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14. 화요일 묵상 | 2. 성전: 하나님을 예배하는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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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특별히 에덴이라는 터를 두셔서 그곳에서 사람과 사귀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같이 걷고 대화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타락해서 에덴을 잃어버렸습니다. 사귐의 터가 상실되었습니다. 터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 터, 에덴을 잃어버리니 방황하게 된 것입니다. 중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터를 하나님이 이 지상에 두시고자 하신 것이 바로 구약으로는 성전이요 신약으로는 교회입니다. 성전이 사귐의 터고 교회가 사귐의 터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은 함께 계시고 임마누엘, 뜻을 알리시고 예배 받으시고 생명을 낳고 자라게 하고 기르시고 끝내 그곳에서 하나되게 하십니다. 

   1) 출애굽의 명분: 하나님께 정결하게 예배드리기

     하나님이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실 때 명분이 무엇이었나요? 출애굽개 3장에 보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한 말입니다. 사흘 길쯤 광야로 가서 제사를 드린다는 말입니다. 모세가 바로를 만날 때마다 이 이야기를 합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께 들은 말이 이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라고 여호와가 지시하셨고 모세가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 왕 앞에서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고 제사를 드릴 것이라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가야 할 목적을 말한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시내산입니다. 사흘 길 정도 가면 나오는 그 시내산에서 언약을 지키고 제사드리고 절기 지키게 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약, 절기, 제사입니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절기를 지키고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기 지키고 제사 드리러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드리면 안 되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정결 개념입니다. 언약, 절기, 제사의 기초가 되는 것이 정결례입니다. 신약으로 말하면 회개입니다. 정결이라는 것은 섞여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나와서 언약 지켜야 하고 절기와 제사를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들을 진멸하고 쫓아내야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들과 섞인 상태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세가 여러 가지 설득할 수 있는 말을 하지 않고 바로에게 한 말은 이것입니다. 나가서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나가서 여호와께 제사드리고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고 하신 말입니다. 
     섬긴다는 말은 동그란 데 안에 모여 있다는 원어의 의미가 있습니다. 성전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모여서 옮겨서 제사를 드리는데 그곳이 바로 성전의 터입니다. 그곳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성전 지으러 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 일을 알았습니다. 성전 지어서 법궤 모시는 것을 최고의 일로 알았으나 하나님은 그 일을 아들 솔로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에게 있어 모세가 요구한 바는 말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열 가지 재앙이 내려지고 결국은 많은 재물과 가축과 심지어 다른 족속들도 이스라엘 백성을 따라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여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도착하게 하십니다. 

   2) 관념적, 편의적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말씀에 따라야 함

     애굽은 그 당시 세계 최고의 문명 도시입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으나 그곳에는 여호와의 뚜렷한 임재가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나, 벧엘의 돌밖에 없으나 여호와의 임재, 사닥다리가 광야에 내려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모래와 돌만 있는 황무지에 물이 나오고 만나와 메추라기가 떨어집니다. 먹여 주시고 재워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생수를 주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관념으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에도 무교회주의가 강했습니다. 굳이 교회에 갈 필요 없이 성경 읽고 기도하면 된다고 하는 말인데, 이는 곧 애굽을 나올 필요가 없다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지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때와 장소를 정해 예배를 명하신 것입니다. 지난 주 살펴본 사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잘못을 했습니다. 사울도 예배드리고 제사도 드렸습니다. 그러나 조금 편하고자 약간 변형을 한 것입니다. 다윗에 비해 하나님께 여쭈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싫어하신 것입니다.

   3) 예루살렘 성전 터

     가나안, 현재로 팔레스타인 지역은 아직도 전쟁 상태입니다. 예루살렘에는 모든 것이 다 모여 있습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정교 등이 다 모여 있습니다. 바로 터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예루살렘의 성전의 터에는 가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그 앞에 세워진 통곡의 벽에 울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해 내셨음이니라 ...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 네게 주시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출 13:3, 5, 9). 여호와를 섬기는 것, 구체적으로 절기와 제사를 드리는 것, 그리고 더 확장하면 거룩하게 사는 것이 복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범죄한 것은 다 됐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요압이 사실상 골치덩어리인데 인구조사에 대해서는 다윗에 대해 옳은 소리를 했습니다. 인구조사가 왜 나쁩니까? 내가 했다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바로 세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십니다. 다윗은 그중 재앙, 전염병을 택하는데, 이것을 그치게 한 것이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산 일입니다.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니 거기에서 칼을 빼던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거두고 질병이 멈춥니다. 그때까지 아직 기브온 산당에 법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곳에 가서는 제사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검을 빼고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르난은 타작 마당을 그냥 드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값을 지불하고 삽니다. 주의 일을 그냥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곳에서 제단을 쌓습니다. 그곳이 바로 역대상 21장에서 여호와의 성전이자 번제단으로 표현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