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혜사 성령과 은혜·진리의 삶
우리는 이미 보혜사 성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고백 가운데 살아갑니다. 보혜사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은혜의 영이요 진리의 영이요 임마누엘의 영입니다. 같은 한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주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기 자질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삽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도 결국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그 은혜가 곧 우리의 상급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안에서 무엇을 끄집어내어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구원도, 삶도, 기쁨도, 감사도 다 은혜입니다. 모든 것을 분석해도 결국 남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가벼워지고, 감사하게 되고, 아름다워지고, 성숙해집니다. 사람이 자기 잘남을 붙드는 것으로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해질 때 비로소 사람다워집니다.
주님께서 말구유에 오셨기 때문에, 보혜사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도 함께 낮아지는 길을 가게 됩니다. 주님의 은혜는 높은 곳에서 베푸시는 은혜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 오셔서 베푸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스스로 높아지면 그 은혜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낮출수록 주님의 은혜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깊이 누리는 길은 자기를 높이는 데 있지 않고, 주님과 함께 낮아지는 데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이렇게 은혜의 영이시며 동시에 진리의 영이시고 능력의 영이십니다. 성도는 자기 자질을 의지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주께서 주시는 은혜와 진리로 사는 자입니다.
또한 보혜사 성령은 우리를 가르치시고 배우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사람은 배움의 가치를 귀하게 여깁니다. 우리나라가 어려운 시대를 지나오면서도 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귀하게 여긴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배우는 일을 가장 소중히 여겼고, 배움의 도구 하나도 귀하게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에게 귀한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누구인지 가르쳐 주시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고,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고,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단지 우리를 무지한 존재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고 닮아가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거룩하시면 우리도 거룩을 배우고, 주님께 인애와 긍휼과 자비가 있으면 우리도 그 자리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배움입니다.
이 배움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차원이 아닙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예배하게 하시고, 아는 지식에서 자라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지식이 내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비추어지고 증언되게 하십니다. 진리가 임하면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진리가 내 안에 없다면 전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증인이라는 것은 억지로 무엇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누리고 전하는 사람입니다. 빛을 누리면 비추게 되고, 향을 누리면 향기가 나게 됩니다. 내가 먼저 은혜를 누리면 그 은혜가 자연히 전달됩니다. 이것이 성도가 복음을 전하는 방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에는 은혜와 진리가 함께 있습니다. 말씀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실 때, 우리는 그 영광을 보았고, 그 영광 가운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을 보았습니다. 또 우리가 그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있는 곳에 진리가 역사하고, 진리가 있는 곳에 은혜가 역사합니다. 사도 바울도 전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면서, 듣고 배우고 확신한 것에 거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성도는 배운 진리 위에 서야 하고, 그 진리를 들은 자로서 또 다른 이에게 전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에도 많은 지식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귀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지식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지식이 아무리 높아 보여도, 그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성경의 지식입니다. 성경을 안다는 것은 어떤 특정 학문과 직접 관계가 없는 듯해 보여도, 사실 모든 학문과 삶의 바탕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안에 거하면서 배우고 생각할 때 비로소 삶의 방향과 동기가 바로 서고, 큰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지식은 모든 삶을 바르게 세우는 가장 근본적인 지식입니다.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말씀은 단지 구속 사역의 완성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실 가르침의 완성과 충족을 함께 드러냅니다. 성경은 완전하고 종결되었으며 충족합니다. 그리고 그 지식의 핵심은 십자가의 도와 부활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또 마지막 아담이 살려 주는 영이 되셨다는 말씀처럼, 부활의 도는 생명을 주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의 도 안에 모든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를 알면 삶을 알고, 십자가를 알면 세상을 알고, 십자가를 알면 자기 자리도 알게 됩니다. 성도의 지식은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하나로 모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변화산에서도 제자들에게 단지 무엇을 주실 분으로 자신을 보이신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소유가 아니라 주님 자신을 보게 하셨고, 하늘의 음성은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성도는 무엇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하시는 일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받은 영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래서 모른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이미 큰 지식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주라고 부르고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자체가 이미 총체적인 진리 안으로 들어와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기 것을 부인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기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이미 보혜사 성령께서 주시는 큰 지식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입니다.
1. 보혜사 성령과 은혜·진리의 삶
우리는 이미 보혜사 성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고백 가운데 살아갑니다. 보혜사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은혜의 영이요 진리의 영이요 임마누엘의 영입니다. 같은 한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주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기 자질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삽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도 결국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며, 그 은혜가 곧 우리의 상급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안에서 무엇을 끄집어내어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구원도, 삶도, 기쁨도, 감사도 다 은혜입니다. 모든 것을 분석해도 결국 남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가벼워지고, 감사하게 되고, 아름다워지고, 성숙해집니다. 사람이 자기 잘남을 붙드는 것으로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해질 때 비로소 사람다워집니다.
주님께서 말구유에 오셨기 때문에, 보혜사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도 함께 낮아지는 길을 가게 됩니다. 주님의 은혜는 높은 곳에서 베푸시는 은혜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 오셔서 베푸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스스로 높아지면 그 은혜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낮출수록 주님의 은혜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깊이 누리는 길은 자기를 높이는 데 있지 않고, 주님과 함께 낮아지는 데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이렇게 은혜의 영이시며 동시에 진리의 영이시고 능력의 영이십니다. 성도는 자기 자질을 의지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주께서 주시는 은혜와 진리로 사는 자입니다.
또한 보혜사 성령은 우리를 가르치시고 배우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사람은 배움의 가치를 귀하게 여깁니다. 우리나라가 어려운 시대를 지나오면서도 부모들이 자녀 교육을 귀하게 여긴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배우는 일을 가장 소중히 여겼고, 배움의 도구 하나도 귀하게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에게 귀한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누구인지 가르쳐 주시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고,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고,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단지 우리를 무지한 존재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고 닮아가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거룩하시면 우리도 거룩을 배우고, 주님께 인애와 긍휼과 자비가 있으면 우리도 그 자리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배움입니다.
이 배움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차원이 아닙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예배하게 하시고, 아는 지식에서 자라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지식이 내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비추어지고 증언되게 하십니다. 진리가 임하면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진리가 내 안에 없다면 전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증인이라는 것은 억지로 무엇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누리고 전하는 사람입니다. 빛을 누리면 비추게 되고, 향을 누리면 향기가 나게 됩니다. 내가 먼저 은혜를 누리면 그 은혜가 자연히 전달됩니다. 이것이 성도가 복음을 전하는 방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데에는 은혜와 진리가 함께 있습니다. 말씀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실 때, 우리는 그 영광을 보았고, 그 영광 가운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을 보았습니다. 또 우리가 그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있는 곳에 진리가 역사하고, 진리가 있는 곳에 은혜가 역사합니다. 사도 바울도 전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면서, 듣고 배우고 확신한 것에 거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성도는 배운 진리 위에 서야 하고, 그 진리를 들은 자로서 또 다른 이에게 전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에도 많은 지식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귀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지식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지식이 아무리 높아 보여도, 그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성경의 지식입니다. 성경을 안다는 것은 어떤 특정 학문과 직접 관계가 없는 듯해 보여도, 사실 모든 학문과 삶의 바탕을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안에 거하면서 배우고 생각할 때 비로소 삶의 방향과 동기가 바로 서고, 큰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지식은 모든 삶을 바르게 세우는 가장 근본적인 지식입니다.
주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말씀은 단지 구속 사역의 완성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실 가르침의 완성과 충족을 함께 드러냅니다. 성경은 완전하고 종결되었으며 충족합니다. 그리고 그 지식의 핵심은 십자가의 도와 부활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또 마지막 아담이 살려 주는 영이 되셨다는 말씀처럼, 부활의 도는 생명을 주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의 도 안에 모든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를 알면 삶을 알고, 십자가를 알면 세상을 알고, 십자가를 알면 자기 자리도 알게 됩니다. 성도의 지식은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하나로 모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변화산에서도 제자들에게 단지 무엇을 주실 분으로 자신을 보이신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소유가 아니라 주님 자신을 보게 하셨고, 하늘의 음성은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성도는 무엇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하시는 일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받은 영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래서 모른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이미 큰 지식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주라고 부르고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자체가 이미 총체적인 진리 안으로 들어와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기 것을 부인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기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이미 보혜사 성령께서 주시는 큰 지식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