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2. 화요일 묵상 | 2.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의 가치관으로 가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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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듯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없어 보이던 그가 예수 앞에 서니 버릴 것밖에 없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던 많은 것들이 예수 앞에 서니 다 쓸데없는 것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빌 3:7). 내가 더 세우려고 했던 것이 실상은 더 멀리하고 버려야 할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러한 극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 없이 구원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도 다 극적으로 예수 앞에 서서 가치관이 변하고 추구하던 열심의 방향이 바뀌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갈대아 우르, 즉 비옥한 땅을 버리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납니다. 모세도 궁정에서 하나님이 내보내신 것입니다. 왕이 될 수도 있던 자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루 아침에 왕자가 목부가 되어 버립니다. 엘리사,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도 요한과 야고보도 그물과 가족과 형제를 버리고 떠나는 개념이 있습니다.
     ‘보라 새 것이로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이것이 우리 구원의 도입니다. 옛것이 죽고 새것이 사는 것입니다. 어둠과 죽음이 빛과 생명과 대비되는 것이 우리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오직 그리스도 앞에 섬으로, 그리스도로 인함입니다. 그 앞에 서면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긴 것이 가장 하찮은 것이 됩니다. 그것은 믿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귀한 것을 채우는 것입니다. 어둠이 물러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빛을 영접하는 것이요, 옛 옷을 버리는 것은 새 옷을 입는 것입니다. 새 옷을 입는 것을 성경은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이 있으면 돌과 같은 마음이 살과 같이 부드러워집니다. 
     제가 위가 조금 약합니다.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식 하나하나가 철저히 반응을 합니다. 평소에는 모르는데 강한 음식을 먹으면 구별이 됩니다. 주님 앞에 서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내 주장을 하며 살다 보니 잘 모릅니다. 우리는 뭐가 독이 있고 가시를 품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서 살과 같은 마음이 되면 어제 먹던 것이 가시를 씹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전에 유익하던 것이 해가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베냐민 지파도, 가말리엘 문하도 모두 해가 됩니다. 이것은 유익한 것을 새로 얻었음을 의미합니다. 해가 떠야 달을 보냅니다. 밤에 달만 보내면 어두워서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두 가지를 다 붙들면서 살지 못합니다.
     타락한 인류의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는데 이런 아담의 옷을 입다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의로 옷 입습니다. 주님의 의가 들어오면 이전에 좋던 것이 이제는 값없게 됩니다. 허무해집니다. 예수를 만나면 나머지는 다 거친 것이 됩니다. 예수가 가장 좋아집니다. 이 극단이 내 생명마저도 내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부활은 어떤 소유를 버리고 문벌과 학식과 가문을 버리는 것을 넘어서서 내 생명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전에 아담에 속했던 저주의 생명을 버리고 이제는 생명이 거듭나서 새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 죽었던 내가 새 생명을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것, 이것이 바로 본문에 그리스도를 얻는 것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만나기만 하면 모두 가능합니다. 그리스도 없이 착해지고 변화되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성경적 변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가능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전의 것이 죽고 새 것이 삽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생명을 얻으면 모두 다 일거에 없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