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핵심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이 비유는 신자가 네 부류의 사람으로 나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전부 넷째 부류인 좋은 땅임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선택을 말합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라”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사야 53:1에서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누가 믿었느나’는 선택의 가르침입니다. 첫째, 둘째, 셋째 부류는 택함 받은 자에게는 필요 없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택함 받은 백성도 첫째, 둘째, 셋째 부류의 버릇이 남아 있기에 그것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말씀이 잘 떨어지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넷째 부류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첫째, 둘째, 셋째 부류의 버릇이 남아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자주 말씀드렸듯이, “말씀 읽기에 힘쓰자, 말씀 붙들고 기도하기에 힘쓰자, 기도한즉 오래 참자.” 참는 것은 온유한 것입니다. 듣고 지키고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 말씀은 복된 말씀이지, 성도의 부류를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모두 좋은 땅입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핵심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이 비유는 신자가 네 부류의 사람으로 나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전부 넷째 부류인 좋은 땅임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선택을 말합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라”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사야 53:1에서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누가 믿었느나’는 선택의 가르침입니다. 첫째, 둘째, 셋째 부류는 택함 받은 자에게는 필요 없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택함 받은 백성도 첫째, 둘째, 셋째 부류의 버릇이 남아 있기에 그것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말씀이 잘 떨어지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넷째 부류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첫째, 둘째, 셋째 부류의 버릇이 남아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자주 말씀드렸듯이, “말씀 읽기에 힘쓰자, 말씀 붙들고 기도하기에 힘쓰자, 기도한즉 오래 참자.” 참는 것은 온유한 것입니다. 듣고 지키고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 말씀은 복된 말씀이지, 성도의 부류를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모두 좋은 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