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여호와의 전쟁법: 임마누엘과 믿음
본문 말씀 30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신 1:30). 함께 계시는 여호와가 먼저 가셔서 친히 싸운다고 하십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시 24:8). 전쟁에 능한 여호와께서 먼저 가셔서 싸우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신 3:22).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데 내가 어려움을 당하면 싸워 주시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장 위험에 처한 때가 히스기야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통치 때에 최고 잔인한 앗수르의 산헤립이 쳐들어와서 바로 라기스까지 점령하고 예루살렘에 선전포고를 합니다. 그때 히스기야가 망대를 쌓고 성벽을 보수합니다. 다윗성이 바로 그 성인데, 예루살렘의 끄트머리에 있는 성입니다. 지금은 터밖에 남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 무기와 방패를 준비하고 배수의 진으로 성에 들어오는 물의 근원을 끊어 버립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이런 전쟁적인 요소로 이겼을까요? 아닙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대하 32:7-8). 산헤립은 기껏해야 사람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히스기야가 고백한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지을 때도 그렇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저항을 하니 한 손에는 칼을 차고 한 손에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 역시 말합니다. 나팔을 불거든 다 모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우리를 위하여 싸우리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무너뜨릴 때도 그렇습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리려 가나안에 처음 들어갈 때 할례를 시킵니다. 한마디로 전쟁의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리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끊으십니다. 그리고 성벽을 돌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여리고 성에 가까이 갔을 때 여호수아에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나타납니다. 천사입니다. 이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으라고 합니다. 네가 선 땅이 거룩한 곳이라고 말합니다. 모세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그렇게 했습니다. 거룩한 곳은 여호와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전쟁을 앞두고 신을 벗으라는 것은 무방비를 의미합니다. 여호와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호수아의 전쟁은 세 가지, 즉 할례 거행, 만나와 메추라기의 중단, 신을 벗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전쟁의 대비와 반대되는 내용입니다. 오직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여호와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전쟁법입니다.
10. 우리를 안고 가시는 여호와
본문 31절입니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신 1:31). 엄마가 아이를 걷고 안는 것은 아이가 걸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이들이 오자 자신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고 안고 안수하고 축복하셨습니다. 안고 간 것입니다. 홍해 바다를 걸어서 가는 것이 바다를 걷는 것인가요. 요단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말랐습니다. 이런 것이 안고 가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걸어온 길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안겨 온 것입니다. 아이들이 길을 왔다고 할 때 엄마가 안고 걸은 것이지 아이들이 걸은 것이 아니듯 말입니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신 4:4).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입니다. 다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니 어릴 때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학교만 마치면 어머니 품에 뛰어들어가 안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막내였는데 어머니가 여름에는 더우니 바쁜데 자꾸 엉기니 좀 그만 떨어지라고 하셨습니다. 붙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기도는 바로 이것입니다. 여호와께 붙어서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전쟁법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신 20:1). 아까도 잠깐 인용했지만,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구원하심이 창에 있지 않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주에는 함께하심에서 한 부분이 귀하게 남아 있는데, 바로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마음에 있고 입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전쟁을 할 때 율법의 말씀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음주에는 이 말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9. 여호와의 전쟁법: 임마누엘과 믿음
본문 말씀 30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신 1:30). 함께 계시는 여호와가 먼저 가셔서 친히 싸운다고 하십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시 24:8). 전쟁에 능한 여호와께서 먼저 가셔서 싸우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신 3:22).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데 내가 어려움을 당하면 싸워 주시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장 위험에 처한 때가 히스기야 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통치 때에 최고 잔인한 앗수르의 산헤립이 쳐들어와서 바로 라기스까지 점령하고 예루살렘에 선전포고를 합니다. 그때 히스기야가 망대를 쌓고 성벽을 보수합니다. 다윗성이 바로 그 성인데, 예루살렘의 끄트머리에 있는 성입니다. 지금은 터밖에 남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 무기와 방패를 준비하고 배수의 진으로 성에 들어오는 물의 근원을 끊어 버립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이런 전쟁적인 요소로 이겼을까요? 아닙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대하 32:7-8). 산헤립은 기껏해야 사람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요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히스기야가 고백한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지을 때도 그렇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저항을 하니 한 손에는 칼을 차고 한 손에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 역시 말합니다. 나팔을 불거든 다 모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우리를 위하여 싸우리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무너뜨릴 때도 그렇습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리려 가나안에 처음 들어갈 때 할례를 시킵니다. 한마디로 전쟁의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리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끊으십니다. 그리고 성벽을 돌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여리고 성에 가까이 갔을 때 여호수아에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나타납니다. 천사입니다. 이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으라고 합니다. 네가 선 땅이 거룩한 곳이라고 말합니다. 모세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도 그렇게 했습니다. 거룩한 곳은 여호와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전쟁을 앞두고 신을 벗으라는 것은 무방비를 의미합니다. 여호와만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호수아의 전쟁은 세 가지, 즉 할례 거행, 만나와 메추라기의 중단, 신을 벗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전쟁의 대비와 반대되는 내용입니다. 오직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여호와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전쟁법입니다.
10. 우리를 안고 가시는 여호와
본문 31절입니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신 1:31). 엄마가 아이를 걷고 안는 것은 아이가 걸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이들이 오자 자신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고 안고 안수하고 축복하셨습니다. 안고 간 것입니다. 홍해 바다를 걸어서 가는 것이 바다를 걷는 것인가요. 요단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말랐습니다. 이런 것이 안고 가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걸어온 길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안겨 온 것입니다. 아이들이 길을 왔다고 할 때 엄마가 안고 걸은 것이지 아이들이 걸은 것이 아니듯 말입니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신 4:4).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입니다. 다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니 어릴 때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학교만 마치면 어머니 품에 뛰어들어가 안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막내였는데 어머니가 여름에는 더우니 바쁜데 자꾸 엉기니 좀 그만 떨어지라고 하셨습니다. 붙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기도는 바로 이것입니다. 여호와께 붙어서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와의 전쟁법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신 20:1). 아까도 잠깐 인용했지만,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구원하심이 창에 있지 않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주에는 함께하심에서 한 부분이 귀하게 남아 있는데, 바로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마음에 있고 입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전쟁을 할 때 율법의 말씀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음주에는 이 말씀으로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