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17. 수요일 묵상 | 3. 우상숭배: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하거나 뺌

조회수 42
     엊그제 본 신명기에는 하나님이 에발산에서 제단을 쌓을 때 철로 다듬지 않은 것만 이용하라고 하십니다. 명확하게 드러나게 석회를 바르라고 하십니다. 다듬지 않은 돌은 인간의 공로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형식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건물을 보면서 우리가 감탄하는 것처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 잘 지었다 감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에 먼저 마음을 빼앗깁니다. 정교한 조각과 멋진 건물에 눈을 빼앗기고 오히려 조각된 말씀은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쇠로 다듬은 돌은 쓰면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인간의 공예술과 사람의 공로를 따지게 됩니다.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봐야 합니다. 
     사울왕이 아말렉을 물리쳤을 때 좋은 양과 소를 남겨둔 것을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셨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번제와 다른 제사를 아무리 드려도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이 더 귀하고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고, 여호와의 말씀을 네가 버렸으니 하나님도 사울왕을 버린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주신 그대로가 중요합니다. 형식이 없습니다. 부르짖고 말씀 붙드는 이 두 가지가 기도입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하면 언제든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있는 것을 폐하는 것도 싫어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을 더 싫어하십니다. 사람들은 없는 것을 만들어서 섬깁니다. 우상숭배입니다. 이것은 있는 것을 폐한다고 하는 중에 나옵니다. 처음에는 폐하자고 하지 않고 저것도 해보자고 합니다. 그런데 저것이 들어오면 원래 있던 것이 없어집니다. 사실상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을 폐하는 것보다 없는 것을 만드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이 하라는 것보다 더 강하게 하나님의 것을 없애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기록된 말씀입니다. 주님이 말씀에서 하신 것이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형식주의, 공로주의, 자질주의를 내세우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잉여공로와 같은 개념이 없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이 개념이 있습니다. 내가 다 지키고 남은 것을 모자란 자에게 준다는 것, 그것이 성인사상입니다. 우리는 없습니다. 불완전하고 주님 만나고 이 땅 떠날 때까지 우리는 부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