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27. 수요일 묵상 | 3. 절망 중에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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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절망 중의 유일한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모든 게 절망이에요. 그러나 딱 한 가지가 있어요. 이제 이 여자에게 바로 예수가 나타나신 거예요. 예수가 나타나신 거예요. 모든 절망의 상태에요. 깊은 심연에 빠져 있어요. 그런데 한 줄기 소망이, 한 줄기 약속이 자기 앞에 나타난 거예요. 그게 바로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이에요. 아마 이 여자에게 누구 왔다고 살갑게 이야기를 해 줬겠어요? 자기와 만나면 부정하니 어떻게 들어 들어 소문을 들었을 겁니다. 그 소문은 어떤 소문입니까? 마가복음 3장 10절에 보면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그리고 마가복음 6장 56절에 보니까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막 데리고 와 가지고 앉혀놓고는 '손 대게 해 주십시오, 손 대게 해 주십시오, 손 대게 해 주십시오, 옷가에라도 손 대 주십시오. 손 잡을 필요도 없고 옷이라도 만져 주십시오. 그 몸에 손 대면 부정하니까 옷 끄트머리라도 잡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낫겠습니다.' 이 여자가 그 소문을 들은 거예요. 마치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서 이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죽으시러 떠나가실 때 여리고의 한 소경 바디메오가 그 눈 감은 가운데서도 소리를 들었듯이 말입니다. 소경은 "나사렛 예수여 나를 불쌍해 여기소서"라고 하면서 겉옷을 던져놓고 그 보이지도 않는 가운데 발을 내디디고 예수께 나아갔듯이 바로 오늘 여자가 이 모습입니다. 한 가지 소망이 생긴 거예요. 그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예요. 예수 외에는 이 병을 낫게 할 자가 없어요. 예수만이 이 병을 낫게 할 수가 있어요. 예수가 이제 나타나신 거예요. 이게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거예요. 예수님이 나타나신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또 한계상황이 하나 생기는 게 바로 큰 무리가 가로 막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또 조금 주저했을 거예요. 지금 나서기도 힘들잖아요. 소경이 쉽겠습니까. 옷을 확 던져놓는 것은 참 큰 믿음이거든요. 옷을 던져놨다는 것은 '예수가 내 눈을 뜨게 할 것이다, 눈 뜨면 옷 찾겠다'는 것 아닙니까. 지금 그는 평생 옷을 던져본 적이 없어요. 붙들고 살았지. 소경이 옷을 던지면 어떡합니까. 성한 사람이 던져도 다 줏어 가는데, 소경이 던지면 그냥 줏어 가죠. 여리고에서 예루살렘 가는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거든요. 그런데 던져놓고 이제 하나님께, 예수님께 맡기는 거에요. 

      2) 절박하고 간절한 믿음과 치유
     이 여인은 예수님이 한적한 곳에 홀로 계시다면 니고데모와 같이 그래도 좀 용기를 가지고 나타나겠는데 예수님이 그 사람들 가운데 있고 거기 가서 옷술을 만졌어요. 유대인의 옷에는 옷술이 있습니다. 거기에만 손을 대도 범죄입니다. 여러분, 부정한 자가 정한 자를 만지는 것은 범죄입니다. 그런데 38년 된 앉은뱅이가 한계상황에 있을 때 예수님이 나아갔듯이, 이 여자는 예수께 나간 거예요. 육체적으로도 나아갈 수 없고 영적으로도 나아갈 수 없고 그런데 이 여자 앞에 예수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여자를 나아가게 한 것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바로 절박함입니다. 절박함밖에 없습니다. 생명에 대한 절박함. 아마 이것이 믿음인지 아닌지 이 여자는 개념도 없을 겁니다. 내가 믿음으로 나아간다는 개념도 없습니다. 절박함입니다. 물론 이 절박함을 이미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이 믿음을 주신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안 생기던 절박함이 생기는 것도 믿음입니다. 안 생기던 절박함이 생겨 가지고 '이게 마지막이다,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낫겠다, 예수가 없으면 이제 나는 죽는다, 나는 그저 이렇게 시들고만다, 이 병이 나를 삼키고 만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절박함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절박함이 있으면 마음이 정해집니다. 절박함이 있으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습니다. 절박하면 직선으로 달리게 돼 있습니다. 정말 빠르게 사람 보지 않고 여건 보지 않고 나갈 수 없는 가운데 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지 못하는데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심을 믿고 나아가는 것ㅇ비니다. 이렇게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간절함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아갈 수 없는 가운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건 아까 소경 바디매오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간구하는 것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는 것, 나아갈 수 없을 때 나아가는 것, 소경 바디매오는 나아갈 수 없을 때 나아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이런 것이 다 믿음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간구하는 것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인자를 바라는 자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을 보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기뻐하신다고 하시고, 그리고 시편 147편 11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인자를 간구하는 자를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매일 기도에 대한 특별한 주님의 비유가 하나 있어요. 친구가 야밤에 자기에게 손님이 와서 떡이 필요하니 떡을 좀 빌려달라고 합니다. 대접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입니다. 나는 굶어도 객을 대접해야 하는 게 이스라엘이에요. 손님이 찾아왔기에 떡을 구하려고 친구에게 갔어요. 밤에, 이미 침대에 드는 그런 시점에 갔는데 친구가 그 떡을 처음에는 주지 않겠죠. 그런데 또 간청하고 간청하니까 그 친구가 떡을 주었다는 게 주님의 비유입니다. 누가복음 11장 5절에서 8절에 나오는데요, 그 떡을 주는 것은 법 때문이 아니라 벗이라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간청함으로 인하여 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말이 뭐예요? 다른 게 아니라 간절히 구하니까 준다 이거예요. 그게 사실 상당히 중요한 비유입니다. 아무리 친구라도 밤에 자는데 문을 두드리면서 떡 내놓으라고 하면 누가 좋겠습니까. 떡 없어 하면 그냥 그만이죠. 어떡하겠어요. 없는 걸 밤에 수색을 할 거에요? 없다면 그만이죠. 그런데 간절히 구하니까 자다가 일어나서라도 떡을 준다고 합니다. 너희들도 이렇게 간절히 구하라고 하십니다. 절박함입니다. 여러분, 절박함이에요. 
     저는 지금 이 시대가 절박한 시대라고 생각됩니다. 왜 이런지 모르겠지만 이 절박함을 가지고 우리가 기도해야 되는 시대입니다. 언제든 우리는 종말의식을 가지고 삽니다. 언제든 우리는 상실, 절망 가운데 삽니다. 상실이 있고 절망이 있고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천 년 전에도 일어났고 200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그 일이 가장 많이 일어난 게 예수 시대일 수 있습니다. 도무지 제사장이 되지 말아야 될 사람이 제사장이 되어 있고, 도무지 왕이 될 수 없는, 유다지파도 아닌 에돔의 후손이 왕이 되어 있고, 이 도무지 용납되지 않는 알 수 없는 시대, 그게 예수님의 시대고 또 어떻게 보면 오늘날의 시대입니다. 정치는 정치대로 되어 가는지, 정치꾼이 있는지 정치가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고 어릴 땐 정치가가 있고 정치꾼이 있다고 책에서는 배웠는데 도무지 이건 잘 모르겠어요. 살아갈수록 모르겠어요. 이러한 시대에 정말 우리가 간절히 구해야 된다. 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간절히 구해야 되는데, '간절히 구하면 그 간절히 구하는 것을 보고 우리에게 주시겠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열두 해 혈류병 환자는 모든 것을 이제 맡기고 온 것입니다. 무리가 확 가는데 얼마나 부딪혀야 되겠습니까. 부딪히면 다 부정하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왔잖아요. 간절함으로 왔단 말이에요. 간절함으로.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입니다. 이 여자에게 하나님이 믿음을 주신 거예요. '저 예수가 너를 아껴 할 것이다. 저 예수는 안식일에도 생명을 살리는 것이 귀하다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저 예수는 안식일에 구덩이에 양이 빠졌으면 구덩이에서 양을 구하려야 되지 않겠냐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저 예수는 형식이 아니라 의식이 아니라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다. 인자가 온 것은 건강한 자를 위하여 온 것이 아니라 의사처럼 오셔서 병든 자를 낫게 하러 오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그는 바로 이사야 53장 5절에 예언했듯이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는다. 그렇게 우리를 아껴 하시는 분이다'라는 그 믿음을 주신 것이죠. 그래서 만졌을 때 즉시 혈류병이 나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