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9.2. 수요일 묵상 | 3.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지도자들과 바라바를 선택한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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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마태복음 27장 18절은 빌라도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라고 말씀합니다.
빌라도조차 그들의 마음을 알아본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종교적인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마음 깊은 곳에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을 가르치고 다스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백성을 가르치시고, 권세 있는 말씀을 전하시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자 자기들의 자리가 위협받는다고 느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시니 통치자들이 시기하고, 선지자이시니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시기하고, 대제사장이시니 제사장들이 시기했습니다.
그 시기가 결국 예수님을 없애고자 하는 데까지 갔습니다.
빌라도는 명절의 관례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습니다. 유월절에는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므로 한 사람을 사면하는 일이 그 절기의 의미와도 잘 맞았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바라바와 예수님을 놓고 백성에게 선택하게 했습니다.
바라바는 평범한 죄수가 아니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유명한 죄수라고 하고, 다른 복음서들을 보면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한 사람이었으며 강도라고도 합니다. 이미 매우 악한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빌라도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싫어해도 바라바와 비교하면 예수님을 놓아달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충동했습니다. 백성들이 직접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지도자들이 무리를 움직였습니다.
사실 백성들은 예수님을 믿고 그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이 그것을 가로막았습니다.
이것은 오늘 교회에서도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말씀과 복음을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예수님 옆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자기 위치와 권위를 지키려고 하면 성도들이 그 은혜를 누리는 것을 오히려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예수님께로 사람을 인도해야지 예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무리를 충동하여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하게 했습니다.
빌라도가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라고 묻자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복음서마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들의 요구는 분명합니다.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큰 소리로 재촉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23절은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 말씀이 참 무섭습니다.
큰 소리가 진리는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외친다고 그것이 옳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은 큰 소리에 끌려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소리가 너무 많습니다. 정보도 너무 많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생각하기 전에 많은 사람이 말하는 것을 따라가기 쉽습니다.
많이 듣는다고 옳은 것은 아닙니다. 조회수가 많다고 진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많이 따른다고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이 듣고 큰 소리가 난다고 해서 반드시 진리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라는 말씀에 휩쓸려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진리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진리는 사람을 거룩하게 합니다.
교회가 큰 소리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작은 등대와 같아도 됩니다. 바다에 폭풍이 치고 앞에 암초가 있을 때 멀리 작은 등대의 불빛 하나만 있어도 배가 방향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가장 큰 소리가 되려고 하기보다, 작은 빛이라도 분명한 진리의 기준을 보여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소리는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없애라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처음에는 예수님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했으므로 매를 때리고 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매질은 뒤에 나오는 채찍질과는 다릅니다. 훈계 차원에서 가볍게 징계하고 내보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리의 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그들의 소리에 굴복했습니다. 예수님을 채찍질한 뒤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채찍질은 단순한 매질이 아닙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고문에 가까운 것입니다. 사람의 살을 찢고 몸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잔혹한 형벌입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매를 때리고 풀어주겠다고 했던 빌라도가 결국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넘겨주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진리를 알고도 사람들의 소리에 굴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 자신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를 알면서도 사람들의 말이나 분위기에 밀려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한다는 이유로 진리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바라바는 풀려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넘겨졌습니다.
이 역설적인 장면이 이제 복음의 더 깊은 의미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