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해마다 이때쯤이면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구약의 절기를 지키듯이 하는 것은 아니요, 신약백성으로 살면서 주님이 다 이루신 의를 누리면서 그 가운데 역사적으로 청교도들이 미국에 처음으로 들어가서 메사추세스 주 등에서 많은 사람이 죽고 그리고 추수하고 그야말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이미 배를 타고 오면서도 많이 죽었고요, 그런 추수의 결실의 수확의 기쁨을 하나님께 정하여서 하나님께 우리가 이곳에 처음 와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생활을 마치고 광야에 와서 첫 열매를 먹었다고 한 것처럼 삶의 감사를 드리기 위한 개념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구약의 절기는 더이상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께 정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것도 나신 것도 고난 당하신 것도 기념하는 것은 기쁜, 귀한 일입니다.
강단 앞에 놓인 온갖 과일과 곡식을 보며 참 감사합니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보니 참 사무치는 감사함이 있습니다. 오는 길에 보이는 성찬의 피 색과 같은 산수유 나무 열매를 봐도 그것을 있게 하고 만드신 하나님의 은혜를 봅니다. 고구마도 자리를 잡고 그래서 땅에서 견뎌내고 그리고 이렇게 영역을 넓혀 가면서 땅의 양분을, 수분을 흡수해서 맛있는 것을 만들어 주는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인류 문명이 발달로 이기가 있다고 하나 자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참으로 복된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함으로 받을 일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의 삶이 은혜 위에 은혜, 전적 은혜, 오직 은혜의 누림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자 누리는 것이 성화요 거룩해지는 것으로 많이 나눴습니다. 어떤 조건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을 붙드는 일로 나아간다면 그것이 신앙의 진보입니다. 절대적인 형편과 성격 등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어 의뢰하고 맡기는 것이 진보요 감사입니다. 은혜가 없이 감사가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는 신령한 것,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누리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넘쳐서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심령이 감사로 넘치는 것입니다. 은혜를 누리는 것이 감사입니다. 물질로 표를 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은혜에 대한 아멘이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 감사, 전적 감사입니다. 가장 딱한 노릇이 많이 누리면서도 불평하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못되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누리면서도 뭐가 더 아쉬워서 불평을 하는지 말입니다. 물질이 많다고 감사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난해도 감사하고 가난해도, 별거 아닌 것을 먹어도 감사하게 먹을 때 그것이 복된 것입니다. 우리 어릴 때를 보면 참 먹을 것이 없고 그래도 복되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게 보면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면, 부자가 감사하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유하면 가진 것이 가진 것을 낳는다고 생각해서 당연히 여기기 쉽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 5:18). 소유적 감사가 아닌 존재적 감사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소유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나의 나 된 것으로, 내 존재로 기뻐하고 감사할 때만 범사에 항상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시 95:2);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기도도 기본이 감사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내 잔이 넘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한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감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감사로 기도하고 감사로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가장 우리의 감사한 것이 은혜요, 은혜의 표시가 감사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이니 감사 위에 감사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또 하나님께 구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모습이 우리 감사의 모습입니다. 구약에 여러 제사가 있으나 가장 기본이 감사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가운데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니, 제물의 종류 전에, 번제와 우양보다 상한 심령을 받으신다고 하셨는데, 이 상한 심령이 바로 감사인 것입니다. 없으면서도 감사하는 그 가운데 눈물, 그것이 상한 심령입니다. 상한 심령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심령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언제 감사합니까. 막 넘칠 때 감사하지 않습니다. 나의 나된 것과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 가운데 하나님이 나에게 서늘한 무엇 하나라도 찍어 주시고 남겨 주실 때 감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이때쯤이면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구약의 절기를 지키듯이 하는 것은 아니요, 신약백성으로 살면서 주님이 다 이루신 의를 누리면서 그 가운데 역사적으로 청교도들이 미국에 처음으로 들어가서 메사추세스 주 등에서 많은 사람이 죽고 그리고 추수하고 그야말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이미 배를 타고 오면서도 많이 죽었고요, 그런 추수의 결실의 수확의 기쁨을 하나님께 정하여서 하나님께 우리가 이곳에 처음 와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생활을 마치고 광야에 와서 첫 열매를 먹었다고 한 것처럼 삶의 감사를 드리기 위한 개념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구약의 절기는 더이상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께 정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것도 나신 것도 고난 당하신 것도 기념하는 것은 기쁜, 귀한 일입니다.
강단 앞에 놓인 온갖 과일과 곡식을 보며 참 감사합니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보니 참 사무치는 감사함이 있습니다. 오는 길에 보이는 성찬의 피 색과 같은 산수유 나무 열매를 봐도 그것을 있게 하고 만드신 하나님의 은혜를 봅니다. 고구마도 자리를 잡고 그래서 땅에서 견뎌내고 그리고 이렇게 영역을 넓혀 가면서 땅의 양분을, 수분을 흡수해서 맛있는 것을 만들어 주는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인류 문명이 발달로 이기가 있다고 하나 자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참으로 복된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함으로 받을 일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의 삶이 은혜 위에 은혜, 전적 은혜, 오직 은혜의 누림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자 누리는 것이 성화요 거룩해지는 것으로 많이 나눴습니다. 어떤 조건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을 붙드는 일로 나아간다면 그것이 신앙의 진보입니다. 절대적인 형편과 성격 등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어 의뢰하고 맡기는 것이 진보요 감사입니다. 은혜가 없이 감사가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감사는 신령한 것,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누리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은혜가 넘쳐서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심령이 감사로 넘치는 것입니다. 은혜를 누리는 것이 감사입니다. 물질로 표를 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서 은혜에 대한 아멘이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 감사, 전적 감사입니다. 가장 딱한 노릇이 많이 누리면서도 불평하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못되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누리면서도 뭐가 더 아쉬워서 불평을 하는지 말입니다. 물질이 많다고 감사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난해도 감사하고 가난해도, 별거 아닌 것을 먹어도 감사하게 먹을 때 그것이 복된 것입니다. 우리 어릴 때를 보면 참 먹을 것이 없고 그래도 복되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게 보면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보면, 부자가 감사하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유하면 가진 것이 가진 것을 낳는다고 생각해서 당연히 여기기 쉽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 5:18). 소유적 감사가 아닌 존재적 감사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소유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나의 나 된 것으로, 내 존재로 기뻐하고 감사할 때만 범사에 항상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시 95:2);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기도도 기본이 감사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내 잔이 넘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희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한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감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감사로 기도하고 감사로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가장 우리의 감사한 것이 은혜요, 은혜의 표시가 감사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이니 감사 위에 감사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또 하나님께 구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모습이 우리 감사의 모습입니다. 구약에 여러 제사가 있으나 가장 기본이 감사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가운데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니, 제물의 종류 전에, 번제와 우양보다 상한 심령을 받으신다고 하셨는데, 이 상한 심령이 바로 감사인 것입니다. 없으면서도 감사하는 그 가운데 눈물, 그것이 상한 심령입니다. 상한 심령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심령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언제 감사합니까. 막 넘칠 때 감사하지 않습니다. 나의 나된 것과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 가운데 하나님이 나에게 서늘한 무엇 하나라도 찍어 주시고 남겨 주실 때 감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