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12. 금요일 묵상 | 5. 보지 않고 말씀을 믿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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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가 주님께 가려고 하나 풍랑이 이니 그것을 보고 물에 빠집니다. 보는 것은 보는 신앙은 보이는 그것으로 인해 빠집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믿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으로 믿는 신앙은 이적신앙입니다. 바람은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피조물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는 소유신앙이 아닌 존재신앙입니다. 여기가 좋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좋아야 합니다. 진달래와 벚꽃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벚꽃을 좋아하면 벚꽃에 빠져듭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믿음 적은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느냐'는 말은 이전에도 동일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고 찾고 기도하면 유령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머니가 있으면 얼굴이 확 피듯 우리도 그렇습니다. 주님 오시는데 유령이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날 위해 주님이 기도하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33절,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로이다' 하는 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나중에 로마 백부장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보고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부활하신 주님도 이들이 여전히 주님을 바라지 않고, 보이니 안 보이니 하는 것을 보시며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복되다고 하십니다. 그때 비로소 도마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되다'고 하신 것입니다. 
     물 위를 걷지 못한다고 한탄합니까. 물이 아니라 우리는 하루 종일 못하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공기를 마시고 있습니다. 누가 공기를 만듭니까. 누가 지구의 대기층을 형성해서 자외선을 막아주고 우리가 살게 합니까. 대기층에 작은 구멍이라도 생기면 우리가 다 죽습니다. 굳이 물 위를 걸어야 믿습니까. 그걸 보여야 선지자입니까. 모두 헛된 신앙입니다. 우리가 매일 전부 창조적 권능으로 삽니다. 공기를 만들어 보라고 하십시오. 고기를 한 마리 만들어 보라고 하십시오. 날 위해 기도하시는 만물을 다스리는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하시고 나는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그러므로 잘하고 못함이 없습니다. 기도는 주님이 하시고 우리의 기도는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