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9.29. 화요일 묵상 | 2.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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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 위에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얼굴이나 모습을 성경이 자세히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 무엇이 쓰여 있었는지는 분명히 기록합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그 죄패가 복음입니다.
왜 ‘나사렛 예수’라고 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나사렛에서 자라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도 복음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나사렛에서 자라신 그 사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입니다.
그리고 그 나사렛 예수가 ‘유대인의 왕’입니다.
왕은 단지 명령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왕은 베푸시는 분입니다. 제사장은 자신을 위로 드리고, 왕은 자신을 아래로 우리에게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에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짐승을 드렸습니다. 소와 양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단번에, 영원하고 온전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큰 대제사장이라는 말은 큰 옷을 입고 높은 자리에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우리를 위하여 드리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위로 자신을 드리신 그분이 이제 하늘에 올라가셔서 우리에게 자신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떠나가심으로 또 다른 보혜사가 오십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그리스도의 이루신 일을 우리에게 적용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을 위로 드리시는 제사장이시며,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왕이십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은 복음입니다.
구약 백성도 신약 백성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믿었고 그것이 의로 여겨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참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죄하기 위하여 죄패를 붙였습니다. 그러나 그 죄패가 오히려 복음을 증언합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예수님은 자기 몸을 대속물로 드리셨습니다. 한 번도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은 몇 번 섬기고 나면 나도 섬김을 받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오늘 십자가 아래의 사람들은 “자기를 구원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무지한 말입니까? 구원이 필요한 것은 죄 가운데 있는 타락한 인류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구원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분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주십니다. 값없이 주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영접합니다. 그들은 모욕하고 희롱하고 비웃었지만 우리는 믿고 고백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순하고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마음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