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인자의 살과 피를 먹으려면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 6:47). 인자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은 인자가 날 위해 살이 베이시고 빻이신 것을 믿으면 됩니다. 그러면 그 살과 피가 내 것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찬입니다. 믿음으로 떡과 잔을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잔은 언약의 피, 그 떡은 예수님의 살입니다. 믿음으로 받을 때 그러한 것입니다. 인자를 믿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 먹는 것이고 믿는 것이 마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어거스틴의 말입니다. 칼빈도 그대로 인용합니다. 정리하면, 인자가 날 위해 죽으시고 내가 인자를 믿으면 됩니다. 그러면 그의 살이 내 살이 됩니다. 그의 피가 내 피가 됩니다.
예수님은 더 필요한 것도 채울 것도 없는 완전 자존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맡겨 주신 자를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택입니다. 그래서 죽기까지 고난당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내어 주시까지 하신 것입니다. 상징이 아닙니다.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 살과 피가 내 대신, 나 때문에 드려지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가 먹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기념하는 것이 성찬입니다. 본문의 말씀에 대한 표가 성찬식입니다. 떡은 필수적인 것이요, 유일한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떡과 물입니다. 본문 48절의 말씀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51절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라고 합니다. 58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동일한 말이 여러 번 나오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간절함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소유의 신앙, 예수님의 손에 들린 것을 찾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이 아닌 나 자신을 보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존재의 신앙을 가져야 나의 나 된 것으로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생명의 떡, 하늘에서 ‘내려온’/‘내려오는’ 살아 있는 떡입니다. 진행형과 완료형이 동시 사용된 것은 이미 이 땅에 임했고 지금도 주어지고 있는 양식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인치심입니다. 우리는 내일 뭘 먹을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객은 걱정하지만 자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바로 우리에게 그런 존재를 주셨습니다. 인자가 생명의 떡인데 이미 인 친 바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주신 바 되었습니다. 날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신앙이요, 성찬입니다. 그런데 날마다 우리에게 그 가운데 새로운 것을 공급하십니다. 이미 자기 자신을 주셨으니 또 날마다 쪼개서 주십니다. 예수님의 신앙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리고 인자의 살과 피를 먹으려면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 6:47). 인자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은 인자가 날 위해 살이 베이시고 빻이신 것을 믿으면 됩니다. 그러면 그 살과 피가 내 것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찬입니다. 믿음으로 떡과 잔을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잔은 언약의 피, 그 떡은 예수님의 살입니다. 믿음으로 받을 때 그러한 것입니다. 인자를 믿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 먹는 것이고 믿는 것이 마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어거스틴의 말입니다. 칼빈도 그대로 인용합니다. 정리하면, 인자가 날 위해 죽으시고 내가 인자를 믿으면 됩니다. 그러면 그의 살이 내 살이 됩니다. 그의 피가 내 피가 됩니다.
예수님은 더 필요한 것도 채울 것도 없는 완전 자존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맡겨 주신 자를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택입니다. 그래서 죽기까지 고난당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내어 주시까지 하신 것입니다. 상징이 아닙니다.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 살과 피가 내 대신, 나 때문에 드려지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가 먹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기념하는 것이 성찬입니다. 본문의 말씀에 대한 표가 성찬식입니다. 떡은 필수적인 것이요, 유일한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떡과 물입니다. 본문 48절의 말씀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51절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라고 합니다. 58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동일한 말이 여러 번 나오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간절함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소유의 신앙, 예수님의 손에 들린 것을 찾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이 아닌 나 자신을 보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존재의 신앙을 가져야 나의 나 된 것으로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생명의 떡, 하늘에서 ‘내려온’/‘내려오는’ 살아 있는 떡입니다. 진행형과 완료형이 동시 사용된 것은 이미 이 땅에 임했고 지금도 주어지고 있는 양식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인치심입니다. 우리는 내일 뭘 먹을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객은 걱정하지만 자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바로 우리에게 그런 존재를 주셨습니다. 인자가 생명의 떡인데 이미 인 친 바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주신 바 되었습니다. 날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신앙이요, 성찬입니다. 그런데 날마다 우리에게 그 가운데 새로운 것을 공급하십니다. 이미 자기 자신을 주셨으니 또 날마다 쪼개서 주십니다. 예수님의 신앙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