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돌아보면 부족한 것도 많고 막막한 것도 있지만, 결국 감사한 것이 훨씬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살게 하시고,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은혜가 가장 큽니다. 우리는 스스로 믿음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정한 때에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믿음은 보혜사 성령이 임하실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말씀처럼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심으로 우리가 듣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시작도 끝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영이며, 아버지의 영이자 아들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단지 감정적인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과 딸로 부르신다는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며 동시에 아들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도 모두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자녀로서 하나님께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담대히 구하게 되고, 하나님은 친히 행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은 단지 위로의 영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하게 하는 영입니다.
우리가 돌아보면 부족한 것도 많고 막막한 것도 있지만, 결국 감사한 것이 훨씬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살게 하시고,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은혜가 가장 큽니다. 우리는 스스로 믿음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정한 때에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믿음은 보혜사 성령이 임하실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말씀처럼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임하심으로 우리가 듣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시작도 끝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영이며, 아버지의 영이자 아들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단지 감정적인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과 딸로 부르신다는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며 동시에 아들의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도 모두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자녀로서 하나님께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담대히 구하게 되고, 하나님은 친히 행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은 단지 위로의 영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하게 하는 영입니다.