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물이 흐르듯 인생이 2023년이라는 달력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살을 먹습니다. 우리 속담에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참 때는 시간은 내 편이라고 자부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시간이 나를 쇠약하게 하고 늙게 하고 병들게 합니다. 오늘 말씀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때가 있다고 합니다. ‘기한’이라는 말은 1차적으로 정해진 구간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좀 더 의미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운행하시는 정해진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생멸이 있고 시작과 어느 구간의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하나님의 운행 질서가 기한입니다. 우리에게는 인생의 연한이 있습니다. 그것을 수명이라고도 합니다. 모든 생물에도 어느 길이만큼의 삶의 때가 있습니다. 꽃도 일년생이 있고 다년생이 있지 않습니까. 제품에도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시편 39:4에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라고 노래했습니다. 나의 끝과 내가 이 땅을 삶을 사는 연한, 즉 수명이 어떠함을 알게 하사 연약함을 알게 해달라고 합니다. 시편 90:10에서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70, 80세를 살고 요즘에는 100수도 하며 더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연수 동안 헤아려 보니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날아간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이 전체적으로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 차 있고, 지나 보니, 쑥 날아간 화살 같다고 시편 기자는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기한과 정해질 질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느 때인지는 모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기한이 있고 때가 있다고 합니다. 분명히 우리 수명의 기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이 어느 때인지는 모릅니다. 분명히 가을에 낙엽은 집니다. 어떤 때는 낙엽이 조금 늦게 지고 어떤 때는 조금 빠르게 집니다. 모든 사물에 기한이 있는데, 그 구체적인 때는 알 수 없습니다. 단풍이 11월 15일에 드는지, 22일에 드는지 그때는 다양합니다. 때가 다르다고 해서 기한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한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8절까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범사에 날 때와 죽을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것은 다 죽습니다. 그리고 심을 때와 뽑을 때가 있다고 합니다. 콩을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습니다. 3절에서는 죽일 때와 치료할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때는 양의 다르기 부러지면 치료하는데, 어떤 때는 양을 도수장에 가져가서 잡습니다.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습니다. 집을 세울 때가 있고 포크레인으로 집을 쿡쿡 찍어서 허물 때가 있습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 춤추며 법궤를 옮길 때가 있었고, 예루살렘을 걸쳐 흐르는 기드론 시내를 눈물을 흘리며 건널 때가 있었습니다. 시편 30:5에 “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 전날 그렇게 울다가 그 다음 날 기쁨이 옵니다. 웃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슬퍼할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 보니 에스더가 생각났습니다. 하만의 궤계로 모르드개는 장대에 달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멸절당할 것이 예고될 때 슬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만을 그 장대에 달아 버리십니다. 에스더 9:22을 보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날이 부림절입니다. ‘부림’이란 말은 ‘제비’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부림절은 하나님이 슬픔이 기쁨이 되도록 정해 주신 날입니다. 또한,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다고 합니다. 주석을 보면, 이는 전쟁을 해서 성벽을 무너뜨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두어 건물을 지을 때가 있다는 의미로 보기도 하고,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돌을 거두어 버려 밭을 일구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한, 안을 때가 있고 품에서 멀리할 때가 있습니다. 아기를 안을 때가 있고 장성했기에 내보낼 때도 있습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젊을 때는 감기나 질병에 걸려도 금방 건강을 찾으나 건강을 쉽게 잃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애지중지하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습니다. 일상을 살다 보면, 차를 새로 사면 깨끗이 닦습니다. 그런데 두세 달 지나면 그저 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광야 생활을 지나서 가나안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지키려 할 때가 있었고,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그 땅을 떠날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고, 흩어지게 할 때가 있고 모을 때가 있고,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100m를 뛸 때는 잠잠해야 합니다. 노고를 할 때는 잠잠합니다. 한편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거꾸로 되면 안 됩니다. 한참 뛸 사람이 말만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서도 그렇게 합니다. 돌아서면 남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사울은 다윗을 사위로 맞아들였지만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습니다.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습니다. 전쟁은 못 막습니다. 인류가 타락했을 때 형제를 죽이지 않습니까. 가인이 아벨을 죽이지 않습니까. 어느 장군, 대통령이 전쟁을 못 막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오랫동안 평화로운 것은 큰 은혜입니다. 인류 역사상 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평화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다윗의 왕국도 수천 년 갈 것 같은데 불과 솔로몬 이후에만 되어도 나라가 두 동강이 났습니다. 전도서는 인생의 어떠함을 보여줍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인생의 단면을 보여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2023년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물이 흐르듯 인생이 2023년이라는 달력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살을 먹습니다. 우리 속담에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참 때는 시간은 내 편이라고 자부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시간이 나를 쇠약하게 하고 늙게 하고 병들게 합니다. 오늘 말씀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때가 있다고 합니다. ‘기한’이라는 말은 1차적으로 정해진 구간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좀 더 의미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운행하시는 정해진 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생멸이 있고 시작과 어느 구간의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하나님의 운행 질서가 기한입니다. 우리에게는 인생의 연한이 있습니다. 그것을 수명이라고도 합니다. 모든 생물에도 어느 길이만큼의 삶의 때가 있습니다. 꽃도 일년생이 있고 다년생이 있지 않습니까. 제품에도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시편 39:4에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라고 노래했습니다. 나의 끝과 내가 이 땅을 삶을 사는 연한, 즉 수명이 어떠함을 알게 하사 연약함을 알게 해달라고 합니다. 시편 90:10에서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70, 80세를 살고 요즘에는 100수도 하며 더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연수 동안 헤아려 보니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날아간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이 전체적으로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 차 있고, 지나 보니, 쑥 날아간 화살 같다고 시편 기자는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기한과 정해질 질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느 때인지는 모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기한이 있고 때가 있다고 합니다. 분명히 우리 수명의 기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이 어느 때인지는 모릅니다. 분명히 가을에 낙엽은 집니다. 어떤 때는 낙엽이 조금 늦게 지고 어떤 때는 조금 빠르게 집니다. 모든 사물에 기한이 있는데, 그 구체적인 때는 알 수 없습니다. 단풍이 11월 15일에 드는지, 22일에 드는지 그때는 다양합니다. 때가 다르다고 해서 기한이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한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8절까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범사에 날 때와 죽을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것은 다 죽습니다. 그리고 심을 때와 뽑을 때가 있다고 합니다. 콩을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습니다. 3절에서는 죽일 때와 치료할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때는 양의 다르기 부러지면 치료하는데, 어떤 때는 양을 도수장에 가져가서 잡습니다.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습니다. 집을 세울 때가 있고 포크레인으로 집을 쿡쿡 찍어서 허물 때가 있습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 춤추며 법궤를 옮길 때가 있었고, 예루살렘을 걸쳐 흐르는 기드론 시내를 눈물을 흘리며 건널 때가 있었습니다. 시편 30:5에 “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 전날 그렇게 울다가 그 다음 날 기쁨이 옵니다. 웃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고,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슬퍼할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 보니 에스더가 생각났습니다. 하만의 궤계로 모르드개는 장대에 달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멸절당할 것이 예고될 때 슬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만을 그 장대에 달아 버리십니다. 에스더 9:22을 보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날이 부림절입니다. ‘부림’이란 말은 ‘제비’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부림절은 하나님이 슬픔이 기쁨이 되도록 정해 주신 날입니다. 또한,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다고 합니다. 주석을 보면, 이는 전쟁을 해서 성벽을 무너뜨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두어 건물을 지을 때가 있다는 의미로 보기도 하고,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돌을 거두어 버려 밭을 일구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한, 안을 때가 있고 품에서 멀리할 때가 있습니다. 아기를 안을 때가 있고 장성했기에 내보낼 때도 있습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젊을 때는 감기나 질병에 걸려도 금방 건강을 찾으나 건강을 쉽게 잃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애지중지하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습니다. 일상을 살다 보면, 차를 새로 사면 깨끗이 닦습니다. 그런데 두세 달 지나면 그저 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광야 생활을 지나서 가나안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지키려 할 때가 있었고,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그 땅을 떠날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고, 흩어지게 할 때가 있고 모을 때가 있고,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100m를 뛸 때는 잠잠해야 합니다. 노고를 할 때는 잠잠합니다. 한편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거꾸로 되면 안 됩니다. 한참 뛸 사람이 말만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서도 그렇게 합니다. 돌아서면 남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사울은 다윗을 사위로 맞아들였지만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습니다.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습니다. 전쟁은 못 막습니다. 인류가 타락했을 때 형제를 죽이지 않습니까. 가인이 아벨을 죽이지 않습니까. 어느 장군, 대통령이 전쟁을 못 막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오랫동안 평화로운 것은 큰 은혜입니다. 인류 역사상 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평화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다윗의 왕국도 수천 년 갈 것 같은데 불과 솔로몬 이후에만 되어도 나라가 두 동강이 났습니다. 전도서는 인생의 어떠함을 보여줍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인생의 단면을 보여 준다고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