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28. 목요일 묵상 | 4. 주님의 손에 드리면 하나님이 큰 능력으로써 사용하신다

조회수 41
     주님이 우리 교회에도 물으십니다. 너무 많습니다. 우리 교회도 말입니다. 다른 교회가 안 가진 것이 많이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한 설교도, 사도신경 해설한 설교도, 갈라디아서 강해, 로마서 강해한 것도 우리 교회 안에 있습니다. 아주 작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사용하실지 모릅니다. 물맷돌이 한 나라 블레셋을 무너뜨립니다. 우리가 거창하게 볼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전부 칼 드는 생각만 합니다. 그런데 칼자루를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칼자루가 있어야 칼을 씁니다. 
     우리는 항상 내가 잘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내가 기뻐하는 일을 하는 것을 세상에서는 성공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잘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게 잘하는 것이라면 철학적 지고선입니다. 칸트가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내가 잘하고 내가 즐거워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그 일을 하면 됩니다. 전부 책을 쓰려 하지만 구텐베르그의 인쇄술이 없으면 책이 나오지 않습니다. 책 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너에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주님이 묻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잘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이 세 가지가 맞으면 바로 은사입니다. 
     어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군중을 먹이는 일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이 일이 불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어찌하여 가능합니까. 어린아이 손에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손으로 그것을 옮기면 됩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손으로, 전능자의 전능하신 손으로 지팡이를 잡으면 그 지팡이가 권능이 있습니다. 전능자의 손으로 내 입술을 사용하시면 입술의 선포가 능력이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하는 입술의 목소리에 권능이 있습니다. 내 지성, 정서, 감정을 사용하십니다. 
     저 같은 사람도 아프리카에 가면 많이 사용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기서는 영어 알파벳 하나라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하여튼 거기에는 아이들의 눈망울이있었습니다. 공부 할 때도 내가 잘하는 것을 차근차근 해 나가면 세계적인 것입니다. 제가 세계적인 학자들과 공부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한가지입니다. 스스로 잘하는 줄 모릅니다. 그런데 기뻐하고 재밌어 합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분들이 신앙인이구나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국의 소식을 듣고 눈물로 기도한 그분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고르반 하면서 내 손을 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내 것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내 직장, 내 자신이 가진 그 무엇을 주님의 손에 들리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뭘 하십니까. 본문에 보면, 주님이 그것을 손에 들어 축사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오병이어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거룩하게 만드시는 것이 축사입니다. 본문의 축사는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에는 축복이요, 요한복음에서는 감사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율로게오’라는 단어는 좋은 말, 복된 말을 하다라는 의미로 축복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감사’라는 말로 쓰였습니다. 사실상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 드려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졌으므로 만 명을 먹이는 일이 일어난 것이고 그것이 축사입니다. 물맷돌이든 사렙다 과부의 기름병 마지막 남은 기름 한 방울이든,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 앞에 드려진 용도로 사용되기에 기름병이 가루병이 마르지 않고 가득 차는 은혜가 있는 것, 그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물질 자체의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것을 우리가 드릴 때 들어 축사하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