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9.30. 수요일 묵상 | 3. 내려오지 않으신 하나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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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나의 표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여 주신 가장 중요한 표적 가운데 하나가 요나의 표적입니다. 죽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표적은 말구유의 표적입니다.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천사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 2:12)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낮은 곳에 오셨습니다. 아버지 품속에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찬양받으실 하나님의 아들이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표적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
이 말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들으셨던 말과 같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3)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마 4:6)
똑같은 시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우리의 자리에 서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죄 사함에 이르는 회개의 세례를 받으셨고, 겟세마네에서 땀이 피처럼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왜 자기 구원이 필요하겠습니까? 구원이 필요한 것은 타락한 인류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아버지의 뜻을 이루러 오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아들이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선택받은 자녀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세례를 말렸을 때 주님께서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권능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능력을 사용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좋은 길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이 험한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됩니다. 고난의 다리가 생명의 길이 됩니다.
아들은 아버지께 순종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러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롬 8:32)
사도 바울도 잡힐 것을 알면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제자들도 십자가 사건 때에는 모두 도망쳤지만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난 뒤에는 달라졌습니다.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빛이 어둠에 오셨습니다. 어둠을 이기시기 위해서입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죽음은 생명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말씀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죄를 속하고 우리를 빛으로,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신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