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복음서 병행 강해 175번째 말씀입니다. 지금까지는 지난주와 이번 주의 본문을 겹쳐서 전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같은 본문을 두 주에 걸쳐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의 대제사장적 기도는 그만큼 한 번의 설교로 다 담아내기 어려운 귀한 말씀입니다.
전체 성경이 모두 하나님의 귀한 말씀이지만,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인 요한복음 17장은 특별히 귀합니다. 기도는 인성에 따라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고, 참된 영혼과 육체를 지닌 온전한 사람으로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인성에 따라, 영혼으로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부터 5절까지에서 주님은 먼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주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아들이 영화롭게 된다는 것은 이 땅에서 높임을 받고 편안하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이 아들의 영화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 일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어지는 6절부터 19절까지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당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기 위하여 성찬을 받고 나간 뒤였으므로, 주님은 남아 있던 열한 제자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20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이 제자들이 복음을 전함으로 앞으로 주님을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오늘 우리를 위한 기도이고, 교회를 위한 기도이며, 앞으로 믿게 될 모든 성도를 위한 기도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의 대제사장적 기도에는 기도의 흐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곁에 있는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으며, 앞으로 복음을 듣고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과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위하여 드린 참으로 귀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위한 주님의 기도를 살펴보려면 먼저 누가 제자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본 중요한 말씀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무리가 아니라 제자입니다. 무리가 아니라 제자라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다니는 사람이 모두 제자는 아닙니다. 주님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 주님의 주머니에 무엇이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면 무리입니다. 주님이 무엇을 주실 수 있는지, 주님을 따라가면 내 형편이 얼마나 나아질 수 있는지,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만 바라본다면 아직 무리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면 제자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보다 주님 자신을 사랑하고, 주님 자신으로 기뻐한다면 제자입니다.
자신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형편이 어떠한지, 내 주머니에 무엇이 있는지, 내가 건강한지, 내가 잘살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면 무리의 모습에 머물 수 있습니다. 형편이 좋으면 기뻐하고 형편이 어려우면 낙심하며, 무엇을 많이 가지면 믿음이 좋아진 것 같고 무엇을 잃으면 주님에게서 멀어진 것처럼 느낀다면 외적인 조건에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바라본다면 제자입니다. 주님 안에서 나 자신을 보고, 주님으로 기뻐하고, 주님 안에서 나의 신분을 기뻐하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심리적인 상태나 윤리적인 조건이나 소유에 따라서 장마철에 바람 부는 대로 깃발이 흔들리듯 이리저리 흔들린다면 무리입니다. 그러나 주님 자신과 주님 안에서 받은 신분을 붙드는 사람은 제자입니다.
그러면 제자는 누구입니까?
첫째로, 제자들은 본래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아들에게 주신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은 자기 스스로 주님을 선택하여 제자가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창세 전에 아버지께서 택하시고 자신의 자녀로 삼으신 자들을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제자의 시작은 자기 결단이나 자기 공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택하심과 아들에게 주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자신을 바라보며 내가 다른 사람보다 무엇을 더 잘했기 때문에 주님을 믿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본래 아버지의 것이었고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셨기 때문에 제자가 된 것입니다. 제자는 자기 자신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께 속하고 아들에게 주어진 사람입니다.
둘째로, 제자들은 본래 세상에 속했던 사람들이지만 이제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세상과 아무 관계도 없었던 사람들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제자들도 본래 세상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부도 있었고 세리도 있었습니다. 각자의 생업이 있었고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세상 안에서 살아가지만 더 이상 세상을 자신의 주인으로 삼지 않습니다.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자신의 신분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자입니다.
그렇다고 생업을 버리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직장과 가정과 일상의 자리를 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중심과 가장 중요한 신분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제자는 자신이 가장 먼저 천국 시민이며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고 살아갑니다.
세상에 속한 마음을 그대로 지닌 채 주님을 따라다니면 무리입니다. 주님을 따르면서도 자신의 중심은 여전히 세상에 있고, 세상이 주는 인정과 소유와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면 무리입니다. 그러나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자신의 첫째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고 살아간다면 제자입니다.
셋째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다는 것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자는 하나님을 멀리 계신 어떤 신으로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녀답지 않게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하나님을 아버지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괜히 의심하고, 괜히 두려워하고, 괜히 걱정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은 아닌지, 내가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에서 누가 먼저 걱정합니까? 자녀가 자신을 걱정하기 전에 자녀를 낳은 아버지가 먼저 걱정합니다. 자녀가 자신의 필요를 다 헤아리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살피고 돌봅니다. 제자는 바로 이 아버지를 가진 자녀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신분을 뜻합니다. 제자는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자녀의 신분으로 아버지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의심과 공포의 대상으로만 대하지 않고,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돌보시는 아버지로 믿는 사람입니다.
넷째로, 무엇보다 제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자기 생각과 감정에 따라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무가 뿌리에서 올라오는 양분과 수분으로 자라듯이 제자는 말씀으로 자라갑니다. 말씀을 받고,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제자의 성장은 자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는 성장이 아닙니다. 뿌리에서 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는 나무가 자랄 수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고는 제자로 자라갈 수 없습니다. 제자는 말씀을 자기 판단 아래 두고 필요한 부분만 골라 취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 아래 자신을 두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다섯째로, 제자들은 하나님의 영광거리가 됩니다. 지난주에 기쁨거리, 소망거리, 감사거리, 영광거리라는 말을 나누었습니다. 제자가 하나님의 영광거리가 된다는 것은 제자 자신이 영광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자의 믿음과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드러나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말씀을 지키며,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갈 때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제자는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소유와 성취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아버지이시며 주님이 구주이심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제자가 하나님의 영광거리가 된다는 것은 제자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나타내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신분에 걸맞은 기도를 오늘 주님께서 드리십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막연히 기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 세상에서 불러내신 자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 말씀을 받고 지키는 자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제자라는 사실을 새겨야 합니다. 이것은 특별히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꾸 잊기 때문에 다시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무리가 아니라 제자입니다.
무리는 주님의 손을 바라보지만 제자는 주님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무리는 주님의 주머니에 무엇이 있는지를 궁금해하지만 제자는 주님 자신을 사랑합니다. 무리는 자신의 형편과 소유에 따라 흔들리지만 제자는 주님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바라봅니다. 무리는 무엇을 얻을 때 기뻐하지만 제자는 주님으로 기뻐합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의 신분이 보존되고, 그들이 하나가 되고, 진리로 거룩하게 되고, 세상 속으로 보내심을 받아 증인으로 살아가며, 주님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도록 기도하십니다.
이제 제자들을 위한 주님의 기도를 크게 네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시고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둘째는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셋째는 그들을 세상 속으로 보내어 증인으로 살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넷째는 주님의 기쁨이 그들 안에 충만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 모든 기도에 앞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무리가 아니라 제자입니다. 아버지의 것이었다가 아들에게 주어진 사람이며,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이며, 말씀을 받고 지키는 사람이고, 자신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무엇을 주실 것인가만 바라보지 말고 주님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형편과 소유와 감정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고, 주님 안에서 받은 자녀의 신분을 붙들어야 합니다. 주님으로 기뻐하고, 주님 안에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뻐하며, 말씀을 받고 지키는 제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은 사복음서 병행 강해 175번째 말씀입니다. 지금까지는 지난주와 이번 주의 본문을 겹쳐서 전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같은 본문을 두 주에 걸쳐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의 대제사장적 기도는 그만큼 한 번의 설교로 다 담아내기 어려운 귀한 말씀입니다.
전체 성경이 모두 하나님의 귀한 말씀이지만,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인 요한복음 17장은 특별히 귀합니다. 기도는 인성에 따라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고, 참된 영혼과 육체를 지닌 온전한 사람으로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인성에 따라, 영혼으로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부터 5절까지에서 주님은 먼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주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아들이 영화롭게 된다는 것은 이 땅에서 높임을 받고 편안하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이 아들의 영화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 일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어지는 6절부터 19절까지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당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기 위하여 성찬을 받고 나간 뒤였으므로, 주님은 남아 있던 열한 제자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20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이 제자들이 복음을 전함으로 앞으로 주님을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오늘 우리를 위한 기도이고, 교회를 위한 기도이며, 앞으로 믿게 될 모든 성도를 위한 기도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의 대제사장적 기도에는 기도의 흐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곁에 있는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으며, 앞으로 복음을 듣고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과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위하여 드린 참으로 귀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위한 주님의 기도를 살펴보려면 먼저 누가 제자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본 중요한 말씀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무리가 아니라 제자입니다. 무리가 아니라 제자라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다니는 사람이 모두 제자는 아닙니다. 주님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 주님의 주머니에 무엇이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면 무리입니다. 주님이 무엇을 주실 수 있는지, 주님을 따라가면 내 형편이 얼마나 나아질 수 있는지,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만 바라본다면 아직 무리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면 제자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보다 주님 자신을 사랑하고, 주님 자신으로 기뻐한다면 제자입니다.
자신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형편이 어떠한지, 내 주머니에 무엇이 있는지, 내가 건강한지, 내가 잘살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면 무리의 모습에 머물 수 있습니다. 형편이 좋으면 기뻐하고 형편이 어려우면 낙심하며, 무엇을 많이 가지면 믿음이 좋아진 것 같고 무엇을 잃으면 주님에게서 멀어진 것처럼 느낀다면 외적인 조건에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바라본다면 제자입니다. 주님 안에서 나 자신을 보고, 주님으로 기뻐하고, 주님 안에서 나의 신분을 기뻐하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심리적인 상태나 윤리적인 조건이나 소유에 따라서 장마철에 바람 부는 대로 깃발이 흔들리듯 이리저리 흔들린다면 무리입니다. 그러나 주님 자신과 주님 안에서 받은 신분을 붙드는 사람은 제자입니다.
그러면 제자는 누구입니까?
첫째로, 제자들은 본래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아들에게 주신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은 자기 스스로 주님을 선택하여 제자가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창세 전에 아버지께서 택하시고 자신의 자녀로 삼으신 자들을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제자의 시작은 자기 결단이나 자기 공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택하심과 아들에게 주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자신을 바라보며 내가 다른 사람보다 무엇을 더 잘했기 때문에 주님을 믿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본래 아버지의 것이었고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셨기 때문에 제자가 된 것입니다. 제자는 자기 자신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께 속하고 아들에게 주어진 사람입니다.
둘째로, 제자들은 본래 세상에 속했던 사람들이지만 이제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세상과 아무 관계도 없었던 사람들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제자들도 본래 세상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부도 있었고 세리도 있었습니다. 각자의 생업이 있었고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세상 안에서 살아가지만 더 이상 세상을 자신의 주인으로 삼지 않습니다.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자신의 신분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자입니다.
그렇다고 생업을 버리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직장과 가정과 일상의 자리를 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중심과 가장 중요한 신분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제자는 자신이 가장 먼저 천국 시민이며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고 살아갑니다.
세상에 속한 마음을 그대로 지닌 채 주님을 따라다니면 무리입니다. 주님을 따르면서도 자신의 중심은 여전히 세상에 있고, 세상이 주는 인정과 소유와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면 무리입니다. 그러나 세상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자신의 첫째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고 살아간다면 제자입니다.
셋째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다는 것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자는 하나님을 멀리 계신 어떤 신으로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녀답지 않게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하나님을 아버지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괜히 의심하고, 괜히 두려워하고, 괜히 걱정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은 아닌지, 내가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에서 누가 먼저 걱정합니까? 자녀가 자신을 걱정하기 전에 자녀를 낳은 아버지가 먼저 걱정합니다. 자녀가 자신의 필요를 다 헤아리기 전에 아버지가 먼저 살피고 돌봅니다. 제자는 바로 이 아버지를 가진 자녀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신분을 뜻합니다. 제자는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자녀의 신분으로 아버지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의심과 공포의 대상으로만 대하지 않고,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돌보시는 아버지로 믿는 사람입니다.
넷째로, 무엇보다 제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자기 생각과 감정에 따라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무가 뿌리에서 올라오는 양분과 수분으로 자라듯이 제자는 말씀으로 자라갑니다. 말씀을 받고,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제자의 성장은 자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는 성장이 아닙니다. 뿌리에서 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는 나무가 자랄 수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고는 제자로 자라갈 수 없습니다. 제자는 말씀을 자기 판단 아래 두고 필요한 부분만 골라 취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 아래 자신을 두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다섯째로, 제자들은 하나님의 영광거리가 됩니다. 지난주에 기쁨거리, 소망거리, 감사거리, 영광거리라는 말을 나누었습니다. 제자가 하나님의 영광거리가 된다는 것은 제자 자신이 영광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자의 믿음과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드러나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말씀을 지키며,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갈 때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제자는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소유와 성취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아버지이시며 주님이 구주이심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제자가 하나님의 영광거리가 된다는 것은 제자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나타내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신분에 걸맞은 기도를 오늘 주님께서 드리십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막연히 기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 세상에서 불러내신 자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 말씀을 받고 지키는 자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제자라는 사실을 새겨야 합니다. 이것은 특별히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꾸 잊기 때문에 다시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무리가 아니라 제자입니다.
무리는 주님의 손을 바라보지만 제자는 주님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무리는 주님의 주머니에 무엇이 있는지를 궁금해하지만 제자는 주님 자신을 사랑합니다. 무리는 자신의 형편과 소유에 따라 흔들리지만 제자는 주님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바라봅니다. 무리는 무엇을 얻을 때 기뻐하지만 제자는 주님으로 기뻐합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의 신분이 보존되고, 그들이 하나가 되고, 진리로 거룩하게 되고, 세상 속으로 보내심을 받아 증인으로 살아가며, 주님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도록 기도하십니다.
이제 제자들을 위한 주님의 기도를 크게 네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시고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둘째는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셋째는 그들을 세상 속으로 보내어 증인으로 살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넷째는 주님의 기쁨이 그들 안에 충만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 모든 기도에 앞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무리가 아니라 제자입니다. 아버지의 것이었다가 아들에게 주어진 사람이며,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이며, 말씀을 받고 지키는 사람이고, 자신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무엇을 주실 것인가만 바라보지 말고 주님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형편과 소유와 감정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고, 주님 안에서 받은 자녀의 신분을 붙들어야 합니다. 주님으로 기뻐하고, 주님 안에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뻐하며, 말씀을 받고 지키는 제자로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