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2. 목요일 묵상 | 4. 여호와가 함께 하신다는 표징: 말씀을 주심; 5. 말씀의 임재: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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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호와가 함께 하신다는 표징: 말씀을 주심

     그러면 우리가 여호와의 함께하심을 어떻게 압니까? 세상에서도 함께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호합니다. 하물며 여호와가 함께 하시는 것은 더욱 모호합니다. 이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여호와가 우리에게 그의 말씀을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가장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해 몇 번 살펴보았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자꾸 술어를 달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이러하시니 저러하다는 등으로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스스로 계신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곧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다윗이 모세의 하나님까지 덧붙여서 이 고백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을가요? 그 표이자 증거가 뭘까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 3:12). 성경에서 아무리 살펴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 증거인 '이 산에서 너희가 나를 섬긴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이 산은 호렙산입니다. 율법을 주신 산입니다. 정확한 산의 위치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산에서 '섬긴다'는 말은 영어로 worship이라고 합니다.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즉, 이 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리니 이것이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이끌고자 하는 이스라엘은 혈통으로만 이스라엘입니다. 그 외에는 도(道)도 율법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모양이 없습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모세라서 그들을 건져내 봤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배의 백성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호와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있다는 증거가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다시 건져 내면 이곳에서 말씀을 주시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5. 말씀의 임재: 예수 그리스도

     출애굽기 3:12에서 '섬긴다'를 영어로 worship으로 번역된 것보다는 '하나님을 섬긴다'라는 우리 번역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배로 하나님과 그리고 이웃을 섬기는 삶입니다.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여기서 나온 '징조'가 '오트'입니다. 즉 출애굽기 3장 15절의 반드시 함께 하시리라는 증거가 이사야 7장 14절에 나오는 징조와 같은 단어, '오트'로 쓰인 것입니다. 이는 바로 곧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 징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시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 가자 그들이 금송아지를 섬깁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자신을 죽이고라도 그들을 버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나와 함께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주의 사자를 보낸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출 33:14). 이렇게 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다시 묻습니다. 모세가 적시 적소에 질문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라고 묻습니다. 임마누엘을 무엇으로 아냐고 물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이 답하십니다.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출 33:17). 이에 대해 모세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시라'고 요청합니다. 영광을 어떻게 보입니까. 보고 싶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영광인데 말입니다. 히브리어로 영광은 '카보드'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33:19). 선한 것은 말씀 가운데 복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세 앞으로 지나가게 한다고, 즉 앞에 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게 한다고 하십니다. 바로 모세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은혜 베풀 자와 긍휼히 여길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기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한 것이 얼굴을 보지 못하고 등을 보리라고 하십니다. 여호와와 대면했다는 모세에게 말입니다. 여호와에게는 사실 얼굴도 손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호와를 봤다고 하냔 말입니다. 선한 것을 너희 앞에 두고 내 이름으로 부르고 내가 네 이름을 기억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곧 임마누엘 하나님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구약으로 말하면 많은 자연적 이적과 기사로 보여 주십니다. 요셉은 형통하게 하셨고 벧엘에서 야곱은 꿈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무엇으로 보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말씀을 듣는다는 것,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을 우리가 진정으로 생각해 봤습니까?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데 임마누엘입니다. 성육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셔서 우리가 그 영광을 본 것입니다. 이 영광은 바로 모세가 아까 물어본, 보여 주시기를 요청한 그 영광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답하신, 모든 선한 것을 지나가게 하시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하신다고 했는데 그 실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의 임마누엘, 이사야 7장 14절의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의 표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진리의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시니 그것이 바로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 위의 은혜인 것입니다. 임마누엘은 말씀의 임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