡기십시오. 우리가 챙겨야 할 일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맡기는 가운데 챙겨야 하고, 주님 안에서 변화되는 가운데 챙겨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7장 11절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맺는 열매를 말씀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후 7:11)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곧 참된 회개는 먼저 우리를 간절하게 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찾게 합니다.
또한 변증하게 합니다.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게 하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바로 보게 합니다. “내가 잘못했구나”라고 분명하게 깨닫게 합니다.
또한 분하게 합니다. 이것은 죄가 싫어진다는 뜻입니다. 회개할 때 이전에 좋아하고 즐기던 죄가 싫어집니다. 이전에 죄를 짓던 곳에 다시 가더라도 이제는 찬송이 나옵니다.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게 됩니다.
또한 두렵게 합니다. 이 두려움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입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에게서 도망하게 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 편으로 나아가게 하는 두려움입니다.
또한 사모하게 하고 열심 있게 하며 벌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모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열심을 내며, 죄를 가볍게 넘기지 않고 바르게 처리하고자 하게 합니다.
우리는 자기 죄를 모두 드러내 놓아도 스스로 그 죄를 없앨 수 없습니다. 죄의 값을 직접 치르거나 형벌을 감당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맡기면 죄의 값과 형벌이 없어진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회개의 일곱 가지 모습을 말한 뒤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죄의식과 형벌을 스스로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 깨끗함을 받고, 간절함을 얻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그분께 나아가는 은혜의 역사가 있는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