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난주까지 예수님께서 안나스와 가야바에게 신문을 당하시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신문을 당하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소란을 일으켰다고 고발하자,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관할에 속하지 않으므로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다스리던 헤롯 안디바에게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이 되면 갈릴리 사람들도 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으로 내려왔습니다. 헤롯 안디바도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으로 와서 헤롯 궁에 머물렀습니다. 예수님이 나실 때의 왕은 헤롯 대왕이었지만, 이때는 헤롯 대왕이 죽은 뒤였습니다. 예루살렘을 다스리던 헤롯 아켈라오도 일찍 쫓겨났고, 그 자리를 빌라도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헤롯 안디바에게 보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와 헤롯에게 차례로 신문을 당하십니다.
이 신문을 관통하는 큰 주제는 “누가 왕이냐?”라는 질문입니다. 이것은 곧 “누가 메시아냐?”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선지자직과 제사장직과 왕직을 수행하시는 분입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한 것도 예수님께서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시며, 동시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신문을 받으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씀하셨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셨으며, 앞으로 권능의 우편에 앉으셨다가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을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이시고,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가 다시 오실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신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관한 신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신성모독이라고 정죄했습니다.
누구에게 심판하는 권세가 있으며, 누구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습니까? 심판권과 사죄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런데 심판권과 사죄권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죄인들에게 심판을 받으십니다. 죄가 없으시고 죄를 사하시는 분이 죄인으로 취급받으시며, 친히 하나님이신 분이 신성모독을 했다는 고소를 받으십니다. 생명이신 분이 죽음의 심판을 받고, 생명의 빛이신 분이 어둠의 심판을 받고 계십니다.
이 심판을 주도한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 앞에 섰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가운데 메시아를 기다려야 했던 대제사장들이 오히려 메시아를 죽이는 일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기록된 메시아의 예언을 다루던 서기관들도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참여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정국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장로들 역시 그들과 함께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움직여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모든 어둠이 하나로 모여 빛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갔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이미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을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와 사마리아를 관할하던 로마의 총독이었습니다. 그는 주후 26년부터 36년 혹은 37년까지 약 10년 동안 그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뒤에도 몇 년 동안 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성경에서 디베료라고 부르는 티베리우스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수리아에 속해 있었고, 수리아 총독 아래에 빌라도가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최종 권위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예루살렘은 로마에도 매우 중요한 도시였으므로 그곳을 다스리는 자리는 장래가 유망한 사람이 맡는 자리였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온 공회가 새벽에 함께 의논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의논하다’는 말에는 함께 모여 한목소리를 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를 시인하고 고백할 때에도 한목소리를 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자신을 부인해야 예수님을 시인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인한다는 것은 고백한다는 뜻이며, 주님과 한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함께 모여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무엇을 위해 한목소리를 냈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정죄하기 위해 의논했습니다. 누구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예수님께서 죽어야 하며 사형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빌라도와 헤롯도 전에는 원수였지만 이날에는 서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뜻과 목적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일을 이미 알고 예언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수난을 세 차례 예언하실 때마다 그 내용은 점점 더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특별히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 전에 세 번째로 수난을 예언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이나 그가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마 20:18-19)
주님의 말씀 그대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사용된 이방인의 손이 바로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통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고백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주님께서 알지 못하신 가운데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누구에게 넘겨지고 어떤 고난을 받으며 어떻게 죽으실지를 이미 아셨습니다. 또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왕이신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심판받으셨지만, 그 모든 일을 통하여 주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구원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주까지 예수님께서 안나스와 가야바에게 신문을 당하시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신문을 당하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소란을 일으켰다고 고발하자,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관할에 속하지 않으므로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다스리던 헤롯 안디바에게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이 되면 갈릴리 사람들도 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으로 내려왔습니다. 헤롯 안디바도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으로 와서 헤롯 궁에 머물렀습니다. 예수님이 나실 때의 왕은 헤롯 대왕이었지만, 이때는 헤롯 대왕이 죽은 뒤였습니다. 예루살렘을 다스리던 헤롯 아켈라오도 일찍 쫓겨났고, 그 자리를 빌라도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헤롯 안디바에게 보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와 헤롯에게 차례로 신문을 당하십니다.
이 신문을 관통하는 큰 주제는 “누가 왕이냐?”라는 질문입니다. 이것은 곧 “누가 메시아냐?”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선지자직과 제사장직과 왕직을 수행하시는 분입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한 것도 예수님께서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시며, 동시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크게 세 가지 이유로 신문을 받으셨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씀하셨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셨으며, 앞으로 권능의 우편에 앉으셨다가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을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이시고,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가 다시 오실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신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관한 신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신성모독이라고 정죄했습니다.
누구에게 심판하는 권세가 있으며, 누구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습니까? 심판권과 사죄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런데 심판권과 사죄권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죄인들에게 심판을 받으십니다. 죄가 없으시고 죄를 사하시는 분이 죄인으로 취급받으시며, 친히 하나님이신 분이 신성모독을 했다는 고소를 받으십니다. 생명이신 분이 죽음의 심판을 받고, 생명의 빛이신 분이 어둠의 심판을 받고 계십니다.
이 심판을 주도한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 앞에 섰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가운데 메시아를 기다려야 했던 대제사장들이 오히려 메시아를 죽이는 일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기록된 메시아의 예언을 다루던 서기관들도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참여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신정국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장로들 역시 그들과 함께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움직여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모든 어둠이 하나로 모여 빛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갔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이미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을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와 사마리아를 관할하던 로마의 총독이었습니다. 그는 주후 26년부터 36년 혹은 37년까지 약 10년 동안 그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뒤에도 몇 년 동안 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는 성경에서 디베료라고 부르는 티베리우스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수리아에 속해 있었고, 수리아 총독 아래에 빌라도가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최종 권위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예루살렘은 로마에도 매우 중요한 도시였으므로 그곳을 다스리는 자리는 장래가 유망한 사람이 맡는 자리였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온 공회가 새벽에 함께 의논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의논하다’는 말에는 함께 모여 한목소리를 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를 시인하고 고백할 때에도 한목소리를 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자신을 부인해야 예수님을 시인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인한다는 것은 고백한다는 뜻이며, 주님과 한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함께 모여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무엇을 위해 한목소리를 냈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정죄하기 위해 의논했습니다. 누구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예수님께서 죽어야 하며 사형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빌라도와 헤롯도 전에는 원수였지만 이날에는 서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뜻과 목적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일을 이미 알고 예언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수난을 세 차례 예언하실 때마다 그 내용은 점점 더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특별히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 전에 세 번째로 수난을 예언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이나 그가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마 20:18-19)
주님의 말씀 그대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사용된 이방인의 손이 바로 본디오 빌라도입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통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고백하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주님께서 알지 못하신 가운데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누구에게 넘겨지고 어떤 고난을 받으며 어떻게 죽으실지를 이미 아셨습니다. 또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왕이신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심판받으셨지만, 그 모든 일을 통하여 주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구원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