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룟 유다를 보면서 그가 왜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돈궤를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회계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또 하나의 사건은 한 여인이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은 일입니다. 그 향유의 값은 삼백 데나리온으로, 노동자의 일 년 임금에 해당했습니다. 유다는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왜 허비하느냐고 책망했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붓고 그 발을 닦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에게 예수님께 향유를 붓는 것은 허비가 아니었습니다. 유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의 마음은 재물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돈궤를 맡았던 그는 결국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은 삼십 세겔은 아주 큰돈은 아니었습니다. 한 세겔을 약 4일 임금으로 본다면 은 삼십 세겔은 약 120일, 곧 넉 달 정도의 임금에 해당합니다. 아주 작은 돈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큼 큰돈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정도 욕심을 낼 만한 돈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32절에 따르면 은 삼십 세겔은 노예 한 사람의 값이었습니다. 소가 남종이나 여종을 받아 죽이면 소의 주인이 종의 주인에게 은 삼십 세겔을 주어야 했습니다. 칼빈의 주석에서는 이것을 목동이 한 해 동안 받는 삯으로 설명합니다. 정확한 가치를 환산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종의 값에 팔리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의 오묘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종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 노예 한 사람의 값에 팔리셨습니다. 주님께서 종으로 오셨기 때문에 종의 값에 팔리신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미디안 사람, 곧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넘어갈 때에는 은 이십에 팔렸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도 팔려 가는 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종의 자리에까지 낮아지셨고, 종의 값에 팔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방식으로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신학적으로 팔았고,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팔았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정치적인 계산으로 죽이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을 희생하여 민족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논리였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성전 체제를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를 내세우지만 결국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얻어야 합니다. ‘재물로 예수님을 산다’는 표현이 다소 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보화이십니다.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농부가 기뻐하여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말씀의 비밀은 그리스도이시며, 우리가 얻어야 할 참된 보화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은 예수님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는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부으면서 그것을 허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 무엇보다 값진 일임을 알았습니다. 유다는 그 일을 낭비라고 했지만, 여인은 자기의 귀한 것을 드려 주님을 높였습니다.
삭개오도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들어오셨을 때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삭개오에게 재물은 더 이상 붙들어야 할 우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얻었기 때문에 자기의 재물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값없이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을 나의 예수님으로 삼습니다. 우리의 재물로 구원을 살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을 참된 보화로 얻은 사람은 더 이상 재물을 자기의 주인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팔아 재물을 얻는 사람이 아니라, 재물을 주를 위하여 사용함으로 예수님이 가장 귀하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칼빈이 이탈리아에 머물렀을 때 페라라의 공작부인 르네와 같은 사람들이 그를 도왔습니다. 칼빈 주변에는 자신의 재물로 종교개혁의 일을 돕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책을 쓰고 출판하는 일에는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대서사를 두어야 했고 인쇄를 위해서도 재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의 도움을 통하여 칼빈은 책을 쓰고 복음을 위한 일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금산교회의 역사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부유했던 조덕삼 장로님은 자기의 땅을 드려 금산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교회에서 이자익 목사님과 같은 귀한 인물이 나왔습니다. 재물이 주님의 손에 드려지자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의 일꾼이 세워지는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재물을 하늘에 가져갈 수 있습니다. 재물 자체를 들고 하늘나라에 간다는 뜻이 아니라, 이 땅에서 주를 위하여 사용한 재물을 상급으로 가져간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고 주님께서 쓰시도록 내어 드린 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가 쓰시겠다”고 하시면 아직 어린 나귀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 충분히 익지 않았고 준비되지 않았다고만 말해서도 안 됩니다. 내가 더 익었든 아직 어리든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면 주의 소용대로 사용하시도록 내어 드려야 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은 삼십을 얻으려 했지만, 결국 그 돈도 잃고 자기 생명도 잃었습니다. 반면 주님께 자기의 것을 드린 사람들은 예수님이라는 참된 보화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파는 값을 받으려 하지 말고, 예수님을 가장 귀한 분으로 여기며 우리의 모든 것을 주의 소용대로 사용하시도록 내어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가룟 유다를 보면서 그가 왜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돈궤를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회계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또 하나의 사건은 한 여인이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부은 일입니다. 그 향유의 값은 삼백 데나리온으로, 노동자의 일 년 임금에 해당했습니다. 유다는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왜 허비하느냐고 책망했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붓고 그 발을 닦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에게 예수님께 향유를 붓는 것은 허비가 아니었습니다. 유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그의 마음은 재물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돈궤를 맡았던 그는 결국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은 삼십 세겔은 아주 큰돈은 아니었습니다. 한 세겔을 약 4일 임금으로 본다면 은 삼십 세겔은 약 120일, 곧 넉 달 정도의 임금에 해당합니다. 아주 작은 돈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만큼 큰돈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정도 욕심을 낼 만한 돈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32절에 따르면 은 삼십 세겔은 노예 한 사람의 값이었습니다. 소가 남종이나 여종을 받아 죽이면 소의 주인이 종의 주인에게 은 삼십 세겔을 주어야 했습니다. 칼빈의 주석에서는 이것을 목동이 한 해 동안 받는 삯으로 설명합니다. 정확한 가치를 환산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종의 값에 팔리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의 오묘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종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께서 노예 한 사람의 값에 팔리셨습니다. 주님께서 종으로 오셨기 때문에 종의 값에 팔리신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미디안 사람, 곧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넘어갈 때에는 은 이십에 팔렸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도 팔려 가는 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종의 자리에까지 낮아지셨고, 종의 값에 팔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방식으로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신학적으로 팔았고,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팔았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정치적인 계산으로 죽이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을 희생하여 민족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논리였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성전 체제를 지키기 위하여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를 내세우지만 결국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얻어야 합니다. ‘재물로 예수님을 산다’는 표현이 다소 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보화이십니다.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농부가 기뻐하여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말씀의 비밀은 그리스도이시며, 우리가 얻어야 할 참된 보화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은 예수님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는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부으면서 그것을 허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 무엇보다 값진 일임을 알았습니다. 유다는 그 일을 낭비라고 했지만, 여인은 자기의 귀한 것을 드려 주님을 높였습니다.
삭개오도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들어오셨을 때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삭개오에게 재물은 더 이상 붙들어야 할 우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얻었기 때문에 자기의 재물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값없이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을 나의 예수님으로 삼습니다. 우리의 재물로 구원을 살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을 참된 보화로 얻은 사람은 더 이상 재물을 자기의 주인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팔아 재물을 얻는 사람이 아니라, 재물을 주를 위하여 사용함으로 예수님이 가장 귀하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칼빈이 이탈리아에 머물렀을 때 페라라의 공작부인 르네와 같은 사람들이 그를 도왔습니다. 칼빈 주변에는 자신의 재물로 종교개혁의 일을 돕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책을 쓰고 출판하는 일에는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대서사를 두어야 했고 인쇄를 위해서도 재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의 도움을 통하여 칼빈은 책을 쓰고 복음을 위한 일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금산교회의 역사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부유했던 조덕삼 장로님은 자기의 땅을 드려 금산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교회에서 이자익 목사님과 같은 귀한 인물이 나왔습니다. 재물이 주님의 손에 드려지자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의 일꾼이 세워지는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재물을 하늘에 가져갈 수 있습니다. 재물 자체를 들고 하늘나라에 간다는 뜻이 아니라, 이 땅에서 주를 위하여 사용한 재물을 상급으로 가져간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고 주님께서 쓰시도록 내어 드린 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가 쓰시겠다”고 하시면 아직 어린 나귀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 충분히 익지 않았고 준비되지 않았다고만 말해서도 안 됩니다. 내가 더 익었든 아직 어리든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면 주의 소용대로 사용하시도록 내어 드려야 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은 삼십을 얻으려 했지만, 결국 그 돈도 잃고 자기 생명도 잃었습니다. 반면 주님께 자기의 것을 드린 사람들은 예수님이라는 참된 보화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파는 값을 받으려 하지 말고, 예수님을 가장 귀한 분으로 여기며 우리의 모든 것을 주의 소용대로 사용하시도록 내어 드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