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정죄되시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무죄한 피를 팔아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뉘우친 가운데 은 삼십을 들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찾아갔습니다. 자신이 받은 돈을 돌려주면 모든 일을 되돌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은 “그 책임은 네가 져라”, “그 일이 되어 가는 것을 네가 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유다와 함께 예수님을 죽이려는 일을 계획하고 돈까지 지불했지만, 정작 유다가 죄를 고백하며 찾아오자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렸습니다.
뒤에 빌라도도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뒤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빌라도의 아내도 꿈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보내어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고 싶어 했지만, 백성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부당하게 고소당했을 때 아가야 총독 갈리오가 비슷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는 바울에게서 자신이 판단할 만한 죄를 찾지 못하자 유대인의 율법에 관한 문제는 그들이 스스로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들도, 빌라도도, 갈리오도 모두 자신은 책임이 없다며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렸습니다.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을 찾아갔지만 그곳에서 죄의 해결을 얻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찾아간다고 죄가 해결되겠습니까? 돈을 다시 돌려준다고 죄가 없어지겠습니까? 유다는 자기 마음에 죄책이 밀려왔을 때 철저히 인간적이고 계산적인 방법으로 대처했습니다. 은 삼십을 받았으니 은 삼십을 돌려주고, 자신이 한 일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께서 무죄하시니 내게 죄가 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네가 당하라”고 했습니다. 유다가 받은 은을 성소에 던지고 물러가 스스로 목매어 죽은 것은, 사람을 찾아간 그가 아무런 해결도 얻지 못하고 절망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들은 유다가 던진 은을 거두면서 그것을 성전고에 넣어 두는 것이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피 값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23장 18절에는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부정하고 가증한 방법으로 얻은 돈은 성전에 가져오지 말라는 뜻입니다.
앞서 신명기 27장 25절에서는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죄한 사람을 죽이려고 주고받은 돈은 피 값이므로 성전고에 넣어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은 율법의 이 규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은 삼십을 유다에게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유다에게 돈을 주어 예수님을 붙잡게 했습니다. 이제 와서 그 돈을 피 값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기들의 입으로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피 값은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기 위하여 지불한 돈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처음부터 이 일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돌이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준 돈이 피 값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돈은 성전고에 넣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 피 값을 지불한 자신들의 죄는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외적인 규정은 지키려고 했지만, 그 율법이 자신들의 죄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의논한 뒤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그 밭을 오늘날까지 피밭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그곳을 ‘아겔다마’, 곧 피밭이라고 부릅니다. 유다가 불의의 삯과 관련된 밭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곳이 피밭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토기장이의 밭은 힌놈의 골짜기와 관련된 곳입니다. 힌놈의 골짜기는 우상숭배가 행해졌던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고, 몰렉에게 자녀들을 산 채로 불살라 바쳤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솔로몬 말기에 유다 땅으로 들어와 깊이 자리 잡았고, 뒤에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 그곳의 우상숭배를 폐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면 힌놈의 골짜기가 있고,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기드론 시내로 이어집니다. 기드론 시내를 건너면 감람산이 나옵니다. 힌놈의 골짜기와 기드론 시내가 이어지는 지점에는 나그네와 이방인들의 묘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말씀과 관련된 아겔다마, 곧 피밭입니다.
예레미야 7장과 19장 등에는 이곳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녀들을 불살라 우상에게 바쳤던 사당은 도벳 사당이라고 불렸습니다. ‘게힌놈’, 곧 힌놈의 골짜기에서 지옥을 뜻하는 ‘게헨나’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곳은 우상에게 자녀들을 불살라 바치던 피와 심판의 장소였습니다.
힌놈의 골짜기에는 옹기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흙이 많이 있었습니다. 토기장이들이 그곳에서 진흙과 찰흙을 채취했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들어가는 예루살렘 성문을 옹기문이라고 불렀습니다. 예레미야에 나오는 토기장이의 비유도 이 배경과 관련됩니다. 토기장이가 자기 뜻대로 옹기를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신다는 비유입니다.
무죄한 피를 팔아 받은 은 삼십은 결국 피밭을 사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율법의 형식을 따라 그 돈을 성전고에는 넣지 않았지만, 그들의 죄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유다도 은 삼십을 돌려주었지만 자기 죄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죄인은 자기 죄를 돈으로 갚거나 사람에게 떠넘길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서 “네가 당하라”는 대답밖에 얻지 못할 때, 우리가 향해야 할 분은 우리의 죄 값을 대신 담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정죄되시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무죄한 피를 팔아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뉘우친 가운데 은 삼십을 들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찾아갔습니다. 자신이 받은 돈을 돌려주면 모든 일을 되돌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은 “그 책임은 네가 져라”, “그 일이 되어 가는 것을 네가 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유다와 함께 예수님을 죽이려는 일을 계획하고 돈까지 지불했지만, 정작 유다가 죄를 고백하며 찾아오자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렸습니다.
뒤에 빌라도도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뒤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빌라도의 아내도 꿈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보내어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고 싶어 했지만, 백성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부당하게 고소당했을 때 아가야 총독 갈리오가 비슷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는 바울에게서 자신이 판단할 만한 죄를 찾지 못하자 유대인의 율법에 관한 문제는 그들이 스스로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들도, 빌라도도, 갈리오도 모두 자신은 책임이 없다며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렸습니다.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을 찾아갔지만 그곳에서 죄의 해결을 얻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찾아간다고 죄가 해결되겠습니까? 돈을 다시 돌려준다고 죄가 없어지겠습니까? 유다는 자기 마음에 죄책이 밀려왔을 때 철저히 인간적이고 계산적인 방법으로 대처했습니다. 은 삼십을 받았으니 은 삼십을 돌려주고, 자신이 한 일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께서 무죄하시니 내게 죄가 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네가 당하라”고 했습니다. 유다가 받은 은을 성소에 던지고 물러가 스스로 목매어 죽은 것은, 사람을 찾아간 그가 아무런 해결도 얻지 못하고 절망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들은 유다가 던진 은을 거두면서 그것을 성전고에 넣어 두는 것이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피 값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23장 18절에는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부정하고 가증한 방법으로 얻은 돈은 성전에 가져오지 말라는 뜻입니다.
앞서 신명기 27장 25절에서는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죄한 사람을 죽이려고 주고받은 돈은 피 값이므로 성전고에 넣어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은 율법의 이 규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은 삼십을 유다에게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유다에게 돈을 주어 예수님을 붙잡게 했습니다. 이제 와서 그 돈을 피 값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기들의 입으로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피 값은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기 위하여 지불한 돈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처음부터 이 일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돌이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준 돈이 피 값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돈은 성전고에 넣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 피 값을 지불한 자신들의 죄는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외적인 규정은 지키려고 했지만, 그 율법이 자신들의 죄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의논한 뒤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그 밭을 오늘날까지 피밭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그곳을 ‘아겔다마’, 곧 피밭이라고 부릅니다. 유다가 불의의 삯과 관련된 밭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곳이 피밭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토기장이의 밭은 힌놈의 골짜기와 관련된 곳입니다. 힌놈의 골짜기는 우상숭배가 행해졌던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고, 몰렉에게 자녀들을 산 채로 불살라 바쳤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솔로몬 말기에 유다 땅으로 들어와 깊이 자리 잡았고, 뒤에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 그곳의 우상숭배를 폐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내려오면 힌놈의 골짜기가 있고,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기드론 시내로 이어집니다. 기드론 시내를 건너면 감람산이 나옵니다. 힌놈의 골짜기와 기드론 시내가 이어지는 지점에는 나그네와 이방인들의 묘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말씀과 관련된 아겔다마, 곧 피밭입니다.
예레미야 7장과 19장 등에는 이곳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녀들을 불살라 우상에게 바쳤던 사당은 도벳 사당이라고 불렸습니다. ‘게힌놈’, 곧 힌놈의 골짜기에서 지옥을 뜻하는 ‘게헨나’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곳은 우상에게 자녀들을 불살라 바치던 피와 심판의 장소였습니다.
힌놈의 골짜기에는 옹기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흙이 많이 있었습니다. 토기장이들이 그곳에서 진흙과 찰흙을 채취했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들어가는 예루살렘 성문을 옹기문이라고 불렀습니다. 예레미야에 나오는 토기장이의 비유도 이 배경과 관련됩니다. 토기장이가 자기 뜻대로 옹기를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신다는 비유입니다.
무죄한 피를 팔아 받은 은 삼십은 결국 피밭을 사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율법의 형식을 따라 그 돈을 성전고에는 넣지 않았지만, 그들의 죄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유다도 은 삼십을 돌려주었지만 자기 죄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죄인은 자기 죄를 돈으로 갚거나 사람에게 떠넘길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서 “네가 당하라”는 대답밖에 얻지 못할 때, 우리가 향해야 할 분은 우리의 죄 값을 대신 담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