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증언만으로는 예수님을 정죄할 죄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직접 신문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묻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네가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묻습니다.
‘찬송받을 이’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는 질문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로마서 9장 5절은 우리 주님을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라고 증언합니다. 하나님만 찬송받으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찬송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먼저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고 묻고, 다시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묻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네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냐?”
이것은 바로 베드로가 했던 고백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마르다도 동일하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며 ‘메시아’와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이 되셔서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분을 감당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에는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주님의 인성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에는 예수님의 신성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 안에 참하나님이시며 참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동시에 사람의 아들로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다가 사람의 아들로 바뀌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변하시며 영원하시고 스스로 계십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의 아들이 되셨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이 성육신의 비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언제나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셨습니다. 잠시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셨거나 사람의 아들이 아니셨던 적이 없습니다. 참하나님과 참사람이라는 두 본성이 한 위격 안에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되신 주님께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가운데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 알리고 이루시는 선지자이십니다. 자신을 제물로 드리시는 제사장이시며,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제사장이 되어 자신을 드리시고, 왕으로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위로 자신을 드리시는 것이 제사장의 직분이라면, 아래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왕의 직분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보혜사 성령의 임재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까지 계속 보았듯이, 주님께서는 영원히, 땅끝까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속에 거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떠나가셔야 또 다른 보혜사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원보혜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시며 승천하셔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거짓 증언만으로는 예수님을 정죄할 죄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직접 신문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묻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네가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묻습니다.
‘찬송받을 이’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찬송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는 질문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로마서 9장 5절은 우리 주님을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라고 증언합니다. 하나님만 찬송받으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찬송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먼저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고 묻고, 다시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묻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네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냐?”
이것은 바로 베드로가 했던 고백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마르다도 동일하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며 ‘메시아’와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이 되셔서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분을 감당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에는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주님의 인성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에는 예수님의 신성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 안에 참하나님이시며 참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동시에 사람의 아들로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다가 사람의 아들로 바뀌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불변하시며 영원하시고 스스로 계십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의 아들이 되셨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것이 성육신의 비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언제나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셨습니다. 잠시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셨거나 사람의 아들이 아니셨던 적이 없습니다. 참하나님과 참사람이라는 두 본성이 한 위격 안에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되신 주님께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가운데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 알리고 이루시는 선지자이십니다. 자신을 제물로 드리시는 제사장이시며,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제사장이 되어 자신을 드리시고, 왕으로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위로 자신을 드리시는 것이 제사장의 직분이라면, 아래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왕의 직분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보혜사 성령의 임재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까지 계속 보았듯이, 주님께서는 영원히, 땅끝까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 속에 거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떠나가셔야 또 다른 보혜사께서 오시기 때문입니다. 원보혜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시며 승천하셔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