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10. 수요일 묵상 | 3.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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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지난번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소자가 가진 작은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후에 이어지는 기사가 본문의 일입니다. 이 기적은 누가복음을 빼고 마태, 마가,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을 급히 가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길이 바쁘니 저물기 전에 건너편으로 가라고 재촉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건너편의 지명은 성경에 따라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면밀히 보면 벳세다라는 말은 고기 잡는 사람들의 동네라는 뜻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어촌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성경인데 어찌 가버나움도 가고 벳세다도 가고 한다고 하기보다는 같은 장소를 보다 일반적인 명칭으로 다르게 부른 것으로 보면 된다는 것입니다. 벳세다라는 지명만도 몇 십 군데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쨌거나 건너편이라고 하니 갈릴리 호수를 가로질러 건너게 하신 것은 맞습니다. 
     누가복음 6장 12절 말씀을 보면 주님이 밤에 많이 기도하러 가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도 보면 기도하러 가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마치 성찬의 전 단계처럼 행하시고 기도하러 가십니다. 주님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을까요.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신 것이 맞으나 우리를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했고 경건하심으로 들으심을 받았다고 할 때, 결국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제자들의 뱃길도 아셨을 것입니다. 가라고 하시는 분이 주장하시니 말입니다. 몇 주석에서는 아마 제자들의 뱃길을 놓고 기도했을 것이라고 하는데 타당해 보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먹을 것을 주시고 병자를 낫게 하십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그렇게 할까요. 
     이후에 변화산에서 귀신 들려서 불에 들어가고 하는 아이를 낫게 한 것에 대해 주님이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즉 기도 외에 다른 것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기도와 믿음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믿음이 없음을 꾸짖으시고 주님이 기도하신 것이 이 모습을 가장 잘 보여 줍니다. 기도와 믿음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만으로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중보자이자 유일한 대제사자이신 주님이 밤이 새도록 땀과 피를 흘리시며 중보하시기 때문에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가 날 위해 간구하시고 비시고 탄원하시고 기도하심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보여 주신 본이 기도의 본입니다. 기도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생이 해야 할 기도의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기도는 인생이 영혼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지으시고 붙드시는 분인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신인양성의 중보자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님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도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주님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본을 보이셨을 뿐 아니라 우리 대신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심지어 피곤하다고 세 번이나 잤습니다. 이제는 다 됐다 쉬어라 하셨을 때 주님은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기도를 날 위해 하신 것입니다. 그 기도를 지금도 하십니다. 다 이루신 분이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내 생명과 내 생활, 살아남과 살아감을 위하여 주님이 지금도 여전히 기도하십니다. 주님을 조롱하고 죽이려 든 그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이 가진 모든 죄성과 악함이 쏟아부어진 십자가 위에서 그들을 위해 오히려 기도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도 그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기도도 빠져 들어가면서 버림을 당하시면서 우리를 건져 달라는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라마 사박다니', '어찌하여', 그것이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리고 '다 이루었다'는 선포도 우리를 위하여 다 이루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기도와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