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1. 월요일 묵상 | 1. 예수님을 만난 사도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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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연중이 다 좋지만 춘분쯤에 이르러 낮이 길면 참 좋습니다. 추분이 지나면 싫어지는 것은 아니나 낮이 짧아지는 것이 아쉽습니다. 요새 새벽에 보면 밝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날씨가 정말 좋았습니다. 제가 공부한 에딘버러는 날씨 자체가 (좋으면) 축제입니다. 부활의 찬송을 보면 봄에 관한 배경이 많습니다.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이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고린도후서 등에서 드물게 자신의 얘기를 하는데 본문에서도 부득이 말을 하겠다고 합니다. 예수에 관한 복음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이야기하면 부득불 얘기를 하지만 결국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버릴 것도 많다고 세상에서는 말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에 비해 사도 바울은 그렇습니다.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 자체를 보면 바울은 난 배경이나 학식이나 명망이나 살아온 내용을 보아도 율법에 의로는 흠이 없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입니다. 히브리인 중에 히브인이요, 베냐민 지파요, 최고 명문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제자입니다. 또한 스데반의 죽음에 대해 실질적인 책임이 있을 정도로 율법을 행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소위 청년 사울은 인간적으로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사울은 ‘권위 있다’는 뜻이요,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예전의 사울은 버릴 것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특별히 교회를 열심히 박해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것이 큰 공로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교회를 핍박했다는 것이 지도자 역할을 한 것을 의미합니다. 
     완벽한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 이러한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메섹 도상에서 핍박하는 자와 핍박받는 자의 관계로 만났습니다. 흩어진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거론하는 사람들은 다 잡아들이겠다고 증서를 소지하고 잡으러 간 것입니다. 독기가 가득 찼을 때 그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날 때 그야말로 극적으로 만납니다. 핍박하는 자, 예수를 믿는 자를 핍박하는 무리의 괴수로서 사도 바울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