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26. 화요일 묵상 | 2. 열두 해 동안 혈류증으로 고통을 겪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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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육신의 고통
     지난주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는 고관입니다. 아주 중요한 지도자 셋 중에 하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보면 대표적으로 지도자가 니고데모와 야이로가 이렇게 나타나는데 전반기에 그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우리 주님께서 그 죽어가는 딸 혹은 죽은 딸을 고치시는 그 길에, 그 행로에 오늘 사건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제 그 야이로의 딸의 집으로 가시는 그 길에 이제 무리가 막 서로 밀고 또 그 주님이 밀려가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오늘 베드로도 나오지만 주님이 질문하니까 베드로가 톡 나서 가지고 ‘주님 지금 그런 질문하실 때입니까. 지금 떠밀려갑니다. 빨리 갑시다’라고 말하는 분위기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무리가 미는데 지금 능력이 나가셨다고 하며 누구를 찾으십니까?’ 베드로는 그렇게 톡톡 잘 나서는데 오늘 그런 말씀도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누구를 고치십니까? 열두 해 동안 앓은 혈류병 환자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혈류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혈류병이 뭔지도 잘 모르죠. 특별히 남자들이 겪는 병이 아니라 여자들이 겪는 그런 부인의 병이거든요. 그런데 또 여자들의 병입니다. 잘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두 해 혈류병이라면 그냥 혈류병이 있는 가보다 하고 생각하는데 한마디로 몸에서 피를 흘리는 그런 병입니다. 이 병을 열두 해 동안 겪었습니다. 병고, 옥고가 대표적인 고난 아닙니까? 옥에 갇혀 봐야 안다고 합니다. 옥에 안 들어가 본 사람 모른다 하는데 그게 하여튼 고생된다는 것이죠. 하루라도 더 빨리 나오려고 일주일 놔두고도 사면을 신청하고 하는 거 보면 옥이 힘든 건 힘든가 봐요. 그리고 또 병고가 있습니다. 병원에 이렇게 누워 계시는 것은 고생입니다. 병원에 누워 있는 게 참 고생이거든요. 하루 이틀만 가도 힘든데 오래 누워 계신 것은 참 힘든데 열두 해 동안 이렇게 병을 앓았습니다. 

      2) 사회적 고통
     그런데 이 혈류병이 무엇입니까? 여자가 피를 흘리는 그 병인데 부정한 병으로 그렇게 낙인이 찍히는 병이에요. 사회에 종교적으로 다 부정한 병으로 그렇게 알려져 있는 병입니다. 레위기 15장 19절에서 33절에 보면 혈류증에 관한 그러한 규례가 있습니다. 그래서 피를 흘리는 것이 부정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정하고 부정한 것, 이게 사회를 움직이는 대원칙이에요. 정한 것, 부정한 것, 그래서 정한 것에 속한 거냐, 부정한 것에 속한 거냐, 부정하면 정하게 회복시켜야 돼요. 부정하면 정하게 회복시켜야 되고 그게 정상이고 부정한 채로 살아가는 것은 저주예요. 그 혈류병은 피를 흘리는 것이고 부정하니 누웠던 자리도 부정하고 앉았던 자리도 부정하고 어디서 의자도 가서 앉으면 부정하고 어디 가서 만져도 부정해요. 이건 뭡니까. 그냥 사실상 격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철저히 격리되어 있는 것이예요. 그리고 피를 흘리는 여인이 만지는 것도, 여인을 만지는 것도, 여인과 동침하는 것도 부정하다 그러니까 결혼도 할 수 없고 또 아이도 낳을 수 없고 가정도 꾸릴 수 없는 이러한 참 힘든 병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출이 있으면 또 유출한 사람과 부딪히거나 접촉하거나 하면 씻어야 되고요. 씻고 난 다음에 일주일 동안은 또 근신해야 돼요. 일주일 후에 정결례를 행해서 그때부터 이제 마음대로 다닐 수 있어요. 혈류병 환자와 만났거나 접촉하거나 접촉하거나 하면 또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거나 이렇게 하면요. 참 힘든 병이에요. 민수기 5장 2절에 보면요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한 자는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진영 밖에 내보낸다는 것은 뭔가 하면 여기 안에 속할 수 없다는 겁니다. 부정하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광주리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광주리에 좋은 실과를 담는데 막 썩은 건 툭툭툭 내버리잖아요. 그래서 광주리에 좋은 것만 넣어두잖아요. 그거 생각하시면 돼요. 나병환자는 우리가 심각함을 알겠죠. 나병환자는 몸이 무너져서 끝내는 빨리 죽습니다. 과거에는 그러했으나, 현대의 나병환자는 전혀 개념이 다릅니다. 요새는 우리가 옛날 나병환자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요새는 약도 좋고 다 회복이 됩니다. 여러분들 그런데 고대의 나병이라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잖아요. 그 나병환자와 유출병 환자는 정결례라든지 대우받는 거라든지 다 비슷비슷합니다. 그만큼 몸에서 부인이 피를 흘리는 이 병이 그렇게 아주 힘든 병입니다. 그 병이 걸린 여자입니다. 오늘 이 여자는 열두 해 동안 이 병이 걸려 있었습니다. 

      3) 한계상황, 절망
     그리고 우리가 세 복음서를 종합해 보면 그녀가 의사들에게도 괴로움을 받았다고 나오는데, 의사들이 괴롭게 했겠습니까. 그러나 자기가 괴로운 거죠. 판사가 괴롭게 합니까. 판사 앞에 서면 괴로운 거죠. 의사가 괴롭게 하겠어요. 의사 선생님들은 제가 보면 참 귀한 분들입니다. 저도 가르쳐 보니까 알겠어요. 매번 가르치고 수업하고 하는 것도 참 만만치 않은 일인데, 그분들이 꼿꼿하게 앉아가지고 환자 받는 거 보면, 그래도 한마디도 흐릿하게 안 하고 톡톡 떨어지게 이야기하고 가끔씩 또 소망 있게 이야기해 주고 그럽니다. 의사들에게 괴로움을 받았다는 것은 본인이 병에 지쳤다는 거예요. 본인이 '아이고 병원은 지긋지긋하다'고 하면 의사는 보기도 싫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또 가서 검사해야 되냐 또 가서 피 뽑아야 되냐' 그겁니다. 지금 의사들에게 괴로움을 받고, 이제 그나마도 돈이 있을 때 이야기지, 가진 것을 다 허비했다고 이렇게 나옵니다. 이제 또 돈도 다 썼어요. 이제는 갈 수도 없어요. 그리고 병이라는 게 머물러 있는 병이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다 악화되지요. 안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병은 없어요. 다 악화돼요.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참 이런 것을 보면 한계 상황이에요. 병 자체가 괴롭기도 하고 병이 괴로운 겁니다. 계속 그것을 관리해야 되고 씻어야 되고 또 처리해야 되고 얼마나 힘듭니까. 병 자체가 괴롭고 또 격리되어 있다는 말이에요. 사회 국가적으로 격리되어 있습니다. 사회에서도 격리되고 국가에서도 취급하지 않고 심지어 더 힘든 것은 가정과 친척에게 조차도 격리돼 있습니다. 집에서 조차도 격리되어 있습니다. 다 그런 지경이고 무엇보다도 예배를 드릴 수 없지 않습니까. 회당에 갈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뭐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려야 그곳에서 소망을 가지고 한번 다시 일어나 보는데 말입니다. 한계상황입니다. 절망입니다. 절망이 뭡니까. 더 이상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생각이 맞는지 모르는데 한번 생각해 봤어요. 여러분, 영어로 절망이 'despair'라는 말이 있는데요. 라틴어로 소망이 'spes'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생각해 보니까 거기서 나왔을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despair'는 'spes'가 없다는 말이에요. 소망이 없다. 이게 절망이에요. 그리고 또 한 단어가 있는데요 영어로 'disappointment'가 있습니다. 소망은 'appointment'가 없는 거예요. 'appointment'는 약속입니다. 'disappointment'는 약속이 없는 상태이니까 절망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터널에 빠져도 한 줄기 빛이 있으면 그쪽을 향하여 나가거든요. 그게 바로 'promise'입니다. 전망하는 것이 약속입니다. 그래서 나를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언약입니다. 
     열두 해 혈류병 환자는 절망이에요, 소망이 없고 한마디로 상실이에요. 오늘날은 상실의 시대 같습니다. 물론 좋게 보죠. 우리 목사가 이 세상을 좋게 안 보면 누가 좋게 보겠어요. 선지자가 세상에 소망을 전하지 않으면 누가 소망을 전하겠습니까. 그러나 현상은 이렇게 잘 사는데 참 지표들은 안 좋다고 하고 그리고 기후도 그렇다고 하고 전혀 생각지 않았던 일들도 생기고 그리고 어떤 전쟁이 지금 일어나는데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전쟁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이 전쟁을 막아야 되는지 기도를 해야 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지금 가치관이 많이 밑으로 떨어져 있는, 도무지 무슨 가치로 우리가 뭘 어떻게 대해야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저 제자들은 스승을 존중하고 또 스승은 제자를 사랑하고 하는 그것인 줄 알았는데 이젠 진짜 이게 맞는 건가, 정말 그런가 한번 다시 생각해야 되고 이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