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이미 병자들의 속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물어보십니다. 예루살렘의 소경들에게도 무엇을 하기 원하는지 물어보십니다.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들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병이 한두 달 정도라면 낫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38년 된 병자에게는 마음의 원함 조차도 없어집니다. 혹 누가 낫고자 원하냐고 한다면 그저 지나가는 말로 치부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낫고자 원하느냐 물으십니다. 예수를 만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물으십니다. 그것은 형편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아십니다. 못 보는 바디매오, 열두 해 혈루병 환자, 수로보니게 여인, 그들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원하는지 말입니다. 예수를 만났을 때 정말 원하는 걸 먼저 내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주여, 살고 싶습니다.’ ‘걷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말입니다. 주님을 만나건 그냥 친구를 만나건 원하는 것이 상투적으로 똑같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방점을 육신이 약한 것에 찍곤 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원은 주님을 만나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원함과 약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한 심령의 간구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먼저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주님은 그걸 물으시고, 그것이 우리 믿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함은 내가 갖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병자들에게 낫기를 원하는지 물으니 물에 넣어 줄 자가 없다고 동문서답을 합니다.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은 진정으로 원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도 원한다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칼빈 출생 500주년에 말씀이 온전히 증거되는 곳에 부흥이 있게 해 달라고, 그 일에 사용되게 해 달라고, 종이 원하는 일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진정 아뢰는 일이 필요합니다. 먼저 조건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조건을 따지지 않고 낫기 원하는지 물으셨습니다. 병자들은 조건을 말합니다. 조건으로 따지면 절대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때 이루어집니다. 주의 일 한다는 사람들이 유학 간다고 하면서 학비 이야기 하면 추천서 써 주지 않습니다. 주님은 무엇을 할 것인지, 주님이 기뻐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래서 내가 진정 그것을 원하는지를 물으시지 돈이 얼마나 드는지, 형편이 어떤지 묻지 않으십니다. 조건을 생각한다면 한국에 이렇게 십자가가 많이 세워질 수 없었습니다. 조건으로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병자들의 속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물어보십니다. 예루살렘의 소경들에게도 무엇을 하기 원하는지 물어보십니다.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들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병이 한두 달 정도라면 낫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38년 된 병자에게는 마음의 원함 조차도 없어집니다. 혹 누가 낫고자 원하냐고 한다면 그저 지나가는 말로 치부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낫고자 원하느냐 물으십니다. 예수를 만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물으십니다. 그것은 형편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아십니다. 못 보는 바디매오, 열두 해 혈루병 환자, 수로보니게 여인, 그들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원하는지 말입니다. 예수를 만났을 때 정말 원하는 걸 먼저 내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주여, 살고 싶습니다.’ ‘걷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말입니다. 주님을 만나건 그냥 친구를 만나건 원하는 것이 상투적으로 똑같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방점을 육신이 약한 것에 찍곤 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원은 주님을 만나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원함과 약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한 심령의 간구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먼저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주님은 그걸 물으시고, 그것이 우리 믿음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함은 내가 갖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병자들에게 낫기를 원하는지 물으니 물에 넣어 줄 자가 없다고 동문서답을 합니다.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은 진정으로 원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도 원한다는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칼빈 출생 500주년에 말씀이 온전히 증거되는 곳에 부흥이 있게 해 달라고, 그 일에 사용되게 해 달라고, 종이 원하는 일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진정 아뢰는 일이 필요합니다. 먼저 조건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조건을 따지지 않고 낫기 원하는지 물으셨습니다. 병자들은 조건을 말합니다. 조건으로 따지면 절대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때 이루어집니다. 주의 일 한다는 사람들이 유학 간다고 하면서 학비 이야기 하면 추천서 써 주지 않습니다. 주님은 무엇을 할 것인지, 주님이 기뻐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래서 내가 진정 그것을 원하는지를 물으시지 돈이 얼마나 드는지, 형편이 어떤지 묻지 않으십니다. 조건을 생각한다면 한국에 이렇게 십자가가 많이 세워질 수 없었습니다. 조건으로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