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6. 금요일 묵상 | 5. 믿음의 간구 & 6.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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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믿음의 간구

     무리 가운데 있다가 따라간다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 복음서에서 제자도를 의미하는 핵심 단어가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율법에는 나오지 않지만 맹인도 결국 죄를 지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아무 집에나 들여놓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전에만 해도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집에 들이지 않고 창 밖에 기다리게 한 것입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사 35:5). 그러므로 주님이 맹인들의 부르심을 듣고 ‘네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첫째, 이 질문은 주님에게 이 일을 할 능력이 있는지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묻는 자 스스로가 원하는 것인지를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가 있어야 믿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도 원하신다는 확신의 기도가 바로 믿음의 기도입니다. 나는 원하는데 하나님은 원치 않는다고 여기면 믿음의 기도가 아닙니다. ‘내가 눈 뜨기를 원한다, 주님도 그것을 원하신다’고 여기고 기도한다면 그것은 ‘눈을 뜨게 하셔서 자녀로 예배드리고 헌신하고 그 눈으로 자녀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시옵소서, 그것이 주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지 몸을 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낫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실 것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이것이 항상 있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확신의 기도, 그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도 원하시는지, 그것을 확신하여 구하는 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도 원하신다는 믿음의 기도, 이것을 보시려고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 물으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눈을 뜨게 하시면 예수님의 복음 전도자가 되겠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나가서 소식을 전한다’는 것이 그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애초에 낫게 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가 나음을 얻자 한 일입니다. 제 기도제목은 우리 교회, 한국 교회, 그리고 세계 교회와 복음화입니다. 이것 외 다른 기도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이루시리라고 생각하고 믿습니다. 주님이 이 교회와 복음에 관한 기도를 원하시는 것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저를 사용하실 줄을 믿고 하나님도 기뻐하심을 믿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 제가 교만해질 수도 있고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눈을 성하게 하여 죄 짓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한 눈으로 죄 안 짓고 천국에 가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은 맹인에게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하셨습니다. 맹인은 그저 눈치 보고 따라가고 하는 일을 반복할 뿐입니다. 내가 낫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중에 눈을 뜨게 하시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아가겠다는 소망이 생기고 그 가운데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본문의 말 못하는 자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보통 말 못한다는 것은 듣지도 못함을 의미합니다. 귀신 들리면 말을 못 듣는데 말씀하여 귀신을 떠나게 한 것은 귀신을 쫓아낸 것을 의미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슥 13:2).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입과 귀와 모든 것이 닫힌 것입니다. 그를 예수님께 데려오니 귀신을 쫓아내고 말하게 하십니다. 마가복음에 에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풀려 말하는 것이 분명하게 됐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입과 혀가 제대로 풀린 것입니다. 본문도 같은 내용이리라 생각합니다. 말씀을 듣고 혀가 풀려서 말하는 것이 분명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 35:6). 동 장 5절은 메시아가 오시면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본문에서 맹인과 벙어리를 고치신 것은 이사야서 35장의 병행구절입니다. 마태복음이 바로 이런 의미에서 유대인들을 지향하는 복음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후반부에는 추수하는 일꾼을 보내달라고 하십니다. 이는 목자 없는 양으로 불쌍히 여기시는 자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을 해서 더 이상 부를 자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추수할 곡식이 많으니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지난번 선교현장에서 저도 제가 복음에 필요한 일을 할 자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방에서는 한 시간이 그저 지나가지만 거기서는 한 시간을 열심히 전하면 복음 받을 자들이 널려 있는 것입니다. 추수할 일꾼들이 많은데 중요한 것은 참 목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의 팔과 오른쪽 눈에 내리리니 그의 팔이 아주 마르고 그의 오른쪽 눈이 아주 멀어 버릴 것이라 하시니라”(슥 11:17).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또한 동 장 4-7절은 잡혀 죽을 양떼를 먹이라고 합니다. 이슬람에, 세속에 잡혀 먹힐 양떼를 먹이라는 것으로 들립니다. 


6. 결론

     말씀을 마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목자 없이 유리하는 양 같은 우리에게 주님을 만나서 눈 뜨고 말도 하게 하셨습니다. 영안이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하는 것이 분명하게, 하나님이 들으실 만한 혀를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많이 말씀 보고, 많이 찬송하고 크게 찬송하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귀한 일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말 못하는 자 볼 수 없는 자로 여겨져야 합니다. 그런 우리가 주님을 만나서 보고 듣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좋은 것, 주님의 말씀을 듣고 보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혀가 찬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