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박사 학위를 마칠 때쯤 제네바에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었습니다. 2003년 쯤이었는데 제네바대학교 중앙에 종교개혁 센터가 있습니다. 그곳의 1층에서 공부를 했는데요, 한 시간 반 정도 집과 학교를 걸으면서 오가다 보면 박물관이 있는데 비쳐라는 분의 그림이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고 하는데 베드로가 물에 빠지는 그림입니다. 두 컷을 파노라마 찍듯 이어서 그렸는데 종교개혁 때도 그런 그림은 허용을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이나 사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그리는 것과 달리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보면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누가 봐도 창고에 오래 놔둔 그림을 꺼낸 것 같은 퇴색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면 역시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봤을 때는 물을 걷고 있고 자신을 보면 빠져 들어가는 그 내용을 본문이 말하고 있습니다.
물 위를 걷는 것은 사람이 한 적이 없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도 밤새 동풍이 불어서 마르게 하신 후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신앙이 조금 자라니 요단강의 물이 먼저 그친 것이 아니라 발을 넣으면 그치게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물 위를 걸어오는 것은 하나님이신데 사람이신 분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그 분은 분명히 예수님이십니다.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유령이나 환상이라 생각했으나 분명히 예수님은 움직이셨습니다. 발을 떼고 걸으셨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도 이 말씀은 잘 압니다.
시편 23편의 푸른 초장을 우리는 항상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목자 되신 여호와와 쉴 만한 물가와 초장을 우리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창세 때 하나님이 물을 지으시고 경계를 정해 육지와 바다를 나누셨습니다. 본문은 만물을 지으시고 주장하신 주님을 말씀하며 또한 아무리 자연이 아름다운들 사람이 가장 귀하다는 말씀, 천지창조의 질서를 보여 주십니다. 모든 것이 인생을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지막에 자기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영혼을 창조해서 주신 것입니다. 모태에서 여호와가 우리를 지으신 것입니다. 그저 생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을 지어서 주신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이러한 창조의 권능을 말씀합니다.
'성령이 오셨네'라는 찬송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을 다 받았습니다. 내가 사는 것 같지만 내 안에 사는 영이 움직이고 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다고 해도 급하면 주님을 찾습니다. 확 닥치면 외칩니다. 그것이 우리 믿음입니다. 어디 빠지면 '주여' 합니다. 우리가 물에 빠지거나 깊은 데 갇히면 누구를 찾습니까. 주님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보혜사 성령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박사 학위를 마칠 때쯤 제네바에 초청을 받아 간 적이 있었습니다. 2003년 쯤이었는데 제네바대학교 중앙에 종교개혁 센터가 있습니다. 그곳의 1층에서 공부를 했는데요, 한 시간 반 정도 집과 학교를 걸으면서 오가다 보면 박물관이 있는데 비쳐라는 분의 그림이 있습니다.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고 하는데 베드로가 물에 빠지는 그림입니다. 두 컷을 파노라마 찍듯 이어서 그렸는데 종교개혁 때도 그런 그림은 허용을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이나 사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그리는 것과 달리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보면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누가 봐도 창고에 오래 놔둔 그림을 꺼낸 것 같은 퇴색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면 역시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봤을 때는 물을 걷고 있고 자신을 보면 빠져 들어가는 그 내용을 본문이 말하고 있습니다.
물 위를 걷는 것은 사람이 한 적이 없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도 밤새 동풍이 불어서 마르게 하신 후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신앙이 조금 자라니 요단강의 물이 먼저 그친 것이 아니라 발을 넣으면 그치게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물 위를 걸어오는 것은 하나님이신데 사람이신 분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그 분은 분명히 예수님이십니다.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유령이나 환상이라 생각했으나 분명히 예수님은 움직이셨습니다. 발을 떼고 걸으셨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도 이 말씀은 잘 압니다.
시편 23편의 푸른 초장을 우리는 항상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목자 되신 여호와와 쉴 만한 물가와 초장을 우리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창세 때 하나님이 물을 지으시고 경계를 정해 육지와 바다를 나누셨습니다. 본문은 만물을 지으시고 주장하신 주님을 말씀하며 또한 아무리 자연이 아름다운들 사람이 가장 귀하다는 말씀, 천지창조의 질서를 보여 주십니다. 모든 것이 인생을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지막에 자기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영혼을 창조해서 주신 것입니다. 모태에서 여호와가 우리를 지으신 것입니다. 그저 생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을 지어서 주신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이러한 창조의 권능을 말씀합니다.
'성령이 오셨네'라는 찬송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을 다 받았습니다. 내가 사는 것 같지만 내 안에 사는 영이 움직이고 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다고 해도 급하면 주님을 찾습니다. 확 닥치면 외칩니다. 그것이 우리 믿음입니다. 어디 빠지면 '주여' 합니다. 우리가 물에 빠지거나 깊은 데 갇히면 누구를 찾습니까. 주님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보혜사 성령이 임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