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4.6. 월요일 묵상 | 1. 부활의 비밀과 성도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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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서 성령을 부어 주셨으니, 성도는 부활의 도를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이 길게 증거하듯이, 부활은 단지 교회 안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나 막연한 위로의 언어가 아니라 실제의 사건이며, 또한 성도의 믿음을 가르는 분명한 표지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주님의 부활하신 몸은 역사적 사실이었고, 그와 함께 자신들도 부활하게 된다는 믿음 역시 실제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성도와 세상의 사상이 구별됩니다.
칼빈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미래를 묵상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으로 길게 풀어낸 것도 결국 이 부활의 묵상과 연결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은 마태복음 16장 24절의 말씀인데, 그 삶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에는 미래를 향한 묵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미래에 대한 묵상의 중심이 바로 부활입니다. 성도는 지금 보이는 삶만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장차 나타날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말하는 부활의 비밀은 먼저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의 소망의 비밀입니다. 또한 이 세상을 떠날 때를 해석하는 비밀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에 우리가 죽는다면 우리는 부활하게 되고, 주님이 오실 때 우리가 살아 있다면 죽음을 보지 않고 곧바로 변화되어 영화로운 몸을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비밀은 단지 마지막 날에 대한 교리가 아니라, 지금의 삶과 죽음과 미래를 함께 붙드는 성도의 비밀입니다. 성도의 삶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어떠한 형편 가운데 있더라도 끝은 현재의 모습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영화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지으신 목적도 지금의 이 연약한 모습에 머물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활한 모습을 바라보시며 지금 우리를 교회의 성도로, 신자로 이 땅에 두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현재의 형편만으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몸과 삶이 전부가 아니고, 주님께서 끝내 이루실 부활의 몸이 우리의 궁극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문자 그대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다시 살아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되 영원히 다시 죽지 않는 것이 참된 부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은 부활 자체라기보다 부활을 보여 주는 표지였습니다.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시며 나사로를 살리신 것은, 죽은 자를 살리실 뿐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바라는 부활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영원히 죽음이 침범할 수 없는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 부활은 다시 살아나는 것만이 아니라 변화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되 부활체로 변화되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 몸이 영화로운 몸이고, 그 몸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참된 실체입니다. 지금 우리의 몸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께서 바라보시는 우리의 궁극적인 모습은 영화로운 부활의 몸입니다. 성도는 바로 그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 가운데 이 땅의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부활을 그토록 소망하는 이유는 지금의 몸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영생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지금의 몸은 썩는 몸이고 약한 몸이며 제한된 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과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가 필요합니다. 성도의 소망은 단지 영혼만 남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변화시키실 온전한 부활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