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4. 목요일 묵상 | 4. 그리스도를 얻어 그와 연합하여 살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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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자가의 도만 전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그저 죽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고 사는 도입니다. 설교 때마다 말씀드리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행 3:15). 내가 예수를 죽인 것입니다. 사울이 죽이러 가는데 예수님이 사울에게 왜 핍박하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질문하실 때는 이미 그 가운데 은혜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사울이 무엇인가를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바로 고꾸라지고 눈이 멀고 사흘만이 영안이 뜨이는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다메섹에 핍박하러 간 사람이 예수를 증거합니다. 어떻게 증거했을까요. “내가 예수 믿는 스데반을 죽인 사람이다.” 그런데 스데반이 웃으면서 바라본 그 예수를 자신이 만났다고 전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를 만나니 박해자가 찬양하는 자로 바뀐 것입니다. 
     지난주 오병이어 설교에서 단어 두 개를 봤습니다. 떡을 가지고 축사할 때 축사는 감사의 의미도, 축복의 의미도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감사와 축복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데 그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임을 바울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러, 승천하러, 그래서 보혜사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주시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몰아내야 합니다. 주님도 이전 것을 감당하시고 새것이 되셔야 하니 주님이 우리와 같이 되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시므로, 영 단번의 제사를 드리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를 우리가 얻는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감옥에서 쓴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얻었다는 것은 물리적인 소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들어오신 것이요, 나와 하나가 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고 그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도요, 부활의 권능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 3:10). 부활의 권능은 예수와 함께 죽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를 떠나서는 아무 권능이 없습니다. 부활은 생명의 도만이 아니라 생활의 도이기도 합니다. 한번 죽고 살아나는 것만이 아니라 날마다 죽고 날마다 살아나는 것입니다. 생명도 생활도 부활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의 권능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 새 창조의 권능입니다. 육체를 죽이고 살리는 것도 불가능한데 영혼도 죽이고 살리는 주님이십니다. 예수가 죽고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의 권능이 우리 마음에도 일어납니다. 그 지식을 고상하다고 고백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 우리 안에 권능이 일어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었습니다. 이것을 외쳐야 합니다. 병이 낫는 것, 오병이어의 기적이 아닌, 이것을 외쳐야 합니다. 이것이 소유의 신앙이 아닌 존재의 신앙입니다. 내가 예수와 연합하고 하나가 되려고 오신 것입니다. 소유는 어제 있다 오늘 없기도 합니다. 내 마음조차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땅 끝까지” “영원토록” “세상 끝날까지” “항상”(행 1:8; 요 14:16; 마 28:20)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의 함께 하심이 부활의 권능입니다. 이 권능이 우리가 참여합니다. 이 죽으심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권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부활을 생각하면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이 있거든 부활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죽음과 부활이 항상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