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7.20. 월요일 묵상 | 1.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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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17장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습니다. 지금까지 주님께서 먼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이어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앞으로 믿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곧 오순절 이후 세워질 신약시대 교회와 오늘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당시 제자들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찬을 제정하시고 이 대제사장적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는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로마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이라고 증거하고, 히브리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중보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7장은 단지 과거에 한 번 드려진 기도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를 위하여 드리고 계시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주님의 현재의 기도를 듣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느냐보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를 바라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드리시는 기도는 크게 네 가지로 모아집니다. 하나됨과 영광, 사랑과 지식입니다. 이 네 가지는 서로 떨어져 있는 내용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지는 은혜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고, 영광을 누리게 하시며, 사랑 안에 거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으로 인도하시기를 기도하십니다.
먼저 주님께서는 사도들의 말로 말미암아 자신을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도들에게 맡겨졌고, 사도들은 그 말씀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전한 말씀은 단순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도 바로 그 말씀을 듣고 믿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실 때 그 기도 속에는 오늘 우리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다 알지 못하고,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도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우리 혼자의 기도가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과 그리스도의 중보 안에서 드려지는 기도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히브리서는 그분의 제사장 직분이 결코 다른 이에게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시며 지금도 쉬지 않고 강구하십니다. 이것이 신약시대 성도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위로입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혼자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우리의 상한 심령과 부족한 기도는 그리스도의 중보 안에서 하나님께 올려집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느냐입니다. 잘하는 기도와 못하는 기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간절한 기도가 있을 뿐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주님께서는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시며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그 기도는 자녀가 아버지를 향하여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성령을 받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양자의 영이며 자녀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 삼으셨고,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요한복음 17장은 우리에게 먼저 기도의 방법을 가르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주님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때에도, 연약할 때에도,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모를 때에도 주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서 쉬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그 중보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기도를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