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드리신 두 번째 기도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7절에서 주님은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세상에서든 교회에서든 진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은 인공지능과 정보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결국 어디에 참된 지식이 있고, 무엇이 옳으며,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를 묻는 시대입니다.
옛날에는 땅을 판다고 하면 얼마나 힘껏 파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디를 파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파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지식과 정보가 노동과 비용을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보가 많다고 진리가 분명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지식과 주장과 해석이 넘쳐나지만 무엇이 참된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변하지 않는 진리는 세상의 철학도 아니고, 기계적인 정보도 아닙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이 말씀은 너무 평범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가장 분명한 고백입니다. 세상이 무엇을 진리라고 주장하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없이 붙들고 들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모든 것을 판단한 뒤에 말씀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만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구구단을 배울 때 매번 모든 원리를 다 이해하고 판단한 뒤 외우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외워 두고 나중에 삶에서 사용합니다. 매번 2 곱하기 8을 여덟 번 더하여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2 곱하기 8은 16”이라고 배워 두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 말씀은 좋고 저 말씀은 싫다고 골라서 받으면, 날마다 단것만 먹는 아이와 같습니다. 사탕만 먹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없듯이, 듣고 싶은 말씀만 듣는 사람은 믿음으로 자라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판단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판단하고 이끌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서 주어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지”라고 먼저 생각하기 전에 “하나님, 오늘 나를 이끌어 주옵소서. 종을 살펴 주옵소서. 깨끗하게 하시고 실족하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어가 되는 삶은 막연한 느낌이나 관념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가 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신다는 것은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시고, 책망하시고, 바르게 하시며,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활력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옛 번역에서는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문자가 아닙니다. 살아 있고 움직이며,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판단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판단하는 주체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겉모습만 다루지 않습니다. 마음 깊은 곳의 생각과 뜻까지 드러내고 판단합니다.
그 살아 있는 말씀이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과 17절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두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삶의 일부만 다루고,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직접 기록되지 않은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성경을 충분히 알지 못해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하고 충족하며 종결된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충족성과 완전성과 종결성이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명료하게 주어졌습니다. 누구나 믿음으로 들을 수 있도록 단순하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바로 이 말씀으로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거룩은 우리의 결심과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구별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며, 자신에게 드려진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요한복음 17장 19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명령과 은혜의 관계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라”고 명령하실 때, 우리에게 능력 없이 책임만 지우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거룩함을 주십니다.
레위기 20장에서 하나님은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어서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명령이 있으면 그 명령을 이루시는 약속이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말씀하시고, 동시에 친히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명령이 저주와 같은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절망에만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남은 것도 은혜이고, 지금 살아가는 것도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약함을 자랑한다는 것은 약함 자체를 좋게 여기거나 죄를 정당화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스스로 강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낮고 약한 곳으로 흐릅니다. 내가 강하다고 주장하고 스스로 충분하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은혜를 구하겠습니까? 주님은 죄인을 찾으러 오셨고 병든 자를 찾으러 오셨습니다.
주님의 두 번째 기도는 진리로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 거룩함의 방편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제자들의 생각과 뜻이 판단받고, 책망받고, 바르게 되며,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으로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말씀이 주어가 되어야 합니다. 내 감정과 형편이 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이끌어야 합니다. 내가 말씀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판단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붙들고, 지키며, 그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드리신 두 번째 기도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7절에서 주님은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세상에서든 교회에서든 진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은 인공지능과 정보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결국 어디에 참된 지식이 있고, 무엇이 옳으며,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를 묻는 시대입니다.
옛날에는 땅을 판다고 하면 얼마나 힘껏 파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디를 파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파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지식과 정보가 노동과 비용을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보가 많다고 진리가 분명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지식과 주장과 해석이 넘쳐나지만 무엇이 참된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변하지 않는 진리는 세상의 철학도 아니고, 기계적인 정보도 아닙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이 말씀은 너무 평범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가장 분명한 고백입니다. 세상이 무엇을 진리라고 주장하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없이 붙들고 들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모든 것을 판단한 뒤에 말씀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만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구구단을 배울 때 매번 모든 원리를 다 이해하고 판단한 뒤 외우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외워 두고 나중에 삶에서 사용합니다. 매번 2 곱하기 8을 여덟 번 더하여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2 곱하기 8은 16”이라고 배워 두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 말씀은 좋고 저 말씀은 싫다고 골라서 받으면, 날마다 단것만 먹는 아이와 같습니다. 사탕만 먹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없듯이, 듣고 싶은 말씀만 듣는 사람은 믿음으로 자라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판단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판단하고 이끌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서 주어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내가 무엇을 해야지”라고 먼저 생각하기 전에 “하나님, 오늘 나를 이끌어 주옵소서. 종을 살펴 주옵소서. 깨끗하게 하시고 실족하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어가 되는 삶은 막연한 느낌이나 관념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가 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신다는 것은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시고, 책망하시고, 바르게 하시며,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활력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옛 번역에서는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문자가 아닙니다. 살아 있고 움직이며,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판단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판단하는 주체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겉모습만 다루지 않습니다. 마음 깊은 곳의 생각과 뜻까지 드러내고 판단합니다.
그 살아 있는 말씀이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과 17절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두신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삶의 일부만 다루고,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직접 기록되지 않은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성경을 충분히 알지 못해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하고 충족하며 종결된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충족성과 완전성과 종결성이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명료하게 주어졌습니다. 누구나 믿음으로 들을 수 있도록 단순하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바로 이 말씀으로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거룩은 우리의 결심과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구별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며, 자신에게 드려진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요한복음 17장 19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명령과 은혜의 관계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라”고 명령하실 때, 우리에게 능력 없이 책임만 지우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거룩함을 주십니다.
레위기 20장에서 하나님은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어서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명령이 있으면 그 명령을 이루시는 약속이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말씀하시고, 동시에 친히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명령이 저주와 같은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절망에만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남은 것도 은혜이고, 지금 살아가는 것도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약함을 자랑한다는 것은 약함 자체를 좋게 여기거나 죄를 정당화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스스로 강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낮고 약한 곳으로 흐릅니다. 내가 강하다고 주장하고 스스로 충분하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은혜를 구하겠습니까? 주님은 죄인을 찾으러 오셨고 병든 자를 찾으러 오셨습니다.
주님의 두 번째 기도는 진리로 제자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 거룩함의 방편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제자들의 생각과 뜻이 판단받고, 책망받고, 바르게 되며,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으로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말씀이 주어가 되어야 합니다. 내 감정과 형편이 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이끌어야 합니다. 내가 말씀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판단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붙들고, 지키며, 그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는 사람이 제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