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율법에 순종하신 것입닏니다. 1차적으로 순종의 모범을 보이신 것이고 더 나아가 절기의 때 친히 성전이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 일을 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본문의 정확한 절기는 알 수 없습니다. 오순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팔절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달력으로는 7월 1일입니다. 그런데 대체로 성경에 따라 생각해 본다면, 예수님이 유월절에 성전에 가셨다가 가르치고 다시 오셔서 사마리아로 가셔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씀을 나눌 때 네 달이 있으면 추수할 때가 온다고 말씀하셨기에, 즉 이 명절을 오순절이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절기는 유월절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절기는 오순절입니다.
이처럼 본문의 배경, 장소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 문 근처에 베데스다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물고기 팔러 다니는 곳이라는 의미로 어문이라고도 합니다. 양문은 북쪽으로 나 있습니다. 양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사용하는 그런 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명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지 말고 한번 새기는 것입니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히브리어입니다. 헬라 사람들이 들어와서 언어가 많이 섞여서 잘 알 수 없으나 대체로 ‘자비의 집’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설이라기보다는 여러 해석 중 하나입니다. 또 다르게 보아서는 ‘행각들의 집’, 혹은 ‘감람나무의 집’, 혹은 ‘물이 부글거리는 집’으로 해석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자비의 집’, ‘치유하는 집’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칼빈은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집’으로 해석했습니다. 어쨌건 베데스다라는 것은 물이 부글부글거리고 그 옆에 자비를 베풀고 하는 의미가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베데스다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물이 생각보다 깊었습니다. 그리고 안나의 교회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베데스다는 사람들, 특히 병자들, 맹인, 다리 저는 자, 혈기 마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혈기 마른 사람들은 아마도 중풍병자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피가 안 도는, 즉 쥐가 나는 것 같은 상태로 계속 산다고 하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그들은 구걸을 했고 낫기를 원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기 원했을 것입니다. 누가 데려가 주었으면 좋았겠으나 죄를 병의 원인으로 보는 분위기로 인해 예배에서도 소외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본문의 배경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돈이 오가고, 연약한 사람들이 누워 있고, 그 옆에는 성전이 있고, 그리고 그 옆에 베데스다 연못이 있는 그런 곳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율법에 순종하신 것입닏니다. 1차적으로 순종의 모범을 보이신 것이고 더 나아가 절기의 때 친히 성전이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 일을 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본문의 정확한 절기는 알 수 없습니다. 오순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팔절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달력으로는 7월 1일입니다. 그런데 대체로 성경에 따라 생각해 본다면, 예수님이 유월절에 성전에 가셨다가 가르치고 다시 오셔서 사마리아로 가셔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씀을 나눌 때 네 달이 있으면 추수할 때가 온다고 말씀하셨기에, 즉 이 명절을 오순절이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절기는 유월절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절기는 오순절입니다.
이처럼 본문의 배경, 장소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 문 근처에 베데스다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물고기 팔러 다니는 곳이라는 의미로 어문이라고도 합니다. 양문은 북쪽으로 나 있습니다. 양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사용하는 그런 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명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지 말고 한번 새기는 것입니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히브리어입니다. 헬라 사람들이 들어와서 언어가 많이 섞여서 잘 알 수 없으나 대체로 ‘자비의 집’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설이라기보다는 여러 해석 중 하나입니다. 또 다르게 보아서는 ‘행각들의 집’, 혹은 ‘감람나무의 집’, 혹은 ‘물이 부글거리는 집’으로 해석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자비의 집’, ‘치유하는 집’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칼빈은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집’으로 해석했습니다. 어쨌건 베데스다라는 것은 물이 부글부글거리고 그 옆에 자비를 베풀고 하는 의미가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베데스다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물이 생각보다 깊었습니다. 그리고 안나의 교회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베데스다는 사람들, 특히 병자들, 맹인, 다리 저는 자, 혈기 마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혈기 마른 사람들은 아마도 중풍병자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피가 안 도는, 즉 쥐가 나는 것 같은 상태로 계속 산다고 하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그들은 구걸을 했고 낫기를 원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기 원했을 것입니다. 누가 데려가 주었으면 좋았겠으나 죄를 병의 원인으로 보는 분위기로 인해 예배에서도 소외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본문의 배경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돈이 오가고, 연약한 사람들이 누워 있고, 그 옆에는 성전이 있고, 그리고 그 옆에 베데스다 연못이 있는 그런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