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에서 가장 귀한 말씀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첫 번째 말씀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가상칠언의 첫 번째 말씀입니다.
십자가는 사하여 주시는 자리입니다.
십자가는 단지 윤리적인 선을 권하는 곳이 아닙니다. 권선의 자리가 아니라 사죄의 자리입니다.
권선은 부족한 것을 내가 더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더 잘하고, 내가 더 이루고, 내가 더 채워야 합니다. 그러나 사죄의 자리에서는 은혜가 목적지입니다.
십자가는 은혜받는 곳입니다.
십자가에 내 자질을 가지고 나가지 마십시오. 내 윤리를 가지고 나가지 마십시오. 십자가는 우리가 무엇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자리입니다.
‘사한다’는 것은 긍휼히 여겨 은혜로써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주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동산을 함께 거닐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나서는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화목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담이 허물어지는 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접붙여지고, 함께 동여매어지고, 하나가 되는 자리입니다.
골로새서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속량과 죄 사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고 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주님의 첫 번째 음성이 바로 사죄의 음성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간구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에서도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사 53:12)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죄 때문에 누군가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내 형제를, 이웃을, 친구를, 내 백성을 죄 때문에 포기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셨고, 우리도 그러한 범죄자였는데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모르는데, 모르는 것까지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다 알고 십자가에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나아갑니다. 십자가 앞에 거저 나아가면 우리의 무지까지도, 우리의 어리석음까지도,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 것까지도 주님께서 담당하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권능입니다.
십자가는 죄를 사하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며, 어둠에 빛을 비추고, 우리를 다시 품어 주시는 자리입니다.
주님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가장 먼저 자신을 모욕하는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기도합니다.
십자가의 사죄의 은총이 없으면 우리도 형제자매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모욕하고 희롱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했지만 주님은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내려오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부드러워야 합니다. 믿고, 받아들이고, 영접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십자가에서 사죄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면 정죄하고 판단하기보다 사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거저 나아가고, 주님께서 거저 베푸시는 자리입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서 가장 귀한 말씀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첫 번째 말씀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가상칠언의 첫 번째 말씀입니다.
십자가는 사하여 주시는 자리입니다.
십자가는 단지 윤리적인 선을 권하는 곳이 아닙니다. 권선의 자리가 아니라 사죄의 자리입니다.
권선은 부족한 것을 내가 더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더 잘하고, 내가 더 이루고, 내가 더 채워야 합니다. 그러나 사죄의 자리에서는 은혜가 목적지입니다.
십자가는 은혜받는 곳입니다.
십자가에 내 자질을 가지고 나가지 마십시오. 내 윤리를 가지고 나가지 마십시오. 십자가는 우리가 무엇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자리입니다.
‘사한다’는 것은 긍휼히 여겨 은혜로써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주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동산을 함께 거닐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나서는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화목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담이 허물어지는 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접붙여지고, 함께 동여매어지고, 하나가 되는 자리입니다.
골로새서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속량과 죄 사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고 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주님의 첫 번째 음성이 바로 사죄의 음성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간구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에서도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사 53:12)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죄 때문에 누군가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내 형제를, 이웃을, 친구를, 내 백성을 죄 때문에 포기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셨고, 우리도 그러한 범죄자였는데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모르는데, 모르는 것까지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다 알고 십자가에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나아갑니다. 십자가 앞에 거저 나아가면 우리의 무지까지도, 우리의 어리석음까지도,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 것까지도 주님께서 담당하십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권능입니다.
십자가는 죄를 사하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며, 어둠에 빛을 비추고, 우리를 다시 품어 주시는 자리입니다.
주님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가장 먼저 자신을 모욕하는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기도합니다.
십자가의 사죄의 은총이 없으면 우리도 형제자매의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모욕하고 희롱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했지만 주님은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내려오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부드러워야 합니다. 믿고, 받아들이고, 영접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십자가에서 사죄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면 정죄하고 판단하기보다 사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거저 나아가고, 주님께서 거저 베푸시는 자리입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